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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21.4] 미국사례로 본 한국재벌의 미래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삼성특검이 시작되었습니다. 특정 기업집단에 대한 특별검사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재벌의 파워가 사회적으로 견제되어야할 정도로 막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성특검은 군부독재정부에 의해서 견제가 되었던 재벌들이 민주주의 정부에서는 정부를 능가하는 힘으로 가지며 국가전반적인 견제가 필요할 정도로 커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삼성과 같은 거대기업집단이 국가에 의해 견제받을 정도로 커졌을 때, 그 기업들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할까요? 이에 대한 해답으로 우리보다 자본주의가 발달해서 앞서 이런 문제가 직면했던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흔히 재벌은 일본이나 한국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알고 있으나, 한 가문이 사업을 통해서 성장해서 거대기업집단을 지배하면서 특권가문으로 성장하는 경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에는 록펠러 가문과 모건 가문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따라서 두 가문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봄으로써 한국 재벌의 미래를 예측하는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 국내에 두 집안을 다룬 두 권의 책들(록펠러 가(家)의 사람들, 금융제국 J.P.모건)이 번역되어 있으므로, 이들 책들의 내용을 중심으로 두 집안을 통해 한국재벌이 나아갈 바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록펠러 가(家)의 사람들 | 원제 The Rockefellers
데이빗 호로위츠, 피터 콜리어 (지은이), 함규진 (옮긴이) | 씨앗을뿌리는사람
금융제국 J.P.모건 1 | 원제 The House of Morgan (1990)
론 처노 (지은이), 강남규 (옮긴이) | 플래닛
부의 축적 및 유지 방법
두 집안이 부를 형성한 과정을 보면 유사한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두 집안 모두 대부분의 산업에서 필수적인 요소 중에 하나인 석유(록펠러 가문)와 돈(모건 가문)을 독점을 통해서 장악함으로써 막대한 초과이윤을 누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독점의 방식입니다. 록펠러 집안은 석유 사업에 필수적인 운송망을 장악함으로써 경쟁사들을 압박해 통합을 함으로써 수직-수평적 계열화를 모두 완성함으로써 초과이윤을 획득했고, 모건 집안은 막대한 자금과 신용을 바탕으로 거대자본이 필요한 철도, 운하, 해운, 철강 등의 거대기업의 설립을 관장하고 이들을 지배하면서 부를 늘려갔다는 점입니다.
즉 이들은 경쟁을 싫어했고 가능하면 독점을 통한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통해서 사업을 영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모건의 초기 창업주들은 경쟁은 천박한 것으로 간주했고, 경쟁자뿐만 아니라 파트너나 고객들도 선별된 소수하고만 상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독점을 형성하기 위해서 불황을 적절히 이용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기업가들의 재산을 형성하려면 호황기에 성장을 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지 쉬운데, 불황기를 미리 예측할 수 있고 불황기에 충분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다면 불황기에 무너진 기업이나 자산들을 헐값에 매입함으로써 호황기에 벌 수 있는 돈의 수십배를 단번에 벌 수 있습니다.
자금의 규모가 커질수록 효과적인 투자안을 찾기가 힘든 상황에서 가치있는 자산을 헐값에 매입하는 것만큼 손쉽게 돈버는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모건 가문이 자산을 급격히 늘릴 경우는 모두 미국 경기가 불황이거나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입니다.
또한 규모가 일정수준을 넘어가면서 단순히 자신만의 사업분야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금융업을 통해서 다양한 산업의 기업들까지 지배하는 거대 재벌로 성장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커진 규모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돈을 버는 방법인 독점이나 헐값으로 자산매입하기에 가장 유리한 사업형태가 금융업이기 때문입니다.
모건 집안은 원래 미국에서 발행한 채권을 유럽에 파는 일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주식발행도 대행하면서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투자자들로부터 의결권을 받거나 자신이 직접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유수의 기업들의 경영권을 장악했다. 미국에서 철강왕으로 불리우던 카네기의 철강회사를 인수해서 미국 최고의 철강회사인 US스틸을 만들어 경영권을 장악한 것도 모건 집안이며, 미국 대부분의 철도회사들의 배후에도 모건 집안이 있었습니다. 록펠러 집안이 금융업에 진출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씨티은행의 모태인 “First National City Bank”이나 지금은 JP모건체이스와 합병되었지만 한때 미국을 대표하는 은행이었던 “체이스맨하튼은행”을 지배했고, 이러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업들을 지배했습니다.
즉 두 기업 모두 출발은 달랐지만 궁극적으로는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업을 장악하여 자신들의 자금 이상의 돈을 좌우하면서 이러한 자금력을 다른 기업들을 지배함으로서 발전해왔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사회지도층을 중심으로 한 막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면서 정치를 비롯한 사회각분야에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부를 늘리고 유지해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건 가문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매금융은 하지 않고, 교황이나 왕가나 정부 및 거대 기업가나 정치인들만을 대상으로 영업을 했으며 심지어 고객들조차도 일정수준의 교양이나 지위 및 돈(요구불예금잔고를 계설하려면 최소한 백만불 이상의 현금잔고를 유지해야 함)을 요구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모건 가문이 미국의 중앙은행이 설립될 때 전반적으로 통제를 하거나, 2차대전이 벌어졌을 때 미국의 적성국인 무솔리니나 일본 대장성에 조언을 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록펠러 집안도 3대째 미국공화당 후보까지 나선 상원의원이자 부대통령인 넬슨 록펠러가 나왔으며, 록펠러 재단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포함한 정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세계지배와 관련해서 빈번히 언급되는 서구 정치계에 영향력이 큰 비공식 단체들로 알려진 ‘빌더버그 그룹’, ‘삼각위원회’, ‘외교관계협의회(CFR)’등에도 위 두 가문과 관련된 다수의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이들의 영향력이 단순히 경제계를 넘어서고 있음을 알려준다.
사회적 견제와 대응방법
두 집안 산업내 필수요소를 독점하고 이를 통해 거대 트러스트를 형성하면서 사회적인 견제를 받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첨병이라고 믿는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기업의 강제분활과 그릅의 해체가 이루어집니다.
록펠러 가문의 주력기업인 스탠다드 오일사는 분활되어 엑슨사, 모빌사, 쉐브론사, 아모코사, 컨티넨털사 등으로 분할되었고, 모건가의 JP모건사는 JP사와 모건스탠리로 분할되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가 분리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두 집안은 수많은 사회적 비난을 받으며 자본주의의 괴물로 취급받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우선 자신들의 재산은 자신들이 세운 공적재단으로 이양하고 그러한 재단을 통해서 자선활동을 강화하고 이를 널리 홍보함으로써 여론의 비난을 극복했다. 재산의 공적재단으로의 이양은 상속세의 회피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재단에 대한 운영권은 철저히 자기 가문의 지배하에 둠으로써 사실상의 지배력을 계속 유지했다. 또한 재단을 통해 다양한 자선이나 사회활동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자신들의 우군들을 늘려가는 효과도 있다.
그리고 부의 형성과정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경제 이외에 정치, 언론, 환경, 국제외교 등 다양한 분야의 인적네트워크를 강화해서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데 집중합니다.
또한 기업들을 여러 기업들로 분할하거나,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대신 공적재단이나 여러 후손들로 지분을 복잡하게 분산하여 형식적인 지배구조의 독점이 깨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작업들도 진행되었습니다.
우리의 재벌기업들의 상황과 향후 진행방향
이상의 두 가문의 상황은 단순히 몇십년전 미국의 애기만은 아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에서 후발주자인 우리 재벌기업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수준이 스탠다드오일사나 JP모건사가 독점에 대한 대중적인 여론이 확산되면서 기업분할이 이루어지기 직전 상황과 유사한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의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적 정서가 그 때보다는 강하고 기업의 사회적인 영향력이 확대되었다는 장점들도 있지만, 공적재단이나 자선사업을 통한 부의사회환원에 대한 정교함의 부족하며 특정 자손에게 확실하게 재산을 넘기려는 혈연적으로 집착한다는 단점들도 있습니다.
특히 사회적 영향력이나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삼성 그룹의 경우 여론이 악화된다면 자칫 그룹의 분할로 이어지면서 해체될 가능성도 미세하나마 있습니다. 금산법의 유지와 상속세에 대한 강화가 이루어진다면 삼성전자 중심의 제조그룹과 삼성생명 중심의 금융그룹으로의 분할가능성도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주식투자자 입장에서 향후 재벌들의 예상되는 행동들 중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들은 어떤 것일까요?
우선 재벌들의 은행에 대한 진출이 가속될 것이므로 재벌들이 소유할 수 있는 은행들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는 유효하다는 점입니다. 석유산업에서 시작한 록펠러 가문도 규모가 일정수준 이상 커질 때에는 은행을 지배한 뒤, 금융산업에 대한 레버리지로 다른 기업들을 M&A함으로써 영향력을 확대하며 복합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기업들도 최근 투자할 곳이 줄어들면서 직접 설비투자를 하기보다는 다른 기업들을 M&A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점과 재벌의 사회적 영향력에 비해서 금융업의 핵심인 은행에 대한 재벌들의 지배력이 작은데, 최근 금산법 폐지여론이 확산되고 있으며 정부에서 은행매물을 다량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점이 중요합니다.
물론 만에 하나 은행에 대한 소유가 늦어질 것에 대비해서 보험이나 증권사의 지급결제력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고는 있지만, 잠재적 매물이 될 수 있는 우리금융지주, 기업은행, 산업은행 등의 자산규모와 재벌들이 소유하고 있는 증권/보험사들의 자산규모와 은행이 가지는 사회적 신뢰성 및 유통망 등을 고려할 때, 은행들에 대한 재벌들의 갈망을 계속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삼성의 우리금융지주의 인수가능성에 대해서만 고민을 했지만, 정부에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을 포함해 수출입은행이나 우체국의 금융사업 등도 민영화할 수 있으므로 지금까지는 금융과 무관했던 현대차 그룹, 현대중공업 그룹, 롯데그룹, SK그룹, GS그룹 등의 은행업 진출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은행을 직접 소유하기 힘든 재벌들의 경우에도 은행이외의 금융사업을 확대함으로써 다른 기업들을 M&A를 확대하거나 지배력을 유지하는데 적극 사용할 것입니다. 금융업과 무관했던 현대차그룹이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를 중심으로 한 금융분야를 강화하거나 롯데그룹이 대한화재의 인수와 카드 및 캐피탈사업을 강화한 것 등에 주목해야 합니다.
중견기업중에서 한화가 대한생명의 인수에 힘쓴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은행 이외 금융기관들 중에서도 규모가 일정수준 이상이면서 재벌과 무관한 업체들은 M&A의 매물이 되거나 M&A의 주체로 적극 부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항후 재벌들의 성장전략이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기업들을 M&A를 통해 독점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규모가 커진 상황에서 그 규모에 예전 정도의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신규성장산업을 찾기 힘들고, M&A를 통한 산업의 독점을 추구할 정도의 자금이 기업내부에 어느정도 축적되어 있으며, 새정부하에서 대규모 M&A매물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약산업처럼 향후 성장성이 있으면서도 아직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군웅할거하는 시장의 경우 M&A를 통한 규모의 경쟁력으로 시장을 장악하려는 대기업들의 접근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향후 산업간의 장벽이 약화되고 독점도와 소수기업으로의 집중현상이 보다 강화되는 방향으로 산업이 개편될 가능성이 커질 것입니다. 이는 친기업을 내세우는 이명박 정권하에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업에 대한 여론이나 평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지가 기업경쟁력에서 향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세상에 빛이 있으면 그만큼의 그림자도 발생하는 법입니다. 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될수록 예전과는 다른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게 되며, 이를 간과하는 경우에는 그룹의 해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개월간 발생한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사건들을 상기해보면 이랜드의 뉴코아백화점 사태, 한국타이어의 노동자 사망사건, 시멘트업계의 오염된 시멘트논쟁, 삼성중공업의 태안앞바다 오염사태, 삼성 그룹의 상속 등과 관련한 불법행위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지금까지는 기업들의 무대응으로도 그럭저럭 넘어갔지만, 향후에는 사회적으로 큰 무리를 일으킬 가능성도 큰 만큼 전사적으로 이런 상황을 관리하는 능력도 기업의 질적능력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어느 기업들보다도 먼저 사회에 8천억을 기부하겠다는 삼성의 시도는 의미있었지만, 이후 과정에서 조삼모사식으로 넘어감으로써 신뢰성을 악화시킨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국내 기업들 중에서 가장 먼저 거액의 증여세를 납부함으로써 기업의 투명성과 관련된 무형의 자산을 확보한 신세계의 사례는 주목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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