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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심리를 역행해야 성공한다"

편집자주 월가의영웅,존템플턴
【편집자주=이 글은 과거에 박정태 기자가 머니투데이 재직(2001년)당시 '월가를 움직이는 100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던 글입니다. 시간상으로는 오래된 글이지만 월가의 영웅들의 철학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글이라 판단돼 다시 연재하고자 합니다. 시간이 흘러 일부 수치 등은 지난 데이터가 될 수도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박정태 기자는 현재 '굿모닝북스'의 대표이사로 가치투자와 관련된 좋은 책을 발행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모두가 절망에 빠져 주식을 팔 때 매입하고, 남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사들일 때 파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장래에는 엄청난 투자수익으로 보답할 것이다."

존 템플턴 경은 아시아 경제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1997~98년 한국과 싱가포르, 호주 등에 과감한 투자를 하면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올해로 89세를 맞는 템플턴은 지난 1992년 자신의 뮤추얼펀드 회사를 매각하면서 공식적으로는 은퇴했다. 하지만 그의 투자철학과 원칙은 여전히 월가의 금과옥조이며, 그가 행하는 강연에는 유명 펀드매니저와 투자자문가 들이 몰려들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월가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정신적 지주인 셈이다.

템플턴을 소개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화가 있다. 다름 아닌 그의 오늘을 있게 한 첫번 째 투자성공 사례다.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영국의 옥스포드대학에 로즈장학생으로 유학을 가 법학을 전공한 템플턴은 미국으로 돌아와 매릴린치의 투자자문부서에 잠시 근무한 뒤 지질탐사회사로 옮겼다. 이 때 유럽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1929년 이후 이어진 근 10년간의 대공황이 이제 끝나게 됐다고 생각하고 주식투자에 나선다.

그는 증권회사에 전화를 걸어 1달러 이하로 거래되는 모든 종목을 100달러 어치씩 사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결국 104개 종목에 1만달러를 투자하게 됐다. 4년 뒤 이 주식가치는 4만 달러가 됐고, 그는 이 자금으로 1940년 자신의 회사를 출범시킬 수 있었다.

이 일화는 그러나 템플턴의 진면목을 말해주지 않는다. 템플턴은 결코 가격이 싼 주식만을 매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싼 주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최고로 싼(the best bargain)" 주식을 매입한다. 여기서 최고로 싸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우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그래서 진정한 가치에 비해 아주 낮게 거래되는 주식이다. 한마디로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주식을 골라내는 것이며, 남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셈이다. 또 하나는 향후 주가상승 가능성이 큰 잠재력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수한 경영진, 시장을 선도하는 능력, 기술적 우위 등이 모두 고려된다.

템플턴은 특히 이같은 최고로 싼 주식을 고르기 위해 전 세계 주식시장을 대상으로 약 1만5,000개 상장기업을 조사한다. 그의 투자대상 리스트(the bargain list)는 이들 기업 가운데서 선정되고, 리스트에 오른 기업들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그의 포트폴리오에 편입한다. 그리고 숨어 있던 진정한 가치가 주가에 반영되기를 기다린다. 그의 주식보유 기간은 평균 5년이다. 템플턴이 주식을 파는 시점은 "주가가 많이 상승해 더 이상 싸지 않을 때"와 "현재 보유주식보다 50% 이상 더 싼 다른 주식을 발견했을 때"이다.

템플턴은 월가의 투자가들이 세계로 눈을 돌리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56년 자신의 이름을 딴 뮤추얼 펀드를 처음으로 시작한 템플턴은 1960년대 월가에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일본 주식시장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도쿄 주식시장이 개장한 1949년 닛케이 평균주가는 179였고, 당시 다우존스 지수도 이 정도였지만 1970년대 초까지 도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전부 합쳐도 IBM 한 회사의 시가총액에도 못미쳤다. 그가 일본에서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한 1968년 도쿄 주식시장에 상장된 주식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3배로 미국의 15배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템플턴은 도쿄 주식시장에서 "최고로 싼" 주식들을 골라냈다. 히다치, 닛산자동차, 마쓰시다전기, 스미토모신탁은행, 야스다화재 등이 그가 대거 매입한 주식들이다. 모두가 우수한 경영진과 세계적인 기술력,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진 기업이며, 잠재가치에 비해 매우 저평가된 주식들이었다. 야스다화재의 경우 장부가치의 20%에 거래될 정도였다. 그는 한때 자신이 운용하는 뮤추얼펀드 자산의 50%를 일본에 투자하기도 했다.

템플턴의 예측대로 도쿄 주식시장은 1960년대말부터 1980년대까지 붐을 타기 시작했다. 마침내 1986년 도쿄 주식시장 상장종목의 평균 PER이 30배를 넘어서자 그는 대부분의 보유주식을 처분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PER이 75배까지 갈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닛케이 평균주가가 1989년 3만9,000선을 넘어선 것을 감안하면 그의 처분시점은 조금 빠른 것이었다. 그러나 닛케이 평균주가는 그후 2년만에 1만4,000선까지 떨어졌고, 지금도 그 수준인 것을 보면 그의 판단은 옳았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일찍부터 일본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최고로 싼" 주식을 찾기 위해서였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투자대상을 골라야 정말로 최고로 싼 주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뮤추얼펀드 본사가 있는 캐나다를 비롯해 독일, 스위스, 스페인 등 유럽국가와 한국,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국가,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국가가 모두 그의 투자무대이다. 분산투자는 여러 기업, 다양한 산업은 물론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해야한다는 게 그의 투자원칙이다. 다만 사회주의국가와 인플레이션이 높은 국가는 투자대상에서 제외된다. 왜냐하면 이들 두 가지는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템플턴은 지난해 초 한 강연에서 자신이 투자대상으로 하는 모든 나라의 주가가 고평가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자산중 75%를 미 재무부채권과 같은 채권상품에 투자하라고 권했다. 나머지 25%의 투자자산은 건강산업 주식에 투자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화의 하락을 헤지하는 방안으로는 한국과 싱가포르, 호주에 분산투자할 것을 제시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의 말처럼 지난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주식시장이 모두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게놈관련주와 제약주를 비롯한 건강산업 관련주는 비교적 크게 올랐다.

월가에서도 손꼽히는 낙관주의자인 템플턴이지만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군중심리다. 패닉과 버블 모두 이 군중심리에서 비롯되며, 결국에는 모두 허망하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마침내 터져버린 닷컴주가의 거품 역시 그가 경계했던 군중심리의 소산이었을 것이다.

"버블은 몇 달 혹은 몇 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 기본적인 가치를 무시한 투자자들은 루머와 주변의 정보에 솔깃해져 어떤 가격이건 지불하고자 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투자자들이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그 때가 되면 시장은 패닉에 빠지고 온통 팔자주문이 쏟아지면서 거품은 붕괴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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