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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미 금융위기, 탐험가의 눈으로 보라

[버핏 따라잡기] 저는 지난해 이맘 때 국제부로 발령받았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가 미국이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는 기간과 일치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지난 1년 동안 가장 많이 접한 외신이 미국발(發) 금융 위기이고, 가장 많이 쓴 기사도 미 금융위기입니다.


동화에나 나올법한 근사한 집에 “압류(foreclosure)” 팻말이 붙고 집 소유자가 거리로 나 앉았다는 기사를 쓰면서는 남의 나라 일이 아닐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었고, 투자은행(IB)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보호신청을 했다는 뉴스를 출고하면서는 미국의 그 똑똑한 비즈니스스쿨(경영대학원) 학생의 입사 선호 1순위 기업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공부할 때 IB에서 합격 통보를 받은 어느 미국인 친구가 “드디어 평생의 꿈을 이뤘다”며 환호하던 표정이 떠오르더군요(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며칠 전 미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결정과 관련한 해설 기사를 썼더니 일단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네요. 관심사가 투자이다 보니 금융위기에 관련된 기사를 쓰는 한편으로 투자의 관점에서 이번 사태를 지켜봐왔습니다. 그랬더니 눈에 띄는 게 있었습니다. 투자 기회가 슬그머니 왔다가 살며시 사라지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투자 대가는 이것을 놓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먼저, 지난해 말 미 증시가 약세장으로 돌아서던 때의 일입니다. 다우지수는 지난해 10월 9일 1만 4,164로 고점을 찍고 연말에 1만 1,900까지 하락했고 지금까지 하락세를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미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2006.10~2008.9]

 

증시가 하락세로 돌아서면 투자자가 마음 고생을 하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다수의 투자자와 반대로 증시 하락세 반전을 남몰래 반기던 투자자가 있었습니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사무실을 둔 헤지펀드 회사인 폴슨 앤 컴퍼니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존 폴슨이 주인공입니다. 폴슨은 일반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월스트리트에서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펀드매니저입니다. 조지 소로스는 최근 출간한 저서 <금융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특출한 인물이며 그에게 정중하게 점심식사를 청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폴슨은 2005년 초부터 여러 자료를 분석한 끝에 미국의 주택 시장에 버블이 잔뜩 끼어있다고 확신합니다. 1999년 미국의 금리가 한때 1%까지 인하된 것을 계기로 너도 나도 주택을 매입하고 심지어 신용이 아예없는 이른바 ‘닌자’(NINJA, No Income, No Job, No Asset)에게까지 대출이 이뤄지는 상황을 목격한 것입니다.


버블은 꺼질 수 밖에 없지요. 폴슨은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주택 버블이 꺼질 경우 –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비우량주택담보대출)가 닥칠 경우 – 돈이 터질 곳이 어디인지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매입에 나선 것이 신용디폴트스왑(CDS, Credit Default Swap)과 ABX인덱스입니다. 두 가지가 뭔지를 설명하자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지 않나 싶은데, 간단히 설명하면 CDS는 채권 변제 불이행(디폴트)이 발생했을 경우를 대비해 가입하는 일종의 보험이며, 디폴트가 실제로 발생했을 경우 매수자(holder)가 돈을 버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의 주택 시장이 침체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CDS는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ABX인덱스도 원리는 같습니다.

 

하락세에 베팅한 폴슨은 얼마를 벌었을까요. 미 금융전문지 알파 매거진이 얼마전 발표한 자료를 보니 폴슨은 지난해 연봉 37억달러(약 4조원)로 미국의 펀드 매니저 가운데 가장 많은 보수를 챙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폴슨은 미국인이 거리로 나 앉고 직장을 잃은 덕분에 돈을 벌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의식한 듯 “사회 기부에 더 많은 돈을 내겠다”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하고 있네요. 이 잡지에 따르면 조지 소로스도 같은 기간에 폴슨과 유사한 기법을 사용해 29억달러(약 3조 1,000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약세장을 예측해 돈을 번 케이스네요. 역시 투자 대가는 다르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투자 기회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8일 미국의 국책 모기지 회사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미 재무부가 경영권을 확보한다고 발표했는데, 이 과정에서 또 한번의 투자 기회가 왔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게됩니다.

투자 포인트는 “위기에 빠진 우량 기업의 채권을 매입해두면 돈이 된다”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미국 모기지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그래서 쓰러지기에는 너무나 큰 공룡 회사입니다. 

비즈니스 모델도 뛰어납니다. 두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얼마나 환상적인지는 세기의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의 <이기는 투자>를 보면 아주 자세히 나와있습니다.(위기가 터진 요즘에는 이와 정반대로 두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문제라는 보도가 나오네요).

피터 린치는 이 책에서 “해마다 연초에 신문 방송사 기자들이 종목 추천을 요청할 때마다 나는 “패ㆍ니ㆍ메ㆍ이”라고 또박또박 말하곤 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패니메이는 피터 린치의 마젤란 펀드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종목으로 편입된 적도 있습니다.

이런 기업은 위기에 빠지면 문을 닫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개 정부가 인수하거나 다른 기업에 의해 인수합병(M&A)이 되는 방식으로 해결이 됩니다.

이때 가격이 뛰는 게 이 회사의 채권이며, 큰 손해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게 주식입니다.
실제로 미 정부가 두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패니메니의 채권 가격은 올랐습니다(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국유화 → 두 회사의 비즈니스 리스크 감소 → 채권 금리 하락 →  채권 가격 상승의 원리입니다)


실제로 누가 돈을 챙겼느냐를 유심히 지켜봤더니 뜻밖에도 러시아 정부이더군요.
며칠전 AP통신은 러시아의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인용, “러시아중앙은행이 올해 상반기에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채권 운용으로 10억 달러(약 1조 1,0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 보좌관은 “러시아중앙은행은 (미 금융위기로) 아무런 손실을 입지 않았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채권 가격을 추이를 지켜보면 알겠지만 두 회사의 채권 가격은 상승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중앙은행은 올해초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채권을 약 1,000억달러 어치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현재는 300억 달러로 줄였다고 합니다. 채권 가격이 상승하자 매각해 이런 차익을 남긴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두 회사의 주식을 매입한 투자자는 휴지조각이 될 각오를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개인 투자자들은 올해초 두 회사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주가가 폭락하자 대거 매입에 나섰습니다. 싸게 보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최근 두 회사는 미 정부가 국유화를 결정함에 따라 주식이 휴지조각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시다시피 인수 합병이 벌어지면 인수되는 기업의 주식은 인수 하는 기업의 재량에 따라 소각되거나 일정 비율에 따라 교환됩니다. 그런데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이 “향후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두 회사 주식의 소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 초 각각 35, 32달러였던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주가가 28일 현재 1.83, 2.00달러로 폭락했으니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됩니다. 투자 지식이 있었다면 적어도 두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2001년 현대건설이 유동성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벌어졌는데, 제 졸저에서 케이스로 설명했습니다).

 

끝으로, 며칠 전 미 정부가 7,000억 달러의 공적자금 투입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다시 투자 기회가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번 결정은 미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기업의 문제가 되는 모든 자산을 사들인다는 뜻인데, 이렇게 되면 적어도 기업이 문을 닫을 위험은 사라졌다고 봐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요즘 미국의 금융 기업들이 잇따라 쓰러지는 이유는 부실 자산의 상각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누가 움직였을까요. 

 

워렌 버핏이 눈에 띄네요. 미 정부의 공적자금 발표(20일, 이하 현지시각)가 이뤄진 나흘 후인 24일 버핏은 50억 달러 어치의 보통주 매입 권리가 붙어있는 골드만삭스의 우선주 50억달러를 매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요즘 버핏이 골드만삭스에 투자한 것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리먼브러더스의 투자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왜 골드만삭스의 투자 요청은 받아들였을까요.

저는 미 정부의 공적자금 발표가 있지 않았다면 버핏이 과연 골드만삭스 투자를 결정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이제 한국의 주식 시장을 들여다 봅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지금의 약세장이 언제 걷힐 것인지, 종합주가지수는 언제 반등할 것인지 하는 문제에 관심을 쏟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좀더 관심을 가지면 이런 약세장의 와중에서 투자 기회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문을 닫을 염려가 사실상 없는 우량 기업이 패니메이와 유사한 형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보이고,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가치 투자 방식 대로 우량 기업의 주가가 증시 하락의 여파로 떨어지는 것도 보입니다.

투자 기회는 강세장에서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하고 분석하고, 남들이 눈여겨 보지 않는 부분까지 탐험가의 눈으로 들여다 보면 투자 기회가 지금 우리 눈앞에서 손짓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좋은 글 작성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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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 초록지킴이
    좋은 글 감사합니다.http://
    2008.10/07 15:02 답글쓰기
  • 초록지킴이
    2008.10/0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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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식
    감사합니다. 좋은글을 읽고 견문이 넓어졌습니다.http://
    2009.03/29 17:51 답글쓰기
  • 김정식
    2009.03/29 17:51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새벽바다
    지식이야말로 최고의 비법이네요.. 감사합니다^^http://
    2009.08/01 20:45 답글쓰기
  • 새벽바다
    2009.08/0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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