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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브랜드 비결은 뭘까?
옷이 날개라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나서 부끄러운 곳을 감추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둘렀다.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옷이다. 이제 옷은 더 이상 부끄러운 곳을 가리는 도구에 불과하지 않다. 때로는 신분을 드러내기도 하며 때로는 목적에 맞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옷의 가장 큰 역할은 아름다움을 배가 시켜주는 것이다. 특히 여자들에게 옷은 가장 큰 소비의 대상이다. 목적은 물론 아름다움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닳아서 떨어지지도 않은 멀쩡한 옷을 놔두고 새 옷을 사겠는가.
우리나라 여자들도 옷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라 국내 여성 의류 시장 규모가 3조 정도로 추산되고 여성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머니를 열고자 하는 의류업체들도 부지기수로 많다. 그 중 규모나 역사 면에서 주목할만한 기업으로 나산과 한섬을 꼽을 수 있다. 두 회사는 80년대에 출범한 의류업계의 산 증인이며 장수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전략의 상이성, 재무상태와 지배구조의 차이 등 다른 점들이 더 많다.
미스터리 브랜드
“조이너~스” 글의 한계상 음 표현에는 부족하지만 최소 30대라면 이 로고송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조이너스는 최고의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해 국내 대중 여성 브랜드 시장을 열어 제친 주역이자 당대 최고의 브랜드였다. 이외에도 꼼빠니아, 예츠 등의 브랜드를 가진 나산은 신원과 더불어 우리나라 여성 의류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80년대와 90년대를 풍미했다.
의류 사업은 뜨기가 어려워 그렇지 한번 떠서 관리만 잘 해주면 화수분으로 돌변한다. 마진이 높지만 이런 높은 마진을 수용해주는 소비자들의 충성도가 생기면 돈 버는 건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큰 시설투자가 필요 없고 전혀 다른 신제품을 출시할 필요가 없어 잉여현금흐름이 크게 발생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사업적 장점이 나산에게는 독으로 작용했다. 92년 논노가 부도가 나면서 의류업계에서는 사업다각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위기 의식이 팽배했다. 돈이 없는 곳이야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가 없었지만 나산에게는 자산도 있었고 잉여현금흐름도 있었다. 그래서 진출한 분야가 유통과 건설이었다. 의류회사는 백화점과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다. 갑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어떤 을이나 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의 보유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결국 나산도 의류 외의 다른 사업에 대한 능력이 없음이 밝혀졌지만 그 시기가 좋지 않았다. IMF라는 복병을 만난 것이다. 결국 98년 7월 대단한 위세를 자랑하던 나산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런 스토리를 보면 “현재도 법정관리 상태에 있는 나산에 무슨 선한 것이 있겠느냐” 하는 생각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돈을 계속 벌고 있다. 9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흑자 행진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기가 좋았던 2001, 2002년에는 4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렸고 경기가 최악이었던 2004년에도 10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한 마디로 조이너스는 과거형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란 얘기다.
의류업계에서는 조이너스를 두고 ‘미스터리 브랜드’라고 부른다. 잘 되고 있는 결과는 눈에 보이지만 업계관계자라 하더라도 그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단 것이다. 의류 브랜드라는 게 엄연히 수명이 존재하고 특히나 회사가 망해 관리가 되지 않을 때는 단명 하는 게 상식인데 조이너스는 모든 업계의 법칙을 거짓말로 만들고 있다. 지방에서 여전히 선호해서 그렇다, 가격 대비 이 정도 성능의 브랜드가 없다 등등 많은 설들이 있지만 모두 답으로선 부족하다. 누가 답을 알고 있으면 가르쳐줬으면 한다.
시가총액 5000억
나산이 IMF 이전의 80년대와 90년대를 풍미했다면 IMF 이후 여성 의류의 주도권을 가져간 쪽은 단연 한섬14,710원, ▲50원, 0.34%이다. 시스템, 타임, 마인, SJSJ 등의 브랜드를 거느리고 연간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여성 의류업계의 지존이다. 지난 5년간 200~400억원 사이의 순이익으로 수익성까지 과시함으로써 주식시장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현재 시가총액은 5000억원을 넘어서 의류업계에서 보기 드문 사이즈를 자랑한다.
한섬의 성공은 GM이 포드를 누른 사례와 비슷하다. 포드의 T모델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해 대량생산 함으로써 값이 저렴하고 품질인 균질했다. 그러나 선택의 폭이 없어 다양화되는 고객의 니즈에 부합할 수 없었다. 이때 슬로언이 이끄는 GM이 등장해 다양한 색상과 멋진 브랜드를 제시함으로써 순위를 뒤집었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 그리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대량 광고를 통한 브랜드 확립과 영업조직을 통한 밀어내기가 공식처럼 자리잡고 있었던 의류업계에 한섬은 트랜드를 반영한 디자인과 국적을 알 수 없는 타겟 광고로 무장하고 대중 제품과 해외 명품 사이에 위치한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1위로 발돋움했다.
시장 진입의 성공에서 그치지 않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장기간에 걸쳐 계속 1위를 유지하는 데에는 한섬의 뛰어난 브랜드 관리 능력이 한 몫 했다. 브랜드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일은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지나쳐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되며 단기의 이익을 희생하기도 해야 한다. 즉 생산에서부터 이월물량 처리, 최종재고 물량 소진까지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구멍이 생기면 브랜드가 싸구려로 추락해버리는 탓이다. 이 면에서 한섬은 물샐 틈 없는 관리 능력을 보여준다. 게다가 신규 브랜드 런칭에 매우 신중하다. 보통 브랜드 하나가 뜨면 자신감이 생겨 이것저것 런칭 했다가 역량이 분산되어 이도 저도 안 되어 대충 브랜드를 정리하는 악순환을 겪는데 반해 한섬은 이런 유혹들을 잘 이겨냈다. 그 결과 보유 브랜드 모두 해당 분야에서 상위권에 위치한다.
또한 오너적 관점에서의 재무정책은 높이 평가된다. 한섬은 보유 현금 자산만 800억원에 이른다. 이자발생부채도 거의 없는 데다가 한 우물만 파서 쌓은 이익잉여금이 2000억이 넘어 망할래야 망할 수가 없다. 과거 타임과 마인을 독립 법인으로 코스닥에 상장한 적이 있었는데 주된 이유는 절세였다. 버는 것에 비해 배당이 좀 짠 이유도 세금 문제에서 기인한다. 앞서 오너적 관점이란 단서를 붙인 이유는 자본 효율성과 주주정책에 있어서는 아쉬운 대목들이 많지만 안정성과 불필요한 지출의 방지 면에서는 주지한 바와 같이 탁월한 능력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구축된 튼튼한 재무구조가 있었기에 최근의 급격한 경기 변동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의류업체로는 보기 힘든 시가총액 5000억원을 인정 받고 있는 것이다.
나산, 한섬 보유 브랜드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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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
매출비중 |
컨셉 |
한섬 |
SYSTEM |
25% |
20대 대학생, 영마인드의 자유직 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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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SJ |
14% |
20대 초 대학생,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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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E |
19% |
20대 대학생 및 영커리어층 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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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
29% |
20~30대 전문직 고소득 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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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HOMME |
7% |
25~35세 전문직, 예술, 문화, 패션업계 종사 남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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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산 |
조이너스 |
26% |
지적이고 세련된 여성미의 정장브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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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빠니아 |
18% |
전문직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심플하고 모던한 캐릭터 브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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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폴 |
21% |
아메리칸 트래디셔널 스타일의 혼성캐쥬얼 브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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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츠 |
8% |
신세대 커리어우먼을 대상으로한 캐릭터 브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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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젠 |
20% |
합리적 남성정장 브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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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간 |
6% |
여성영캐릭터 캐주얼 브랜드(프랑스 수입) |
다른 상황, 다른 전략
패션이 일종의 문화 상품이라 연예인과 일맥상통한 점이 있는데 이런 시각으로 의류업체들을 평가한다면 나산은 태진아, 한섬은 김건모에 빗댈 수 있겠다. 태진아는 가수 생활에 부침이 있었지만 누구나 알고 있으며 폭 넓게 사랑을 받는다. 오락 프로에 나와 망가지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그런데 수입은 매우 좋다. 지방의 밤무대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김건모는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로 일컬어지며 그리 유행을 타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 팬들은 대부분 20, 30대들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며 아무 프로그램에나 나오지 않고 콘서트와 음반 수입 등 아주 가수다운 수입 구조를 가지고 있다.
태진아와 김건모가 일부러 다른 길을 걷는 게 아니라 처한 상황이 틀리고 가지고 있는 역량이 달라 그런 것처럼 나산과 한섬도 마찬가지다. 나산은 처음부터 중가로 불특정 다수를 타겟으로 했고 그런 까닭에 대리점들을 통한 로드숍 매출 비중이 컸다. 또한 법정관리 상태인 터라 재무구조가 취약해 브랜드 관리에 많은 돈을 들일 수가 없었고 탄력적인 가격 할인에 의존했다. 결국 현장에서 로드숍 매니저들의 능력에 의존을 해서 통제가 쉽지 않은 반면 외형은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한섬은 정상제품은 백화점 입점 숍에서 주로 팔고 자체 운영하는 아웃렛을 통해 이월상품을 파는 전략을 취한다. 제품 자체가 고가라 지나가다 들르는 고객들을 잡기보단 이미 고가 제품을 사기로 마음 먹고 백화점을 찾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다른 고가 브랜드와 경쟁하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대신 재고를 모두 백화점에서 소진할 수 없으므로 아웃렛에서 소화시키는 대신에 브랜드 관리를 위해 직접 운영하는 형태를 취한다. 백화점과의 협상 및 아웃렛 직접 운영 방식 등은 탄탄한 재무구조와 관리 역량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장수 브랜드의 힘은 놀랍기만 하다. 조이너스, 꼼빠니아 등은 나산에 100억 대의 알토란 같은 현금을 매년 만들어주며 타임, 마인, 시스템 등은 한섬에 500억 대의 생짜 현금을 안겨준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의류 브랜드와는 달리 부침도 크게 없으니 참 탐이 나는 현금흐름이 아닐 수 없다.
|
나산 |
한섬 |
매출액 |
1,626 |
2,840 |
영업이익 |
206 |
475 |
경상이익 |
120 |
579 |
ROE |
11.0 |
13.0 |
시가총액 |
656 |
5,440 |
PER |
5.5 |
12.9 |
PBR |
0.6 |
1.6 |
그런데 나산과 한섬의 수치들을 비교해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한섬이 매출이나 이익 규모는 더 크긴 하지만 그 차이에 비해 나산이 한섬보다 주가 면에서 턱 없이 싼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섬의 PER은 12배가 넘고 장부가의 1.6배에 거래되는 데 비해 나산은 시가총액도 656억원에 불과하고 PER이나 PBR 수치도 현격한 저평가 수치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나산은 법정관리 중으로 채권단이 정리채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정해진 스케쥴에 따라 주식으로 바꾸게 된다. 따라서 현재 발행주식수에 주가를 곱하는 계산법은 나산의 정확한 시가총액을 나타내어 주지 못한다. 정리채권의 향배에 따라 나산의 가치와 오너쉽 모두가 정해지는데 불확실성이 분명 존재하며 정리채권이 주식으로 전환된다고 가정하면 한섬보다 밸류에이션이 높아지는 수준이 되어 반드시 싸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법정관리를 벗고 주인이 정해져서 브랜드 투자를 재개하게 될 경우 기업가치 상승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큰 돈을 벌려면 꼭 여성을 상대해야 한다는 유태인 격언을 믿는 투자자라면 여심을 이끄는 장수 브랜드를 보유한 나산과 한섬에 관심을 가질 법 하다. 만약 안정적인 1등 브랜드형 기업을 선호한다면 한섬이, 다소 불확실성이 존재하지만 개선을 통한 환골탈태형 기업을 원한다면 나산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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