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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맥주전쟁의 끝은 어디인가
한국 맥주의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으로부터 역사상 최초의 맥주인 삿뽀로 맥주가 들어왔다. 그 후 에비스 맥주와 기린 맥주가 순차적으로 들어왔다. 그 후 1934년 일본의 대일본맥주 주식회사가 군수품으로 맥주를 공급하기 위해 한국에 조선맥주 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기린맥주 주식회사가 소화기린맥주 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조선맥주 주식회사는 바로 하이트맥주의 전신이고, 소화기린맥주 주식회사는 동양맥주 주식회사를 거쳐 OB맥주로 이어진다. 즉 현재의 하이트맥주와 OB맥주는 일제시대 세워진 일본맥주사들의 자회사에서 출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 맥주의 역사는 OB맥주와 하이트맥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과점시장을 형성해 왔다. 90년대 초까지는 양사가 경쟁보다는 안정된 과점시장의 형태로 이익을 향유해왔다. 시장점유율은 동양맥주가 70%, 조선맥주가 30% 정도였지만 조선맥주의 30%점유율은 동양맥주가 OB라는 강력한 브랜드와 유통망을 통해 시장을 지배하면서, 독점논란을 해소하고 크라운 맥주를 다른 대기업이 인수해 맥주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내준 시장점유율에 불과하였다. 즉, 동양맥주는 조선맥주를 보호하면서 당시 시장지위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40여 년간 유지되었던 동양맥주의 전성시대는 90년대 들어서며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된다.
첫번째는 바로 1991년 발생한 낙동강 페놀사건이다. 낙동강 페놀사건은 1991년 3월 14일 경상북도 구미시 구포동에 있는 두산전자의 페놀원액 저장 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되어 발생하였다. 30톤의 페놀원액이 유출되어 상수원을 오염시켰다. 페놀원액은 14일 밤 10시경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약 8시간 동안 새어 나왔으나 발견하지 못했고,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대구 시민들의 신고를 받은 취수장 측에서는 원인을 규명하지도 않은 채 페놀 소독에 사용해서는 안 되는 염소를 다량 투입, 사태를 악화시켰다.
페놀은 계속 낙동강을 타고 흘러 밀양과 함안, 칠서 수원지 등에서도 잇따라 검출되어 부산, 마산을 포함한 영남 전지역이 페놀 파동에 휩쓸리게 되었다. 이 사고로 대구지방 환경청 공무원 7명과 두산전자 관계자 6명 등 13명이 구속되고, 관계 공무원 11명이 징계 조치되는 등 문책인사가 뒤따랐고, 국회에서는 진상 조사위원회가 열렸고 각 시민 단체는 수돗물 페놀 오염대책 시민단체 협의회를 결성하였으며, 두산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도 하였다.
두산전자는 조업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페놀 사고가 단순한 과실일 뿐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20일 만에 조업 재개가 허용되었다. 그러나 4월 22일 페놀탱크 송출 파이프의 이음새 부분이 파열되어 또다시 페놀원액 2톤이 낙동강에 유입되는 2차 사고가 일어남으로써 사태가 악화되어 국민들의 항의 시위가 확대되었다. 마침내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환경부장차관이 인책, 경질되었다.
두 번에 걸쳐 일어난 낙동강 페놀오염사건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질오염 사건이다. 페놀은 유독물질로 피부암과 생식이상을 일으키고 태아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 사고에 대해 피해보상을 요구한 신고건수는 1,958건에 액수는 24억 5천만원에 이르렀고 이 중 임산부 8명이 자연유산, 임신중절 등으로 인한 피해보상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두 번의 페놀사건으로 일어난 OB맥주 불매운동으로 인해 조선맥주는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두번째 요인은 바로 부동의 소주1위 기업인 진로의 맥주시장 진출이다. 1993년 진로는 미국 쿠어스사와 합작으로 맥주시장에 진출하였다. 소주시장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강력한 유통망을 바탕으로 막대한 판관비를 집행하며
이러한 마케팅 전략이 주효하면서 오히려 OB가 하이트와 카스의 협공을 받으면서 시장점유율이 폭락하였다. 동양맥주는 뒤늦게 아이스, 넥스 등의 신제품을 출시하며 맞섰지만 이미 대세의 흐름은 바뀐 뒤였다.
하이트맥주는 신제품 출시 3년만인 1996년 시장점유율 43%를 기록하며 만년 1위 기업이던 동양맥주를 꺽고 1위에 등극한다. 그 후 지금까지 한번도 1위를 놓치지 않고 2006년에는 60%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였다. 1995년 동양맥주는 사명을 OB맥주로 바꾸고 신제품 라거를 출시하며 당시 최소스타인 박중훈을 내세워 강력한 마케팅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뒤집기에 실패하였고, 조선맥주도 1998년 사명을 하이트맥주로 바꾸고 2002년 프라이엄 브랜드인 하이트프라임을 출시한다. 1999년 OB맥주는 진로의 부도로 경영난에 봉착한 진로쿠어스를 인수하며 1위탈환을 시도했지만 계속되는 부진으로 점점 더 추락하고 있다.
한 때 70%의 MS를 기록하던 OB맥주는 현재 10%대의 MS로 날개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두산그룹은 1998년 맥주사업 철수를 선언하며 OB맥주 지분 50%를 인터브루에 매각하였다. 동시에 OB베어스도 두산베어스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인수를 위해 남은 지분 45%도 매각하였다. 인터브루는 벡스를 생산하는 벨기에 맥주회사로 세계 맥주시장 점유율 16%를 차지하는 최대 맥주회사 맥주회사이며 현재 인베브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맥주시장 점유율, 2007년기준>
현재는 하이트맥주가 부동의 1위를 고수하며 진로마저 인수해 맥주와 소주시장을 모두 장악한 초대형 주류업체로 탄생한 반면에,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던 OB맥주는 옛 영화를 뒤로한채 외국계 자회사로서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다. 우리네 인생에 있어서도 독보적 1위라고 자만말고, 만년 2등이라고 기죽지 말자.
김일태(annaf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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