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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대결

편집자주 롯데제과,크라운제과,해태제과,더비매치
◇ 공공의 적이 된 과자



어린 시절에 썼던 일기를 읽어보다 인상적인 구절 하나를 발견했다. 아빠 친구가 과자종합선물세트를 사가지고 오셨다. 너무 기쁘다. 두고두고 먹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렌다.

그렇다. 불과 20년 전만해도 아이들에게 가장 큰 축복은 과자였고 어른들이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호의는 과자종합선물세트를 사주던지 가게 가서 과자를 사먹으라고 동전 몇 개를 쥐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에 이런 광경을 부모가 목격한다면 이런 말을 하며 불쾌감을 들어낼지 모른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과자야.

이 얘기는 아마도 이 글에도 해당될지도 모르겠다. 과자 파동으로 세상이 시끄러운데다가 저출산율로 과자의 주소비층인 애들까지 줄어들고 있는데 제과 회사를 봐서 무엇 하겠느냐는 것이다.

템플턴은 피가 철철 나는 곳에 관심을 두라 했다. 대가에 말에 따르자면 과자 시장을 한번 돌아보고 전통적으로 가치주들이 포진되었던 제과업체들을 다시 한번 돌아 보는 일을 100% 삽질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정말로 가치투자자의 방식대로 나쁜 면이 있다면 그 부분은 가격에 반영하면 그뿐이다.


◇ 전통의 명가 롯데제과

제과업계의 최강자는 역시 롯데제과다. 껌, 캔디, 비스킷, 초콜릿, 아이스크림까지 모든 분야를 아우르고 있으며 자이리톨껌, 목캔디, 빠다코코낫, 칸쵸, 제크, 카스타드, 빼빼로, 꼬깔콘, 가나초콜릿, 월드콘, 설레임, 스크루바 등 생산 제품들이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매출 100억원이 넘는 장수제품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롯데제과의 가장 큰 강점이다. 최근 유통업체들이 대형화 되면서 식품업체들의 협상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소비자들이 찾을 수 밖에 없는 제품을 구비해놓는 것이다 보니 단일 제품으로 일정 규모를 넘어가는 제품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롯데제과는 특히 껌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하는 CM송을 당연히 진실로 받아들이지만 미국의 리글리가 점령하지 못한 껌시장은 롯데가 버티고 있는 일본과 우리나라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글리는 육류를 섭취하는 서양인들에 맞게 질긴 반면 롯데는 곡류를 주로 먹는 동양인들에 맞게 부드러움을 강조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껌은 좋은 아이템의 속성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다. 첫째, 소비자의 기호가 작용하므로 충성도가 존재해 지속성이 좋다. 둘째, 씹다가 뱉기 때문에 끊임없이 소비된다. 셋째, 은근히 중독성이 있으면서도 유해 논란에서 빗겨나 있다. 특히 롯데제과의 최대 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자이리톨껌은 유해 논란은 커녕 껌을 이빨에 좋은 존재로 승화시켰다. 그 핑계로 높은 가격을 매겨놨음은 물론이다.


◇ 해태제과 업고 말 잡는다

롯데제과의 더비매치 상대는 원래 오리온이었으나 최근에는 크라운제과로 바뀌는 양상이다. 부도로 인해 뒷방에 쳐 박혀있던 해태제과를 큰 돈 들이지 않고 내 사람으로 만드는 수완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만년 꼴찌였던 크라운제과는 해태제과와 합쳐 롯데제과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시장점유율을 올릴 수 있었다. 마치 윷놀이에서 말을 업고 앞서가는 말을 쫓아가는 형국이다.

크라운제과도 워낙 저력 있는 기업이었으나 IMF 시절 부도로 인해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고 해태제과는 뻗어있고 오리온은 미디어 쪽에 관심이 있는 데다가 제품 포트폴리오가 스낵과 파이 위주로 협소하다 보니 제과업은 순전히 롯데제과 세상이었다. 절대강자가 군림하는 시장에서 부도났던 업체들이 합쳤는데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제과업의 독특함에서 비롯된다.

우선 소비자들은 과자를 고를 때 제조회사 이름보다는 제품 이름을 더 신뢰한다. 해태제과가 부도가 났더라도 홈런볼은 홈런볼일 뿐이며 크라운제과가 힘들다 어쩐다 해도 버터와플이 맛있으면 버터와플을 사먹을 뿐이다. 제과업은 아니지만 진로도 마찬가지 경우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런 회사들은 IMF 이후에 다시 살아나 재기하거나 좋은 몸값을 받고 팔렸다.

크라운제과+해태제과의 대표 브랜드들

유형
브랜드
비스킷 및 스넥
산도, 쿠크다스, 버터와플, 콘칩, 죠리퐁, 맛동산, 홈런볼, 에이스
초콜릿 및 파이
빅파이, 미니쉘, 오예스, 자유시간, 프렌치파이
캔디 및 껌
마이쮸, 연양갱, 아카시아, 덴티큐, T Smile, 화이틀엔젤
빙과류 및 냉동
호두마루, 브라보콘, 누가바, 시모나, 고향만두


덧붙이자면 크라운제과와 해태제과가 중복되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는 점도 시너지효과의 근원이다. 단적으로 크라운제과는 빙과 부문이 전무하지만 해태제과는 호두마루, 브라보콘 등으로 여전히 이 부문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둘을 합쳐도 껌 부문이 너무 약하다는 점이 롯데제과에 비해 열위한 점으로 지적된다. (크라운제과가 리글리 껌을 수입해서 팔다가 접은 적도 있다)


◇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다른 초식

제과업계는 말 그대로 수난 시대다. 거침없이 달려온 천하의 롯데제과도 매출이 3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딱 하나 좋은 점을 꼽으라면 기존 업체간의 다툼은 치열하지만 최소한 뉴 페이스와의 경쟁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누가 보더라도 사업전망이 어둡다 보니 박이 터지는 물 장사 쪽과는 달리 신규 진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롯데제과 매출액 추이 (1990~2005)




제과업체들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바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단 성장이 없다 뿐이지 이익이 꾸준하니 총알은 든든한 편이다. 대표적으로 오리온은 초코파이 판 돈으로 케이블 방송 등 엔터테인먼트에 꾸준히 투자한 결과 먹는 즐거움에서 보는 즐거움까지라고 우길 수 있게 되었다.

롯데제과와 크라운제과는 오리온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진 않고 아직까지는 본업에 충실한 모습니다. 다만 각론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여기서 1등과 2등의 차이를 극명히 드러냄을 알 수 있다.

롯데제과의 첫 번째 돌파구는 건강식품이다. 건강식품의 대표주자는 헬스원인데 말 그대로 비타민, 칼슘 등 건강보조식품에 다름 아니다. 제과 내에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기 보다는 유통망과 브랜드에 자신이 있으므로 새로운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 하다.





반대로 크라운제과는 제과 자체를 건강의 영역으로 올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건강에 나쁘지 않다는 인식을 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예를 들어 신제품의 경우 꽃게 스낵에 꽃게와 멸치를 직접 갈아 넣어 칼슘 보충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하거나 쿠키를 만들 때 설탕 대신 벌꿀을 쓰는 식이다. 기존 제품들은 천연 색소를 쓰는 방식으로 이미지 개선을 꾀하고 있다.

지난번 과자 파동이 났을 때도 방송사를 고소하는 등 가장 적극적이었던 곳이 크라운제과였는데 그만큼 제과업계의 대표주자로 인식되길 원하며 그로 인해 얻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전형적인 쫓아가는 자의 마인드다.

롯데제과의 두 번째 돌파구는 해외진출이다. 물론 롯데제과만의 비책은 아니다. 국내 시장의 한계를 절감하는 만큼 모든 제과업체들이 해외 특히 중국 및 동남아에서 기회를 탐색하고 있다. 다만 롯데제과와 크라운제과가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며 여기서 다분히 1등과 2등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롯데제과는 자금력이 풍부하다. 그래서 중국, 대만,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 현지법인을 만들고 사업을 직접 진행한다. 심지어 인도에 진출할 때는 현지 제과업체를 인수하는 방식까지 취했다. 실제로 성과도 이미 나타나고 있는데 중국에서는 자이리톨을 앞세워 리글리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크라운제과는 그나마 있던 자금까지 해태제과 인수에 부은 데다가 후발주자로서 국내에서도 여전히 할 일들이 많다고 보기 때문에 해외진출 시 투입량이 적으면서도 단기적인 효과가 있는 방식을 선호한다. 대표적인 방식이 윤영달 회장이 얘기하는 크로스 마케팅이다. 상하이처럼 큰 시장이 보일 때는 직접 공장 설립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현지 제과업체들의 유통망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 한계는 있지만 이만한 비즈니스 있나

살펴본 바와 같이 제과업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미래가치를 크게 보는 투자자라면 제과업 보다는 제약업이나 금융업에 관심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좀더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충분한 검증을 받았을 뿐 아니라 경쟁 구도가 정리된 산업을 찾는 투자자에겐 제과업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특히나 롯데제과와 크라운제과는 역사가 오래 되고 인구 성장기에 꾸준히 돈을 벌어놔 자산가치가 우수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롯데제과는 대표적으로 롯데쇼핑, 롯데칠성, 롯데삼강 등 상장된 알짜배기 롯데 계열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크라운제과는 해태제과, 크라운스낵 등 관련업체를 자회사로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안양 공장터 등 부동산이 있다. 물론 크라운제과는 해태제과 인수로 인해 천하무적 대차대조표를 가진 롯데제과에 비해 재무구조가 열위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변화 추구 성향이 강해 높은 자산 활용 가능성이 그 부분을 벌충해준다.

6월과 7월은 누가 뭐래도 축구의 달이다. 뱃살과 웰빙은 잠시 잊어 버리고 과자 한 봉지와 축구 경기 시청으로 달콤한 휴식을 취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런저런 과자를 먹어 보면서 품평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투자 아이디어가 된다는 것이 바로 가치투자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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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개

  • 버펫따라잡기
    잘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2006.07/07 08:53 답글쓰기
  • 버펫따라잡기
    2006.07/0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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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식이
    "두고두고 먹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렌다." 어릴때부터 글쓰기에 재능이 있으셨네요.
    2006.07/07 10:47 답글쓰기
  • 잠식이
    2006.07/0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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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프
    좋은 글 앞으로도 계속 부탁드립니다.
    2006.07/07 12:03 답글쓰기
  • 점프
    2006.07/07 12:03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고가치발굴,저가격_인내
    웰빙용 과자시장을 개척하면 좋을 것 같은데...
    2006.07/07 15:56 답글쓰기
  • 고가치발굴,저가격_인내
    2006.07/0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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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버니
    분명 블루오션은 있습니다. 제과업도 마찬가지겠죠? 너무 비싸설랑은네...ㅠㅠ
    2006.07/07 16:47 답글쓰기
  • 올버니
    2006.07/0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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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누기
    역시 최준철님께서 쓴 글은 누가 썼을까..잘썼네..하면서 읽게 되네요.
    맨 밑에는 최준철 이라는 이름이 써있고..
    역시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2006.07/11 23:16 답글쓰기
  • 그누기
    2006.07/11 23:16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Purpose
    요즘 크라운제과의 주가 폭락으로 맘고생이 심했습니다만, 생각해보면 할수록 더 사야한다는 결정만 나옵니다. 믿고 갑니다~ GO ^^
    2006.07/12 07:43 답글쓰기
  • Purpose
    2006.07/12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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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모루
    크라운제과 점점더 매력적인것 같습니다.
    2006.08/23 15:22 답글쓰기
  • 마모루
    2006.08/23 15:22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셋모여
    천하무적 대차대조표를 가진 롯데제과에..http://
    2007.01/14 11:50 답글쓰기
  • 셋모여
    2007.01/1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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