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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따라잡기]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의 장점
가치투자는 기업 실적이 주가를 움직인다고 믿는 투자 방식입니다. 그래서 가치투자자들은 지금까지 실적이 좋았고, 향후에도 그럴 것이라고 여겨지는 기업을 찾는 일에 – 흔히 말하는 기업 분석에 -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런데 가치투자자들이 실제로 기업 분석을 하다 보면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기업 분석을 하려면 재무제표 분석법, 화폐의 현재가치와 미래가치 같은 재무회계 지식은 물론이고 금리, 인플레이션 같은 거시 경제 흐름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기업 분석의 어려움의 문제를 덜어주기 위해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주가순자산배수(PBR) 같은 지표가 만들어졌고, 아이투자에서 제공하는 실적 차트도 – 기술적 차트 아님 - 가치투자자가 기업 분석을 할 때의 시간과 노력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들을 보면서 저는 기업 분석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을 줄이는 방법 한가지가 더 있는 데 정작 관심을 덜 기울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구분하는 일입니다.
저는 앞의 글에서 2004년 개인 투자자들의 상위 매입 종목으로 삼성전자57,900원, ▲1,900원, 3.39%, 삼성SDI277,500원, ▲8,500원, 3.16%, 삼성전기113,300원, ▲1,300원, 1.16%, 삼성테크윈, 효성44,750원, ▼-300원, -0.67% 등 10가지 종목들을 말씀드렸는데, 기아차, LG카드 등을 빼고는 한결같이 비즈니스 모델이 단순하지 않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삼성테크윈은 흥미로운 사업 영역을 가진 기업입니다. 이 회사는 광 디지털, 반도체 부품, 카메라 등을 생산하고, 여기에 덧붙여 장갑차, 자주포, 항공기 엔진도 생산합니다. 이 회사를 분석하자면 항공 산업과 군수 산업을 알아야 겠네요.
효성도 사업 영역이 흥미롭기로는 삼성테크윈에 맞먹습니다. 효성은 어지간히 기업 분석을 해본 분들도 어떤 회사인지 가슴에 확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이 회사는 변압기, 풍력발전 설비, 타이어 보강제 같은 전력ㆍ중공업 제품을 생산하는 한편으로 스판덱스 등의 섬유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는 건설업과 무역업도 합니다.
삼성전자가 얼마나 복잡한 사업 영역을 갖고 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겁니다. 이 회사는 D-RAM, S-RAM, 휴대폰, TV,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모니터, 프린터 등 10여가지 제품을 생산합니다. 삼성SDI는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 LCD(액정표시디스플레이), AMOLED(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 2차 전지 등을 생산합니다
사업 영역이 복잡한 기업은 분석이 어렵습니다.
저는 가치투자에 관한 책을 몇 권 썼고 경영학 공부를 했지만 솔직히 이런 기업들의 사업 보고서를 읽으면 벽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기업들 가운데 몇몇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직접 출입을 했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워렌 버핏이 매입한 한국 기업들의 사업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졌기 때문에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대한제분은 해외에서 맥아(麥芽)라는 원재료를 들여와 곰표 밀가루를 만듭니다. 이 회사는 1945년 설립 이래 밀가루를 만들어왔는데, 최근에는 신제품으로 ‘냉면전용 밀가루’ ‘우동용 밀가루’ ‘치킨 튀김 가루’를 개발했다고 밝히고 있네요. 하여간 밀가루입니다.
비즈니스 모델이 단순하다 보니 대한제분의 향후 실적은 국제 시장에서의 맥아 가격 추이, 밀가루 제품의 소비자 가격 변화 등 몇가지만 따져보면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에스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기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회사는 기업 사무실이나 개인 주택을 순찰해 이상이 포착되면 경찰서 등에 연락해 안전을 지켜줍니다. 이 회사는 설립 이래 경비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에스원의 벤치마킹 대상이라고 할만한 일본의 세콤(SECOM)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매출액과 순이익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안전에 대한 욕구는 우리 사회가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 수록 커질 것입니다.
신세계이마트는 어떤가요. 이 회사는 수천가지 상품을 판매하지만 실은 싸게 매입해 적당한 이윤을 붙여 파는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습니다. 상품을 몇 종류 판매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얼마나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두 회사는 철광석, 철스크랩 등의 원재료를 매입해 철을 제조합니다.
워렌 버핏이 장기간에 걸쳐 놀라운 투자 성과를 거둔 데에는 탁월한 숫자 감각과 회계 재무 지식, 비즈니스에 대한 통찰력에 힘입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건 보통 사람이 따라잡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더 빛나게 만든 것은 애초에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짚어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워렌 버핏을 직접 만나 이런 저런 질문을 했지만 그가 한국 주식 시장의 속사정을 저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직접 만나본 워렌 버핏은 꾸밈이 없고 솔직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질문에나 성실하게 답변했고, 버크셔 해더웨이 주주미팅 기간 내내 어느 주주의 질문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한국의 주식 시장에서 성과를 낸 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 그래서 예측이 가능한 기업이 어디인지를 찾는 일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비밀 정보가 있다던가 버핏 마케팅 효과 때문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는 건너 뛰고 싶네요)
워렌 버핏이 회장으로 있는 버크셔 해더웨이의 2007년 사업 보고서에 나오는 종목들을 보면 그가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을 선호한다는 사실이 다시 드러납니다.
포트폴리오의 맨 위에 나와있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여행자 수표 사업, 보험, 은행, 투자자문 등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금융업이네요.
그 아래칸에 나오는 안호이저 부시는 맥주를 만들고, 바로 아래칸의 코카 콜라는 콜라를 만듭니다. 무디스는 신용평가 사업을 하고, 테스코는 할인점 사업을 하고, USG는 석고보드를 제조합니다. 어떤 사업을 하는지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전업 투자자가 아니라 직장에 다니는 개인 투자자라면 워렌 버핏식의 투자 기법에 관심을 가질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는 제 개인적인 경험칙이기도 합니다. 저는 대부분의 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직장에 다니면서 투자에 관심을 갖는 입장인데 기업을 분석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아주 큰 장벽으로 다가옵니다. 직장인 투자자라면 실감할 것입니다.
피터 린치식의 투자 기법 – 저는 피터 린치식 투자기법을 기업의 작은 변수까지 철저히 따져서 턴어라운드 종목 등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 을 구사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들다가도, 이건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불가능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자신의 능력 바깥의 기회를 놓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아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다양한 사업 영역을 가진 기업에 투자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투자 성과가 높은 그런 투자 방법은 따로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 투자자들은 담당 업체가 정해진 애널리스트가 아니고 미리 정해진 방침에 따라 특정 종목만 매입해야 하는 펀드 매니저도 아닙니다. 한국의 주식 시장에는 삼성전자나 삼성테크윈에 맞먹는 시가총액을 갖고 있으면서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이 널려 있습니다. 개인투자자의 이런 강점을 활용하는 것이 투자 성과를 높이는 방법의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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