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투자 뉴스 > 전체
아이투자 전체 News 글입니다.
키움증권, 비즈니스 모델을 키우다
지난해말 증권업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이후 신규 설립된 증권사는 모두 8개. 미래에셋 키움닷컴 이트레이드 코리아RB 리딩투자 겟모어 모아 비엔지 등이 그들이다. 대한투신 한국투신 동양투신 등 전환증권사까지 합하면 올들어서만 지금까지 11개 증권사가 설립됐다. 국내 증권사 숫자는 43개로 불어났다. 이외에도 이뱅크증권 피데스증권이 증권업 허가를 신청해놓은 상태이다. 신설증권사 중 모든 증권업무를 취급하는 종합증권사는 미래에셋 키움닷컴 등 2개 회사뿐이다. 리딩투자는 자기매매 및 위탁매매를 업무를 취급하는 증권사이고 나머지는 위탁매매전문 증권사다.
-한국경제 2000년 10월 16일 기사
위는 한국경제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지금 봐도 참 많은 신설 증권사가 무모하게 증권업에 몸을 던졌다는 생각이 드는데 당시에는 오죽 했을까 싶다. 그 누구도 키움증권이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며 점유율 9.29%로 M/S 기준 업계 1위 자리를 꿰어 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리테일만 놓고 봤을 때 15.39%로 말 그대로 개인투자자들만 상대하는 영업에서는 지존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미 40여개 증권사가 각축을 벌이던 판에 후발주자가 뛰어들어 1등의 자리에 오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키움증권의 성공을 단지 운이 좋았던 것 혹은 충격적이었던 뽕짝가수 이박사가 등장한 광고 정도로 평가절하하는 듯 하다. 이는 어영부영 하는 사이에 자기 영역을 다 내주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키움증권이라는 말만 들으면 콧방귀를 뀌며 무시하는 대형증권사들도 마찬가지다. 좀더 본질적인 성공의 이유를 찾아보자.
1) 절묘한 가격 정책
키움이 시장에 들어오기 전 증권사의 수수료는 그리 싸지 않았다. 사이버 거래수수료가 평균 0.25%에 전화 주문 수수료는 무려 1%에 이르렀다. 이러다 보니 한 증권사가 사이버 거래수수료를 0.10%로 낮췄다고 발표하자마자 수수료 파괴니 업계 재편의 신호탄이니 해서 떠들썩할 정도였다. 이 상황에서 키움증권은 기존 파격 수수료의 4분의 1 값인 0.025%라는 엽기적인 수수료 체계를 들고 나왔다.
증권사의 거래수수료는 [유관기관수수료 0.010% + 증권사 마진]으로 구성된다. 즉 0.010%는 고정비용으로 ‘무조건’ 적자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거래수수료는 0.010% 밑으로 내려갈 수 없다. 이런 공식 하에서 키움증권의 마진은 불과 0.015%에 불과하다. 그런데 키움증권에서 치열한 고민을 해서 결정한 이 숫자가 결국 키움증권에 버핏이 얘기하는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를 가져다 줬다.
일단 전국 지점망을 유지하고 있었던 기존 증권사 입장에서는 키움증권 수준의 마진으로는 적자가 뻔했다. 게다가 당시 증권사의 유일한 수입원은 위탁매매였다. 만약 당시 펀드 판매가 활성화 되어 있다면 기존 증권사 중에 거래수수료 안 먹어도 좋으니 고객 확보해서 펀드수수료 먹겠다고 나섰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키움의 전략은 무위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기존 증권사들은 거래수수료를 키움 수준까지 낮추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수수료에 민감한 헤비유저층을 필두로 상당 수의 고객들이 키움으로 이적했다.
문제는 이 마진으로 키움증권도 돈을 남길 수 있느냐는 것이었는데 물론 처음에는 무진장 힘들었다. 아무리 100% 온라인증권사라 해도 기본 사업 운영을 위한 고정비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종합증권사를 하느라 자본금도 500억원이나 들어가서 대주주인 다우기술 입장에서는 기회비용도 무척이나 컸다. 하지만 채권딜링, 자기자본투자 등을 하며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낸 결과 일정 고객층이 확보되고 난 이후에는 0.015% 마진으로도 두 자리 수의 ROE를 올릴 수 있었다. 이것은 주식거래와 마찬가지로 고객 입장에서 무차별한 보험 상품을 파는 GEICO와 유사한 ‘낮은 가격과 낮은 비용’에 기초한 경쟁우위와 같은 속성을 가진다 하겠다.
최근 수수료인하경쟁에 다시 촉발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투자증권의 뱅키스와 동부증권의 팝콘(구 겟모아)이 키움보다 낮은 0.024%의 수수료를 내세워 국내 최저가라며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키움이 시장에 진입했을 당시 키움을 이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고객의 비용 감소분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예를 들어 2000년에 월10억을 거래하는 사람이 대우증권을 쓰고 있다가 키움으로 바꿨다면 비용 감소분은 75만원이었다. 월 75만원이면 생활비 수준이므로 계좌를 옮기는 수고를 충분히 할만한 액수다. 하지만 이 사람이 키움에서 한번 더 뱅키스로 바꾼다면 비용 감소분은 1만원에 불과하다. 키움의 가격 정책과 타이밍이 얼마나 절묘했나를 다시 한번 말해주는 듯 하다.
2) 브랜드 포지셔닝 선점
앞서도 밝혔듯이 키움증권의 수수료는 이제 더 이상 국내 최저가 아니다. 그러나 아무나 붙잡고 한번 물어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싼 수수료를 제시하는 증권사가 어디냐고 말이다. 십중팔구 키움증권이란 대답이 튀어나올 것이다.
더 이상 차별성을 제공할 수 없는 증권업의 특성상 고객들의 머리 속에서 브랜드 포지셔닝이 이미 끝났다는 뜻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삼성증권은 안전, 미래에셋증권은 펀드, 키움증권은 최저가 혹은 개인투자 이런 식이다. 이 세 개 증권사 외에 특별한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증권사는 대신증권 정도가 유일해 보인다. 다행인 것은 막강한 브랜드의 삼성이 자산관리 해준답시고 위탁거래를 외면하였고, 가장 기민하게 움직이는 미래에셋증권은 역할이 운용사의 판매창구였으므로 펀드 판매에 역량을 집중하는 바람에 개인투자자에 집중하는 키움증권이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키움증권은 광고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지난 해 3분기까지 광고선전비가 32억원에 불과할 정도다.(2005년 25억원) 투자수익률 대회도 손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단기 처방이란 이유로 자제하고 있다. 초기 이박사 광고 융단 폭격을 생각한다면 키움은 말 그대로 정중동이다. 그러나 고객 계좌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이는 브랜드 포지셔닝 외에 다른 이유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3) 비빌 언덕이 없는 배수의 진
우리나라 대부분의 증권사는 대부분 대기업 계열 혹은 금융지주회사 계열로 소위 말해 뒷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증권은 삼성생명, 한화증권은 대한생명, 굿모닝신한증권은 신한은행, 대우증권은 산업은행을 뒤에 업고 있는 식이다. 중소형 증권사들은 그렇지 못하다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들은 오랜 업력 동안 쌓아온 자기자본이 있다. 신영, 부국, 유화, 신흥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비해 출범 당시 키움증권은 적수공권이었다. 주인인 다우기술은 영업이익을 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증자로 땡겨 놓은 자본 500억원을 올인했는데 그나마도 증권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오로지 가지고 있는 장점이란 IT 기술과 저비용 구조를 실현할 수 있는 깨끗한 도화지를 가지고 있는 정도였다.
배수진을 치고 이박사 광고로 세상에 자기를 요란하게 알린 키움은 뒤에서는 서비스의 질을 올리는데 주력했다. 우선 IT 기술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경쟁사인 이트레이드가 미국에서 사용하던 자바 기반의 거래시스템을 도입한 반면 키움은 한국의 사정을 고려해 두리정보통신과 함께 ‘영웅문’이라는 전용HTS를 개발했다. 그런데 솔직히 IT기술 자체에는 큰 차별점이 없었지만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영웅문은 수수료가 싸면서도 데이트레이더들이 쓰기에 적합한 HTS로 떠올랐다.
첫째, 기존 증권사들은 HTS뿐 아니라 거액 개인고객 유치, 법인고객 유치 등 신경 쓸 곳이 많았던 반면 키움증권은 온라인증권사인 탓에 오로지 HTS에 모든 것을 걸 수 밖에 없었다. 결전에 임하는 자세와 에너지의 집중도가 틀렸단 얘기다.
둘째, 그러다 보니 고객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할 수 밖에 없었다. 한번의 완성도보단 고객 요구를 온라인에서 접수해 지속적으로 개선, 업데이트해 나가는 방식으로 HTS를 보완해나갔다. 뉴스가 뜨면 자동주문이 되는 시스템도 고객이 요구한 사항을 시스템에 반영한 예다.
셋째, 더운 밥 찬 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으므로 대형 증권사가 “우리가 어떻게 그런 거까지 하나!” 할만한 것들을 과감하게 진행했다. 예를 들어 신용거래 180일,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을 통한 상담 서비스, 데이트레이더들이 심심치 않게 수다를 떨어주는 채널K 등이 있다.
역설적으로 대주주가 금융인이 아니라 IT 출신의 기업인이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워렌 버핏은 CEO의 자질로 업계의 관행에 도전하는 자세를 꼽았다. 키움의 전략은 다소 무식해 보이고 가이드라인이 없어 보이고 절박해 보이고 가치투자자가 보기에도 상당히 거북하고 희한한 서비스를 제공해 당황케 만들지만 업계의 관행에만큼은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리는 듯 하다.
2. 탁월한 BM, 규모의 경제라는 날개를 달다
99년에 이미 예견된 BM이 만개하다
2004년까지 키움증권은 업계 관행을 넘어선 이단아, 실패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살아남은 후발주자 정도의 평가를 받았지 ‘엄청나게 돈을 버는’이란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2004년 4월에 상장되었을 때도 시장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주가가 7,000원에서 3,000원대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도 그럴 것이 꾸준히 흑자를 냈다고는 하지만 연간 이익은 70억 정도에 자본금이 워낙 크다 보니 ROE가 10% 정도 겨우 나오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5년에 접어들면서 키움증권의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순이익이 납입자본금에 육박하는 479억원에 ROE 47.35%라는 엽기적인 수치를 보였다. 99년 IT 버블 당시 사람들이 얘기한 고정비용을 넘어서면 매출액이 그대로 이익으로 연결되는 인터넷 기업만의 환상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키움증권에도 사실이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우리는 멀리는 버핏이 좋아한 신문 기업에서, 가깝게는 이동통신 기업에서, 유사 업종으로는 NHN, 옥션, 엔씨소프트 등에서 이러한 현상을 목도할 수 있었는데 드디어 키움증권도 온라인증권이란 모델로 이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전자공시를 보면 직원수가 221명이라고 나온다.(전산은 현재 다우기술에서 아웃소싱) 하지만 여기서 금감원 규정상 정규직으로 유지해야 하는 콜센터 직원을 빼고 다시 투자상담사를 빼고 유가증권 자기매매를 하는 트레이더들을 빼면 실제로 이 시스템을 계획하고 움직이는 직원들의 숫자는 약 50여명에 불과하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면 상당한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셈이다.
3. 우려점
1) 직접투자시장의 위축
장기적으로 간접투자시장이 유망할까 직접투자시장이 유망할까? 이 질문에 삼척동자조차도 전자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이다. 그래서 키움증권은 ‘장기’라는 단어만 나오면 맥을 못 춘다. 실제 자료를 보더라도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분명히 시장의 위축은 장기적인 리스크 요인이자 키움증권이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그럴진대 키움증권도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하우스 주인으로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인다. 우선 여러 가지 게임들을 계속 소개하고 있다. 주식으로 시작해 선물옵션으로 문호를 넓힌 지는 꽤나 오래 되었고 최근에 ELW 교육을 하는 등 고스톱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카드게임을 가르쳐주는 식이다. 물론 주식만큼 비중을 크게 차지하지는 못하겠지만 개인투자자 비중이 줄더라도 직접투자해서 대박을 노리는 사람(High Risk Taker)은 언제든 존재한다는 면에서 키움증권은 방향을 잘 잡고 있는 듯 하다. 펀드는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2% 부족하다. 금연자 천국에선 흡연자 우호 정책이 매니아를 거느리는 법이다.
또한 다행히도 광고나 이벤트를 특별히 하지 않는데도 매월 계좌가 7~8000개씩 늘고 있다. 일단 온라인증권사들을 압도하고 있으며 어설프게 자산관리에 나선 중형 증권사들의 몫을 계속 빼앗아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시장점유율 증가분을 Breakdown 해보면 모든 증권사에서 조금씩 고객이 넘어오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사양 속 성장형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이트레이드의 시장점유율이 30% 정도이니 추가적으로 빼앗아올 몫은 더 남아있다고 판단된다.
2) 자본시장통합법의 영향
자통법이 통과되면 자본여력이 좋고 인적 수준이 낮은 중소형 증권사는 결국 몰락하고 말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키움증권도 자기자본을 계속 늘리고 자산운용사 설립 시도를 하는 등 대형화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통법 때문만은 아니며 브로커리지를 결국에는 넘어서야 한다는 당위성이 우선이다. 물론 현재 브로커리지가 워낙 잘 되고 있어 급박한 분위기는 아니다.
어쨌든 자통법이 시행되더라도 대부분의 대형증권사들이 브로커리지 쪽을 오히려 축소시키려는 방향을 잡을 것이므로 현재 키움의 캐쉬카우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키움처럼 확고한 브랜드를 갖춘 쪽은 일반 중소형 증권사와 같은 운명을 겪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증권사들이 대규모 자기자본 투자(PI)를 시작하면 이익의 변동성이 커져 가치투자자들이 접근하기에는 쉽지 않은 주식이 될 것이다. 따라서 키움처럼 확고하게 자기 위치를 가지고 꾸준하게 이익을 내는 회사가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다만 키움이 후일 브로커리지를 넘어 대형 증권사와 같은 분야로 진출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시간상 같은 출발선 상에 서는 것이 아니므로 쉽지 않은 게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방향을 택할 때는 고유한 매력을 잃을까 걱정된다.
김세훈(shkim@viptooza.com)
더 좋은 글 작성에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