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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시장은 언제나 틀린다


지난 8월 출간돼 서점가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조지 소로스,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위즈덤하우스 펴냄)은 대공황보다 더 심각한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며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처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노회한 투자가의 빛나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책에서 주요한 대목만을 골라 소개합니다.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한다는 그의 새로운 주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조지 소로스,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시장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 언제나 틀린다. 하지만 시장은 스스로를 바로잡을 수 있고, 때로는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재귀적 과정을 통해 오류를 진실처럼 보이게도 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시장은 항상 옳게 보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금융시장은 경기둔화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둔화를 유발한다.
 

수요와 공급을 시장 참여자들의 예측과는 전혀 다른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아주 잘못되었다. 교과서는 수요와 공급곡선이 경험적 근거에 의해 형성되어진 것인 양 그리고 있다. 하지만 곡선들이 독립적으로 주어졌다는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가격이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에서 매매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투자자들이 시장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버블이 발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즉 대출 조건을 과도하게 완화하고 주택담보인정비율을 대폭 확대하는 등 버블을 조장하는 지배적인 흐름이 있었다. 여기에 금융회사들이 아무리 대출을 늘린다 하더라도 담보물의 가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오해가 가세했다. 이런 오해는 과거부터 버블 형성을 주도했던 가장 큰 원인이며, 특히 부동산시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슈퍼 버블을 일으킨 오해는 시장 메커니즘에 과도하게 의존한 데서 왔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를 ‘시장의 마술’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나는 시장근본주의라고 지칭한다. 시장근본주의의 기원은 19세기 자유방임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마거릿 대처가 영국 수상이 되었던 1980년대에 와서 지배적인 경제사조로 자리 잡았다.
 

최근 사태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이번 위기와 1980년대 이후 금융 역사에서 오점으로 남아 있는 주기적인 위기의 차이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전의 위기는 지배적인 추세는 물론이고 널리 퍼져 있던 오해를 좀 더 강화하는 데 성공을 거둔 실험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위기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주택 버블뿐 아니라 장기 슈퍼 버블의 분기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이 부분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은 이번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다.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의 부실에서 촉발된 이번 위기는 슈퍼 버블의 청산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다.

나는 정적이며 과거 일을 평가하기에 여념 없는 유럽중앙은행과 달리 그린스펀이 가진 선견지명과 동적인 정책 추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아이언 랜드에게서 영감을 얻은 자신의 정치관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역할에 과도하게 적용함으로써 실책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상품가격은 최근의 상승 추세를 보다 강화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입지가 약해지면서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 것이고, 지배적인 세계 질서를 와해시키는 분위기마저 고조시킬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세계 경제가 통째로 침체에 빠질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산유국과 일부 개발도상국에서 분출하는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재채기만 해도 세계 경제가 감기에 걸린다는 통념은 과거 한때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이제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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