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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시골의사가 만난 이채원의 가치투자
최근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오른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2(분석편, 리더스북 펴냄)'에 보면 시골의사(필명)가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을 만나 가치투자의 이모저모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아직 책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그 중 일부분을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세상에 완벽한 투자 기법은 없다"
다음은 2008년 가을, 한국자산밸류운용의 이채원 부사장과 ‘가치투자’에 대해 나눈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옮긴 것입니다.
시골의사: 투자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채원: 그레이엄의 말을 빌리면 원금의 안정성을 보호하고 수익성을 유지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죠. 가치투자는 거기서 유래한 것이고요. 때문에 주식은 지나치게 비쌀 때 사면 안 되는 것이죠. 잘 보면 KOSPI시장에서 70~80%는 경기순환주입니다. 돈을 많이 벌려면 아마도 그런 사이클을 잘 타야겠죠. 이를테면 2007년 초에 중국 관련주를 사서 2007년 말에 파는 겁니다. 말처럼 쉽다면요.
시골의사:그럼 가치투자의 원칙은 무엇인가요?
이채원: 문자 그대로 가치와 가격의 갭을 따먹는 것이죠. 문제는 이 갭을 측정하고 계산하는 방법이 너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접근 방식에 따라 스타일이 달라지는 거죠. 가치투자가 전부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가치를 산정하는 방법이 스타일이고 그 스타일은 투자자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주식 한 주의 가치를 두고 안정성과 수익성 그리고 미래가치를 갖고 판단한다고 해봅시다. 이때 사실버핏은 성장성을 본 겁니다. 다만 그 성장성이 프랜차이즈 밸류를 가졌을 경우에만 인정하는 거죠. 식품회사가 반도체 분야에 진출했다면, 그 경우엔 미래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거죠. 버핏은 철저하게 성장성을 보았으나 프랜차이즈 밸류 안에 부여된 성장성을 본 결과가 지금을 만들어낸 겁니다. 지금 와서 보니 마치 전통 가치주를 산 것처럼 보이지만 초창기 투자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럼 수익성은 어떻게 볼까 생각하면, 그것은 지금 버는 돈의 개념과 같습니다. 이때 돈은 질과 양을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일시적으로 업황이 개선되어 번 돈은 질이 나쁜 거죠. 결국 수익가치의 비중을 질에 두고 보는 것이 수익성이고 우리는 그것을 PER이라고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안정성의 개념은 과거에 돈을 벌어들인 역사와 같습니다. 과거 자산가치라고나 할까요? 이를테면 PBR입니다. 전통적 가치투자는 후자의 두 가지를 보는 것이죠. 그런데 스타일에 따라 1, 2, 3을 혹은 2, 3을 혹은 1, 2를 가치투자라고 한다면 각각의 스타일이 다른 것이지 않겠습니까? 때에 따라서는 철저한 성장주 투자자로 보일 수도 있고요. 결국 가치투자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더구나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고 내 판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죠. 그래서 PER, PBR로 뚝 잘라서 보고들 하는 것이죠. 그것밖에는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여기에 과도한 배수를 부여하는 것은 투자의 본류를 벗어난 것이라 여깁니다. 내가 사는 기업들은 시장평균보다 2배수가 낮아야 한다는 게 제 투자 방식이죠. 물론 다른 견해도 있을 겁니다.
시골의사: 그럼 성장주 투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채원: 저 역시 성장주에 대한 관심은 많습니다. 솔직히 혹합니다. 성장주를 좋게 생각하고 관심이 가지만 사실 못하는 거죠. 일종의 비겁함입니다. 그레이엄도 정성적 분석을 좋아했습니다. 사업의 전망을 중시했으니까요. 그러나 이것을 너무 좋아하면 투기로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사업의 전망에 있어 의견이 크게 엇갈리거나 전망이 좋은 경우에는 이미 비싸게 팔리죠. 그래서 저 역시 지금은 환경이나 에너지, 식량에 관한 주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공부중이죠. 이 세 가지 사업을 영위하면서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기업이 있고 실제로 돈을 벌고 있으며, 그 기업의 주가가 적정 배수라면 저도 이런 주식은 살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게 별로 없다는 데 있죠.
그래서 약간 비겁해지려고 합니다. 안정적인 도시가스 회사나 정유 회사가 수소전지, 태양광 같은 분야에 손을 댈 경우엔, 신규 사업이 실패해도 이 기업들이 죽지는 않습니다. 주정 회사가 에탄올 사업을 한다든지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구요. 저는 이런 부류만 골라서 비겁하게 투자할 생각입니다.
시골의사: 1990년대 후반에 성장주를 사지 못해서 개인적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그럼 앞으로 다시 그런 순간이 와도 그런 기업의 주식은 사지 않을 것인가요?
이채원: 또 그런 상황이 와도 저는 안 살 겁니다. 만일 그렇다면 반대로 롯데칠성 같은 기업의 주식은 살 수가 없거든요.
시골의사: 우리나라의 가치투자 실태는 어떻습니까?
이채원: 사실 냉정하게 보면 5% 미만입니다. 외국의 경우 20~30% 정도 되는데, 이에 비해 우리는 작은 수치죠. 물론 엄격한 기준에서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 비율이 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가치투자는 인간의 심리와 역행되므로 유행이 될 수 없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절대 못 견딥니다. 피를 말리거든요.
예를 들어, 2000년에 롯데칠성을 살 때는 제 계산으로 내재가치가 30만 원이었거든요. 그래서 10만 원에 샀어요. 그런데 9만 원이 되더군요. 또 샀죠. 다시 8만 원, 7만 원이 되는데 손실이 벌써 30%에 육박하는 겁니다. 이때 혹시 내가 계산 착오를 했거나 감춰진 문제를 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두려워지더군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익이 늘어나요. 그래서 믿어보자 하고 조금 더 샀죠. 곧 6만 원이 되더군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6만 원이 되자 정말 너무 겁이 나서 단 한 주도 추가 매수를 하지 못했습니다. 틀림없이 내가 모르는 악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포에 질렸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가격이 바닥이었습니다.
혼마 무네히사는 “바닥에서 사서 천장에서 팔아라. 단, 목숨을 걸고 사라.”고 말했죠. 실제로 이것은 정말 깊은 바다에 뛰어드는 것보다 더 강한 공포를 느끼는 순간을 말합니다. 단 한 주도 못 사는 게 그게 바닥이죠. 이후 롯데칠성이 180만 원까지 올랐지만 저는 중간에 팔아버렸어요. 비싸졌으니까요. 이것은 인간의 행동에 대한 극단적인 배반이죠. 사실은 저도 이게 잘 안 됩니다.
삼성전자를 예로 들어볼까요? 2000년 4월에 37만 5,000원이었습니다. 그때 사고 싶었죠. 나중에는 13만 5,000원이 되더군요. 그런데 또 너무 빠지니까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74만 원이 되니까 미치도록 사고 싶더군요. 겨우겨우 참았습니다. 5년을 버텼는데 이제 와서 살 수는 없다고 이를 악물었죠. 심정적으로는 100번은 넘게 샀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상투였어요. 지나고 보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사고 싶어서 못 참을 지경이 되면 그때가 바로 상투더란 겁니다.
시골의사: 가치투자의 관점에서 해외투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채원: 이론상 가능합니다. 하지만 경쟁의 측면에서 보면 그 나라 원주민들의 판단을 이기기가 어렵죠.
시골의사: 손절매는 아예 하실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이채원: 그렇진 않습니다. 다만 주가가 하락한다고 해서 손절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치가 하락하면 손절매해야 합니다. 결국 가치투자란 10루타 종목을 사는 건데 엄청난 내공이 있어야 합니다. 피터 린치의 경우 1,600개 종목을 다뤘는데, 그가 수익을 낸 소위 대박 종목은 그의 포트폴리오에서 메인이었고. 손실을 낸 종목들은 비중이 적었어요. 이런 것이 바로 실력입니다.
시골의사: 자산 운용의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채원: 솔직히 우리 운용자들은 소로스나 버핏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전재산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이 살고 같이 죽는 공동운명체인 거죠. 금융시장에서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돈을 믿는 거죠. 그래서 헤지펀드의 경우에는 운용자가 지분의 30% 이상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투자를 안 하죠. 그러니 일반인의 돈을 맡아서 운용하는 경우, 이 사람이 리스크를 무시하고 소위 마구잡이로 질러서 낸 수익이냐 아니면 죽기살기로 지키며 낸 이익이냐를 잘 따져야 합니다.
시골의사: 마지막으로 투자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채원: 세상에 완전한 기법은 없다는 겁니다. 《워렌 버핏의 완벽투자기법》이란 책이 있어요. 문제는, 그것이 버핏에게만 완벽한 투자기법이란 겁니다.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자기 자금의 운용 성격과 성향을 미리 알고 그에 딱 맞는 투자전략을 펴야 하는 것이죠. 투자자는 자기 자신을 정말 잘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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