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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도 이익도 주가도 '오뚝'



◇ 케찹의 유래

옛날 분들은 농담 삼아 케찹을 서양 고추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생긴 게 뻘건데다가 다른 음식의 맛을 돋구어준다는 공통점에서 그와 같은 비유를 드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케찹은 서구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소스이자 실제로 동양인들도 일반 식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인기 있는 소스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케찹의 원조는 사실 동양이다. 네덜란드와 영국 선원들이 1600년대에 중국의 짠 생선 소스를 가져와 각 지방에 맞게 변형한 것이 케찹의 기원이다. 이름 또한 ketsiap이라고 하는 중국 광둥 지방 사투리에서 유래했다. 아마도 굴소스나 간장이 그 원조가 아닐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토마토 케찹은 1830년대에 미국에서 만들어져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1872년 HJ 하인즈가 필라델피아에서 발표한 케찹이 이 시장을 평정했으며 지금도 전세계 케찹 시장의 지존은 하인즈다. 그러다 보니 역사적 사실은 온데 간데 없고 미국의 토마토 케찹이 원조이자 표준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하인즈의 전세계 시장점유율은 70%에 이른다.

하지만 소스 원조국으로서 동양의 자존심을 지키는 나라가 있으니 그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며 이변의 주인공은 마침 법인 이름으로는 드물게 순수 한글 이름을 가진 오뚜기다. 오뚜기의 국내 케찹 시장 점유율은 78%로 부동의 1위다.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하인즈의 시장점유율은 겨우 2.3%에 불과하다. 케찹 이외에도 오뚜기는 마요네스, 참기름, 식초, 카레, 3분 요리 분야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 오뚜기의 저력

오뚜기404,000원, ▲2,500원, 0.62%가 국내 소스 시장에서 오뚝 서게 된 역사는 생존과 투쟁으로 점철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사람들도 서구 음식을 꽤나 즐기지만 오뚜기가 출범한 70년대만 해도 일반 사람들에게 서구 음식은 어쩌다 가끔 먹는 별식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시장도 작았고 제품 설명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먼저 시작했고 어려운 시기를 버텼기 때문에 성장하는 시장에 말뚝을 박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80년대 들어 서구식 식습관이 조금씩 퍼져가자 시장의 존재를 확인한 해외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 상륙했다. 첫 상대는 마요네스로 유명한 크노르였고 두 번째 상대는 케찹의 1인자 하인즈였다. 아마도 투자자들이 이 전쟁이 벌어질 당시에 오뚜기에 대해 투자 의견을 냈다면 분명히 Sell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뚜기는 이름값을 했다. 비록 크노르를 몰아내는데 10년, 하인즈를 물리치는데 5년 이상이 걸렸지만 결국엔 오뚜기의 승리로 끝났다. 그 열매는 현재의 소스 시장 점유율이다.





먹는 산업에서 신규 진입을 막기 위해 해자를 치는 가장 손쉬우면서도 최선의 방어책은 막대한 물량의 광고다. 특히 시장이 아주 크지 않은 산업의 초기 혹은 성장기에 이 전략은 아주 효과적이다. 오뚜기역시 이 공식을 잘 따랐다. 일요일은 오뚜기 카레, 오무라이스나 햄버거에~, 고소하고 산뜻한 오뚜기 마요네스 등의 광고 문구를 히트 시키면서 소비자의 머리 속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슈퍼마켓에 가서 오뚜기 로고를 뚫어지게 한번 쳐다보라. 70년대 분위기가 물씬 나는 무척이나 촌스러운 디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뚜기 제품을 주저 없이 집고 그러한 로고를 당연시 여긴다는 것은 그만큼 오뚜기가 부단한 노력으로 생존을 이어가며 전통의 브랜드를 쌓아 올렸다는 반증이다.


◇ 매출, 매출, 매출

1990년에 오뚜기의 매출액은 1846억원에 불과했지만 작년에는 1조에 가까운 9809억원까지 치솟았다. 사실 소스 시장이 동 기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은 아니다. 이미 시장점유율이 높았기 때문에 남의 시장점유율을 더 가지고 와서 이룩한 성장도 아니다. 매출액 증가의 배경에는 다분히 제품 라인의 확장이 자리하고 있다.

<1990년부터 2005년까지의 매출액 그래프>


현재 오뚜기의 대표 분야라 할 수 있는 조미식품과 소스를 합친 매출 비중은 30.7%다. 생각보단 높지 않은 수치다. 그렇다면 나머지 매출은 어디서 나올까? 일단 라면을 비롯한 면류가 26.99%를 차지한다. 참치도 6.89% 정도 된다. 이 둘만 합쳐도 핵심 분야 매출 비중에 육박한다. 이외에 참기름, 식용유 등의 유지류도 15.59%나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조미식품과 소스 분야를 평정한 뒤 90년대부터 라면, 참치, 유지 시장에 들어가 매출을 키우는데 매진했단 얘기다. 하지만 남이 말뚝 박아둔 영역에 들어가는 게 그리 녹녹한가. 이미 라면 시장엔 농심이, 참치 시장엔 동원이, 유지 시장엔 해표라는 거목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최근에는 밥 시장에까지 진출했는데 여기에는 또 CJ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가 버티고 있다.

당연히 후발주자로서 밀어내기 매출, 마케팅비 지출, 저가 전략 등이 구사되었고 그 결과 매출은 크지만 남는 게 없고 재무부담이 날로 가중되는 역효과가 뒤따랐다. 매출보단 이익추이에 보다 민감하기 마련인 주가가 2002년까지 계속 박스권 속에 갇혀 제자리인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이익 상승도 제한적인데 그나마도 배당 등을 통해 나눠주려는 의사도 크게 보이지 않았던 것도 한몫 거들었다.


◇ 개선의 여지가 주가 상승으로

과외를 할 때 현재 2~3등 하고 있는데 꼭 1등으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 가장 부담스럽다. 상위권을 최상위권으로 만드는 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투입량이 소요되는 탓이다. 하지만 가장 쉬운 요청은 40등 하는 학생을 20등 정도로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최소한 시험 치는 요령만 가르쳐줘도 금방 개선의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학생에게 있어 시험치는 기술 전수만큼이나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하나는 시험 치는 당일에 결석하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 먹고 성적을 개선해보겠다는 본인의 각오다. 두 가지가 없으면 개선이라는 결과가 있을 수 없는 까닭이다.

비유를 들자면 먹는 장사에서 오뚜기는 다른 영역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농심,롯데칠성, 롯데제과 등에 비해 처지는 학생으로 치부되었다. 매출은 큰데 내실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눈에 띄게 등수를 올릴 수 있는 잠재력은 있었다. 일단 조미식품, 소스류라는 과목에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문제는 다른 과목이 너무 부실해 전체 성적이 부진하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그 동안 숱한 어려움과 난관들이 있었지만 건강을 유지해서 남들이 아파서 시험 치러 못 올 때도 꾸준히 시험을 치렀다. 대표적인 분야가 라면과 참치다. 비록 1등과 심하게 격차가 나긴 했지만 빙그레, 사조 등 경쟁사들이 나가 떨어질 때도 꿋꿋이 버틴 덕에 시장에 2등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긴 했다.

문제는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매출은 이미 컸다. 조금만 영업이익률을 개선해도 절대 이익 규모는 크게 늘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2001년까지도 영업이익률이 2%대에 불과했고 경상이익률은 이보다 더 낮았다.

특히 지배구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예를 들면 라면의 경우 오뚜기라면이 제조를 맡고 오뚜기가 판매를 맡는 형태인데 오뚜기라면이 오뚜기 자회사라고는 하지만 지분율이 19%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주주의 소유였다. 이런 상태로는 오뚜기의 이익률 개선을 기대하기가 만무한 노릇이었다. (2005년 기준 오뚜기라면의 이익잉여금은 417억원이나 된다) 과연 이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계속되는 시장의 의문이었다. 사람만큼이나 기업도 성향이 그리 바뀌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2년부터 이익률이 조금씩 개선되는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대형유통망의 등장으로 인한 판관비 절감, 부진했던 라면과 참치 시장에서의 개선 기미, 경기 상승, 서구식 식탁의 확산 등이 꼽힌다. 특히 다른 음식료업체들과 마찬가지로 환율하락에 따른 원자재 부담 해소가 큰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변화의 내재적 요인은 상속 이후 2세 경영이라는 터닝포인트로 본다. 상속이 마무리 되면서 자회사보다는 오뚜기 본체에 힘의 중심을 옮기는 모습을 서서히 보여주기 시작했다. 지배구조 변화와 외부 주주를 보는 시각 변경에 따라 인센티브 요인이 바뀐 것이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큰 규모의 매출은 엄청난 레버리지 효과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2001년 115억원에 불과했던 당기순이익은 2002년 174억원으로 업그레이드 되었고 이후 222억, 283억까지 늘더니 급기야 작년에는 354억원을 기록했다. 5년간 매출액은 32% 증가했을 뿐이다.

역시 주가는 이익의 변화에 민감했다. 2001년 7월 11500원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현재 11~13만원을 넘나든다. 가치투자에도 대박이 있음을 알려줄 정도로 단연 돋보이는 상승률이다. 음식료업 내의 다른 영역의 강자에 비해 오뚜기의 내재적 역량이 더 뛰어나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개선의 여지가 더 많았기에 주가는 그만큼 더 오른 것이다.


◇ 미래를 대비하라

오뚜기의 이익 개선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2006년에도 이익 성장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 게다가 소스 시장에서의 독점력은 여전히 유효하며 라면과 참치 분야에서도 2등으로서의 입지로부터 더 나빠질 여지는 없어 보인다. 환율하락도 장기적 추세로 인정되고 있다. 최근에는 성과주의 시스템을 영업 쪽에 도입하려는 시도까지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주가가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다른 음식료 기업들에 비해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상대적인 매력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가치를 중시하는 가치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요소도 있다. 인덕원을 지나 안양으로 접어들면 카레 냄새가 난다는 얘기가 있는데 오뚜기 공장이 바로 이곳에 위치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충북으로 공장을 서서히 이전하고 있어 평촌 공장의 개발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주변이 온통 아파트라 이 땅의 시가(1500억원 추정)가 장부가(550억원)보다 높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기업의 시간은 투자자의 시간보다 길다는 사실이다. 투자자는 이런 정황을 보고 1~2년 뒤의 현실이라 인지하지만 기업은 이 정도 규모의 개발 혹은 매각 계획은 최소 3년 이상이다. 따라서 이를 보너스 정도로 여기지 않고 매수 이유의 전부로 받아들이면 기대치와 다른 결과를 얻고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오뚜기의 앞날에 장미빛 미래만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음식료 기업 전체에 해당하는 숙제를 오뚜기 또한 똑같이 풀어야만 한다. 바로 대형화된 유통업체들의 가격 압박이다. 최근 할인점에 가보면 S&B 등 일본 카레가 예전보다 눈에 많이 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다분히 선두업체인 오뚜기를 길들이기 위한 유통업체들의 전술로 해석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CJ가 하인즈의 독점판매권을 얻어 케찹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하인즈는 한번 오뚜기에 패배하고 철수해서 별거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80년대에는 판매처들이 모두 소규모라 오랜 기간 네트워크를 닦아둔 토종 기업에 절대 유리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유통망이 통합된 때에 승부는 예측할 수 없다. 일단 오뚜기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 시장점유율이 대폭 떨어지는 사태까지 벌어지진 않겠지만 대형 유통업체가 후발 주자에 힘을 싣는다면 최소한 마진이 떨어질 가능성은 존재한다.

수많은 도전들을 이겨내며 토종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오뚜기. 다음 단계에서 벌어질 전쟁에 어떤 각오로 임하고 있는지 그리고 오뚜기가 이를 계기로 한번 더 오뚝 일어날지 사뭇 궁금해진다.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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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 occlusion
    오뚜기 좋은 기업입니다. 최준철님의 분석까지 보니 더 좋군요...^^
    2006.04/03 11:18 답글쓰기
  • occlusion
    2006.04/03 11:18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현명한가치투자자
    최준철님 글을 보고 있자면 당장이라도 약국 접고 그 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니... 쩝...
    대단하십니다.
    2006.04/03 23:57 답글쓰기
  • 현명한가치투자자
    2006.04/03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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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다섯
    먹거리에서 2등에 만족하기
    대형유통업체의 가격인하압박에 시달리고
    그럴바에야 빙그레 같이 잘하는 사업영역에 집중한다면 주주에게 더 큰 이익이 되지 않을까요
    빙그레의 라면사업포기후 성장을 보세요

    집중
    다각화는 다악화
    2006.04/04 00:20 답글쓰기
  • 돌다섯
    2006.04/0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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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6.05/01 04:47 답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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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5/01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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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우B
    항상 이해하기 쉽게 요점은 쏙쏙 들어오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http://
    2007.01/19 09:27 답글쓰기
  • 2우B
    2007.01/1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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