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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투자]투자는 둥근 공이 아니다

[양진석의 생각투자]

경제학원론을 배운 사람이라면 ‘완전경쟁시장’이론에 대해서도 들어봤을 듯하다.  매우 많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있으며, 동질의 상품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시장을 의미한다. 다수의 경제주체가 경쟁하므로 가격이 동일하고, 소비자와 공급자는 정해진 가격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시장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기업도 다른 기업보다 더 많은 이윤을 거둘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소비자도 많은 발품을 팔아 시장을 돌아다녀봤자, 더 싸게 파는 기업을 발견할 수 없다. 

오스트리안 학파의 거장인 하이에크는 신고전학파의 이러한 이론을 맹렬히 비판했다. ‘경쟁’이란 공급자 입장에서는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강렬한 행위이고, 반대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사기 위한 발품팔이 활동이다. 그런데 신고전파가 상정하는 완전경쟁시장에는 어떠한 경쟁행위도 없다. 주어진 가격에 순응하는 무력한 경제주체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이에크가 보는 경쟁은 매우 동태적(Dynamic)이다. 그는 경쟁은 ‘멈춰진(Static)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균형을 찾아가는 역동적인‘과정’으로 생각했다. 공급자인 기업은 어떻게든 좋은 제품을 만들고, 운영비용을 줄여서 여타 기업을 제압하고자 한다. 바로 그것이 경쟁이다. 소비자들은 할인매장과 인터넷을 다 뒤져서라도 더 싸게 팔고, 신속하게 배송 받을 수 있는 곳을 찾고자 한다. 물론 그것 또한 경쟁의 일환이다. 스스로의 삶을 더욱 나아지게 만들려는 인간의 유인(Incentive)이 경쟁으로 표출된다고 본다면, 완전경쟁시장이 현실에서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런 시장은 곧 해체될 것이다.


수리경제학에서 상정하는 모형(model)은 매우 아름답다. 수학과 그래프로 점철된 아름다운 공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 또한 세상을 수학으로 포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모형들은 모두 다 ‘세트리스 파리부스(Cetris Paribus)’라는 한계를 가진다.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이라는 전제하에 생성된 모형이라는 뜻이다.
복잡한 시장의 행태를 단순한 모형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세트리스 파리부스가 필수적이다. 차수를 알 수 없는 고차방정식을 1차 혹은 2차 방정식으로 바꿔야 수학적인 해답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아름다운 함수를 통해 어떤 해답을 얻어냈다 하더라도 전제했던 여러 가지 가정들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까? 모형의 효용성은 급속도로 무너지지 않을까?


이른바 ‘효율시장가설’도 ‘완전경쟁시장’논리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은가 싶다. 수많은 매수자와 매도자가 주식시장에서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주식가치의 고평가나 저평가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 효율시장가설의 출발이다. 말하자면 시장에서 매기는 가격은 ‘언제나 옳다’는 것이다. 이들에 의하면 가치와 가격의 괴리는 찾을 수 없고, 지금 현재 거래되는 가격이 바로 균형이다. 

물론 효율시장가설에도 여러 가지 전제가 있다. 그런데 이 가설을 만든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공식에 지나치게 도취됐던 것 같다. 누군가 말했듯이 복잡다단한 금융의 세계를 하나의 ‘매끈한 공’으로 포장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공식을 직접 증명하려고 금융회사를 하나 설립했다. 그러다가 망해버린 것이 그 유명한 LTCM(Long-term Capital Management)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채권수익률이 결국은 수렴할 것이라고 판단한 LTCM은 미국국채를 공매도하고, 러시아 채권선물을 사들이는 전략을 택했다. LTCM의 아비트리지(차익거래) 전략이 물론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하면서 러시아 국채는 한 순간에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회사는 무려 자기자본의 100배를 차입하여 투자하고 있었다. 외환위기 때 IMF가 우리기업들에 요구했던 부채비율이 200%이내였는데, 정작 그 대단한 금융회사는 무려 10,000%의 부채비율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금융은 결코 둥근 공이 아니다. 완전한 투자의 공식도 없다. 자아도취의 결과는 LTCM 같은 파산일 뿐이다. 어떤 계량적인 분석과 수학적인 공식을 통해 투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위대한 펀드매니저였던 피터 린치의 말을 음미할 것을 권한다.

나는 주식시장에서는 모든 정보가 즉시 알려져서 완전히 주식가격에 반영된다는 ‘효율적 시장가설’과 시장의 등락은 비합리적이며 전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랜덤워크 가설’을 통합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나는 주식시장의 합리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히 많은 이상변동을 목격했고, 피델리티의 탁월한 펀드 운영자들의 성공을 어렵지 않게 예견할 수 있었다. 계량분석이나 랜덤워크 가설을 신봉하는 와튼스쿨의 교수들이 내 동료들만큼 실제로 투자를 잘하지도 못한다는 것이 명백해지자 나는 이론파와 현장파 사이에서 후자와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정했다.       


/양진석 오르멜라 어드바이저스 대표

 

양진석 오르멜라 어드바이저스 대표는 10여년간 경제관련 기관에서 경제 분석가로 활동한 뒤 최근에는 투자연구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이의 결과물로 투자 대가들의 투자법을 연구, 분석한 '거인의 어깨위에서 투자하라'라는 책을 펴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단순한 원칙들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투자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지론을 가진 양진석 대표의 칼럼에서 '생각하는 투자'의 단초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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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 히이로
    마지막의 피터린치의 말은 참 의미가 있네요...http://
    2008.04/26 14:47 답글쓰기
  • 히이로
    2008.04/2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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