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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배드 투 그레이트
◇ 2002년 상상예찬
2002년에 KT&G(당시 담배인삼공사) 분석 보고서를 쓴 이후 3년 만에 KT&G를 다시 꺼냈다. 당시 보고서의 제목이 ‘담배인삼공사 일병 구하기’였으며 서두에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로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KT&G는 민영화와 함께 광고 슬로건으로 상상예찬을 내걸었는데 실제로 2002년도에 상상했던 모든 것들이 다 이뤄졌다. 아니 상상 그 이상이다.
▶2002년 '담배인삼공사 일병 구하기' 레포트 전문 다시 보기
매출액, 순이익 모두 매년 성장을 거듭했는데 적극적 자사주 매입 소각을 통해 주식수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주가도 기업 가치 증가를 반영해 1만원대에서 4만원대로 뛰었다. 그럼에도 배당수익률은 여전히 상위권이다. 정말 교과서와 같은 변화다. 피터 린치는 민영화 되는 주식은 앞뒤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사라 했지만 KT의 성과와 비교해보면 KT&G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KT&G119,200원, ▲3,300원, 2.85%가 굿투그레이트가 아니라 배드투그레이트가 된 데에는 소비자 기호의 우호적인 변화가 큰 역할을 했다. 웰빙 문화에 기인한 저타르 담배 선호도 증대에 따른 자연스런 고가 제품 비중 확대가 매출과 이익을 견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요소보다는 환경의 변화폭이 더 컸고 부정적 장애물이 더 많았다고 판단되므로 내재적인 역량에서 그 열쇠를 찾아야 한다. 즉 KT&G가 담배 시장과 주식 시장 양쪽에서 베스트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는 고유한 가치를 살리면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려 한 정신에 있다.
◇ 삼위일체 경쟁력
언젠가부터 음식료 업체들의 이익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막강 파워를 가진 할인점 때문이다. 매대 당 수수료 맞춰주랴, 행사 참여하랴 요구는 많은데 경쟁은 더 과열되고 있다. 우유 회사가 주스를 만들고 주스 회사는 건강보조식품을 만드는 등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평화롭던 예전의 모습은 간 곳 없고 경쟁 붙이기 바쁜 할인점과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만 신날 뿐이다.
담배를 기호식품으로 음식료에 포함시킨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비껴있는 업체를 하나 꼽을 수 있다. 바로 KT&G다. 그 이유는 KT&G가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세 가지 경쟁력에서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담배가 소비자의 뚜렷한 선호도를 반영하는 제품이라는 점이다. 에쎄를 피우는 사람은 매대 옆에서 디스를 500원 낮은 값에 판다 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담뱃값은 고시 가격을 따르기 때문에 가격 할인이 사실상 힘들다. 따라서 유통업체가 매대 위치나 가격을 가지고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가게에 가서 구체적인 이름을 말하며 “**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제품이 유명 담배 브랜드 외에 무엇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KT&G의 주요 제품들
두 번째는 독점적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던힐을 비롯한 외산 담배가 많이 침투했다고는 하나 KT&G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여전히 70%를 넘어간다. 국산 담배만 놓고 보면 사실상 100%다. 소비자나 유통업체 입장에서 제품 중에서의 선택은 있을지 몰라도 회사 중에서의 선택은 거의 없는 셈이다.
세 번째는 시골마을 구석구석까지 뻗어있는 촘촘한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 자체의 역사가 워낙 오래 된데다가 광범위한 고객 기반을 가지고 있고 단가에 비해 부피가 크지 않다 보니 어디서든 KT&G 제품을 구할 수 있다. 또한 편의점이나 구멍가게에서 가장 좋은 마진과 회전율을 보이는 품목이 담배다. 가끔 세탁소나 화장품 가게에서도 ‘담배’라는 간판을 걸고 부업으로 담배를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담배는 소매점 입장에서 쏠쏠한 아이템이다. 소비자가 꾸준히 찾는 데다가 시장점유율 70%로 사실상 독점이다 보니 굳이 다른 제품을 갖다 놓을 이유가 없다.
◇ 민영화 이후 터보 엔진 달았다
하지만 KT&G의 이런 경쟁력이 민영화 이전에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알아서 장사가 되니 굳이 열심히 할 이유도 없었고 간섭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외산 담배가 치고 들어오고 민영화라는 광야에 내던져지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2002년은 KT&G가 급격한 변화 속에서 긴장감을 가지고 방향을 잡던 시기였는데 결국 환경에 적응하고 스스로 변화하는데 성공하면서 평범한 배당주에서 성공적인 민영화를 이뤄낸 멋진 회사로 거듭났다.
이때 기존 경쟁력에 터보 엔진을 장착해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했는데 하나는 제품개발력이고 다른 하나는 마케팅력이었다.
민영화 이전에는 KT&G가 가진 제품 리스트를 누구라도 간단히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적었다. 하지만 민영화 이후 레종, 더원, 시마, 인디고, 클라우드나인 등 현란하게 신제품을 출시했다. 초대형 히트상품인 에쎄는 라이트, 멘솔, 필드, 원 등 수평적 확장을 꾀했다. 맛과 성분에만 변화를 가한 것이 아니라 제스트처럼 포장을 달리 한다든지 에쎄 스페셜 같은 기획 상품도 출시했다. 이렇게 탄탄해진 제품개발력은 고급화를 통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국산과 외산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으며 세분화된 충성스러운 고객이란 선물을 KT&G에게 안겨줬다.
역시 눈에 띄는 가장 큰 변화는 마케팅력의 강화다. 돈이 많은 기업 입장에서 가장 쉬운 마케팅은 TV를 통한 광고 물량 공세다. 하지만 담배는 법적으로 TV를 통한 제품 광고를 할 수 없는 탓에 민영화 이전 KT&G는 인쇄매체 광고나 간간이 하는 정도에 그쳤다. 효과가 있을 리 없었고 시장의 틈을 노리는 외국 담배 업체들에 비해 세련된 맛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민영화 이후에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담은 기업PR을 실시함과 동시에 각종 스포츠, 문화 이벤트 심지어는 주요 흡연 구역 쓰레기통에까지 KT&G 로고를 달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는 담배회사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다소라도 불식시키면서 간접적으로 제품 라인을 지원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 주주는 나의 운명
KT&G는 풍부한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 소각을 꾸준히 실천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과거 보여줄 것이 배당 밖에 없었고 민영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자사주 매입 소각이라는 방법이 도입된 거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KT&G 경영진의 사명으로 계승되었고 이제부터는 주주 구성상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핵심이다. 또한 더 길게 보면 의사결정시 주주의 눈치를 본다는 점이 당장 이익을 나눠주는 주주정책보다 더 중요하다. 장기투자에 가장 큰 걸림돌은 경영진의 불확실한 의사 결정이기 때문이다.
KT&G의 주주 구성 분포
단순 주주로서 기업에 올라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능력 있고 도덕적인 오너가 자신의 부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의 지분을 취득해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주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전문경영인이 획득해서 나눠주는 이익을 받는 것이다. 오너 책임 체제와 주주 중심 체제는 각기 장단점이 있는데 현재의 담배 산업은 오너 체제 보다는 주주 중시 체제가 더 적절하다. 담배 산업은 이미 성숙기로 접어든 탓에 위험을 적극적으로 감수하고 빠른 판단으로 시장을 넓히기 보다는 현재의 시장을 수성하면서 최대한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KT&G의 부동산 개발 사업이다. KT&G는 170개의 지점들을 가지고 있는데 시내에 인접한 지점들을 이동시켜 그 부지를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미 폐쇄된 8개 공장은 슬슬 작업을 시작한 상태다. “담배 회사가 뭐 그런 것까지..”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담배 시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부지런하고 효율적인 모습은 절대 선(善)일 수 밖에 없다. KT&G의 답안지라 할 수 있는 알트리아(구 필립모리스)가 식품 회사 인수 등 현금흐름의 적절한 배분과 효율성 증대를 통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꾸준한 주가 상승으로 주주들에게 큰 부를 안겨준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 두 가지 키포인트
지금까지 주로 KT&G의 밝은 면만 집중 조명했는데 이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KT&G의 변화 요인을 살펴본 복기 수준에 불과하다. 여전히 KT&G의 앞날에는 담배 회사라는 이름에 걸 맞는 장애물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런 리스크를 감안하면 현재 7조5천억원의 시가총액은 상기의 긍정적 측면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당장 배당수익률만 해도 금년 주당 1900원을 가정하더라도 4%에 불과하다. 적극적 주주정책으로 인해 축적된 자산이 많지 않아 PBR이 높은 점도 지적된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가총액을 넘어서려면 어떤 문제가 선결되어야 할까? 세금 인상 문제와 금연 인구 증가 문제의 소멸?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이고 추세적인 문제로 봐야지 해결 가능한 문제로 인식하면 안 된다. 차라리 KT&G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에 잘 적응하고 대응해 이익을 높일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현실적이다. 그것은 결국 순매출단가와 수출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 가능하다.
순매출단가는 담뱃값에서 세금과 유통마진을 제하고 순수하게 KT&G에 남는 갑당 금액을 일컫는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수량을 늘일 수 없는 내수 시장에서 이익을 늘리는 유일한 방법이 마진을 올리는 길 뿐이기 때문이다. 아래 표와 같이 소비자가격과 순매출단가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가일수록 순매출단가가 높은 경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KT&G가 신제품을 고가제품에 집중시키는 것도 569원 정도 하는 평균 순매출단가를 올리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순매출단가가 10원 오르면 GP마진은 약 350억원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단위: 원)
2002년 KT&G 보고서를 보고 회사의 담당자가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한 바 있다. “보고서의 내용이 저희 회사를 잘 파악해주셨는데 한 가지 빠진 게 있네요. 수출을 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네요.” 이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유가 2002년 수출 물량이 1억 개비 남짓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물량을 늘려 가동률을 유지해 고정비를 떨어뜨리는 효과 이외에는 없다고 판단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수출 물량이 2003년에 13억 개비로 폭증하더니 2004년 32억 개비를 넘어 올해는 약 60억 개비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중앙아시아, 중동, 러시아,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영국계 담배회사들의 아성이 만만치 않아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지만 내수 시장을 꽉 잡고 있는 상황에서 보너스로 붙는 수출 물량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결국 KT&G에게 있어 고가 담배를 얼마만큼 잘 만들어 국내 소비자에게 어필하느냐 그리고 후발 주자이지만 어떤 독특함으로 해외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느냐가 세금 인상과 시장 축소라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핵심이다. 투자자는 이런 결과를 순매출단가와 수출물량이라는 수치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수출 또한 순매출단가를 따로 떼어 계산한다면 정확도는 더해진다.
KT&G보다 배당수익률이 더 나오는 종목은 꽤나 많다. 하지만 KT&G가 고배당종목 리스트의 상위 부분을 늘 차지하는 이유는 단지 배당수익률 수치에만 있지 않다. 예측 불허한 당장의 6%보다 예측 가능한 꾸준하며 성장 가능한 4%를 원하는 투자자에게 KT&G는 여전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풍긴다. 3년 뒤에 보고서를 쓸 때도 현실이 된 상상을 다시 얘기하고 싶다.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2002년에 KT&G(당시 담배인삼공사) 분석 보고서를 쓴 이후 3년 만에 KT&G를 다시 꺼냈다. 당시 보고서의 제목이 ‘담배인삼공사 일병 구하기’였으며 서두에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로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KT&G는 민영화와 함께 광고 슬로건으로 상상예찬을 내걸었는데 실제로 2002년도에 상상했던 모든 것들이 다 이뤄졌다. 아니 상상 그 이상이다.
▶2002년 '담배인삼공사 일병 구하기' 레포트 전문 다시 보기
매출액, 순이익 모두 매년 성장을 거듭했는데 적극적 자사주 매입 소각을 통해 주식수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주가도 기업 가치 증가를 반영해 1만원대에서 4만원대로 뛰었다. 그럼에도 배당수익률은 여전히 상위권이다. 정말 교과서와 같은 변화다. 피터 린치는 민영화 되는 주식은 앞뒤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사라 했지만 KT의 성과와 비교해보면 KT&G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KT&G119,200원, ▲3,300원, 2.85%가 굿투그레이트가 아니라 배드투그레이트가 된 데에는 소비자 기호의 우호적인 변화가 큰 역할을 했다. 웰빙 문화에 기인한 저타르 담배 선호도 증대에 따른 자연스런 고가 제품 비중 확대가 매출과 이익을 견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요소보다는 환경의 변화폭이 더 컸고 부정적 장애물이 더 많았다고 판단되므로 내재적인 역량에서 그 열쇠를 찾아야 한다. 즉 KT&G가 담배 시장과 주식 시장 양쪽에서 베스트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는 고유한 가치를 살리면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려 한 정신에 있다.
◇ 삼위일체 경쟁력
언젠가부터 음식료 업체들의 이익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막강 파워를 가진 할인점 때문이다. 매대 당 수수료 맞춰주랴, 행사 참여하랴 요구는 많은데 경쟁은 더 과열되고 있다. 우유 회사가 주스를 만들고 주스 회사는 건강보조식품을 만드는 등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평화롭던 예전의 모습은 간 곳 없고 경쟁 붙이기 바쁜 할인점과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만 신날 뿐이다.
담배를 기호식품으로 음식료에 포함시킨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비껴있는 업체를 하나 꼽을 수 있다. 바로 KT&G다. 그 이유는 KT&G가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세 가지 경쟁력에서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담배가 소비자의 뚜렷한 선호도를 반영하는 제품이라는 점이다. 에쎄를 피우는 사람은 매대 옆에서 디스를 500원 낮은 값에 판다 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담뱃값은 고시 가격을 따르기 때문에 가격 할인이 사실상 힘들다. 따라서 유통업체가 매대 위치나 가격을 가지고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가게에 가서 구체적인 이름을 말하며 “**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제품이 유명 담배 브랜드 외에 무엇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KT&G의 주요 제품들
두 번째는 독점적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던힐을 비롯한 외산 담배가 많이 침투했다고는 하나 KT&G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여전히 70%를 넘어간다. 국산 담배만 놓고 보면 사실상 100%다. 소비자나 유통업체 입장에서 제품 중에서의 선택은 있을지 몰라도 회사 중에서의 선택은 거의 없는 셈이다.
세 번째는 시골마을 구석구석까지 뻗어있는 촘촘한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 자체의 역사가 워낙 오래 된데다가 광범위한 고객 기반을 가지고 있고 단가에 비해 부피가 크지 않다 보니 어디서든 KT&G 제품을 구할 수 있다. 또한 편의점이나 구멍가게에서 가장 좋은 마진과 회전율을 보이는 품목이 담배다. 가끔 세탁소나 화장품 가게에서도 ‘담배’라는 간판을 걸고 부업으로 담배를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담배는 소매점 입장에서 쏠쏠한 아이템이다. 소비자가 꾸준히 찾는 데다가 시장점유율 70%로 사실상 독점이다 보니 굳이 다른 제품을 갖다 놓을 이유가 없다.
◇ 민영화 이후 터보 엔진 달았다
하지만 KT&G의 이런 경쟁력이 민영화 이전에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알아서 장사가 되니 굳이 열심히 할 이유도 없었고 간섭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외산 담배가 치고 들어오고 민영화라는 광야에 내던져지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2002년은 KT&G가 급격한 변화 속에서 긴장감을 가지고 방향을 잡던 시기였는데 결국 환경에 적응하고 스스로 변화하는데 성공하면서 평범한 배당주에서 성공적인 민영화를 이뤄낸 멋진 회사로 거듭났다.
이때 기존 경쟁력에 터보 엔진을 장착해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했는데 하나는 제품개발력이고 다른 하나는 마케팅력이었다.
민영화 이전에는 KT&G가 가진 제품 리스트를 누구라도 간단히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적었다. 하지만 민영화 이후 레종, 더원, 시마, 인디고, 클라우드나인 등 현란하게 신제품을 출시했다. 초대형 히트상품인 에쎄는 라이트, 멘솔, 필드, 원 등 수평적 확장을 꾀했다. 맛과 성분에만 변화를 가한 것이 아니라 제스트처럼 포장을 달리 한다든지 에쎄 스페셜 같은 기획 상품도 출시했다. 이렇게 탄탄해진 제품개발력은 고급화를 통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국산과 외산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으며 세분화된 충성스러운 고객이란 선물을 KT&G에게 안겨줬다.
역시 눈에 띄는 가장 큰 변화는 마케팅력의 강화다. 돈이 많은 기업 입장에서 가장 쉬운 마케팅은 TV를 통한 광고 물량 공세다. 하지만 담배는 법적으로 TV를 통한 제품 광고를 할 수 없는 탓에 민영화 이전 KT&G는 인쇄매체 광고나 간간이 하는 정도에 그쳤다. 효과가 있을 리 없었고 시장의 틈을 노리는 외국 담배 업체들에 비해 세련된 맛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민영화 이후에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담은 기업PR을 실시함과 동시에 각종 스포츠, 문화 이벤트 심지어는 주요 흡연 구역 쓰레기통에까지 KT&G 로고를 달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는 담배회사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다소라도 불식시키면서 간접적으로 제품 라인을 지원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 주주는 나의 운명
KT&G는 풍부한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 소각을 꾸준히 실천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과거 보여줄 것이 배당 밖에 없었고 민영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자사주 매입 소각이라는 방법이 도입된 거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KT&G 경영진의 사명으로 계승되었고 이제부터는 주주 구성상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핵심이다. 또한 더 길게 보면 의사결정시 주주의 눈치를 본다는 점이 당장 이익을 나눠주는 주주정책보다 더 중요하다. 장기투자에 가장 큰 걸림돌은 경영진의 불확실한 의사 결정이기 때문이다.
KT&G의 주주 구성 분포
단순 주주로서 기업에 올라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능력 있고 도덕적인 오너가 자신의 부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의 지분을 취득해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주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전문경영인이 획득해서 나눠주는 이익을 받는 것이다. 오너 책임 체제와 주주 중심 체제는 각기 장단점이 있는데 현재의 담배 산업은 오너 체제 보다는 주주 중시 체제가 더 적절하다. 담배 산업은 이미 성숙기로 접어든 탓에 위험을 적극적으로 감수하고 빠른 판단으로 시장을 넓히기 보다는 현재의 시장을 수성하면서 최대한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KT&G의 부동산 개발 사업이다. KT&G는 170개의 지점들을 가지고 있는데 시내에 인접한 지점들을 이동시켜 그 부지를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미 폐쇄된 8개 공장은 슬슬 작업을 시작한 상태다. “담배 회사가 뭐 그런 것까지..”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담배 시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부지런하고 효율적인 모습은 절대 선(善)일 수 밖에 없다. KT&G의 답안지라 할 수 있는 알트리아(구 필립모리스)가 식품 회사 인수 등 현금흐름의 적절한 배분과 효율성 증대를 통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꾸준한 주가 상승으로 주주들에게 큰 부를 안겨준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 두 가지 키포인트
지금까지 주로 KT&G의 밝은 면만 집중 조명했는데 이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KT&G의 변화 요인을 살펴본 복기 수준에 불과하다. 여전히 KT&G의 앞날에는 담배 회사라는 이름에 걸 맞는 장애물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런 리스크를 감안하면 현재 7조5천억원의 시가총액은 상기의 긍정적 측면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당장 배당수익률만 해도 금년 주당 1900원을 가정하더라도 4%에 불과하다. 적극적 주주정책으로 인해 축적된 자산이 많지 않아 PBR이 높은 점도 지적된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가총액을 넘어서려면 어떤 문제가 선결되어야 할까? 세금 인상 문제와 금연 인구 증가 문제의 소멸?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이고 추세적인 문제로 봐야지 해결 가능한 문제로 인식하면 안 된다. 차라리 KT&G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에 잘 적응하고 대응해 이익을 높일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현실적이다. 그것은 결국 순매출단가와 수출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 가능하다.
순매출단가는 담뱃값에서 세금과 유통마진을 제하고 순수하게 KT&G에 남는 갑당 금액을 일컫는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수량을 늘일 수 없는 내수 시장에서 이익을 늘리는 유일한 방법이 마진을 올리는 길 뿐이기 때문이다. 아래 표와 같이 소비자가격과 순매출단가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가일수록 순매출단가가 높은 경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KT&G가 신제품을 고가제품에 집중시키는 것도 569원 정도 하는 평균 순매출단가를 올리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순매출단가가 10원 오르면 GP마진은 약 350억원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단위: 원)
현재 소비자 가격 |
3,000 |
2,500 |
2,300 |
2,100 |
2,000 |
1,800 |
1,600 |
담배소비세+교육세 |
970 |
970 |
970 |
970 |
970 |
970 |
970 |
국민건강증진부담금 |
354 |
354 |
354 |
354 |
354 |
354 |
354 |
국민환경기금보조금 |
4 |
4 |
4 |
4 |
4 |
4 |
4 |
잎담배경작안정화기금 |
10 |
10 |
10 |
10 |
10 |
10 |
10 |
부가가치세 |
245 |
205 |
188 |
172 |
164 |
147 |
131 |
세금총합계 |
1,583 |
1,543 |
1,526 |
1,510 |
1,502 |
1,485 |
1,469 |
유통마진 |
300 |
250 |
230 |
210 |
200 |
180 |
160 |
순매출단가 |
1,117 |
707 |
544 |
380 |
298 |
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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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KT&G 보고서를 보고 회사의 담당자가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한 바 있다. “보고서의 내용이 저희 회사를 잘 파악해주셨는데 한 가지 빠진 게 있네요. 수출을 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네요.” 이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유가 2002년 수출 물량이 1억 개비 남짓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물량을 늘려 가동률을 유지해 고정비를 떨어뜨리는 효과 이외에는 없다고 판단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수출 물량이 2003년에 13억 개비로 폭증하더니 2004년 32억 개비를 넘어 올해는 약 60억 개비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중앙아시아, 중동, 러시아,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영국계 담배회사들의 아성이 만만치 않아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지만 내수 시장을 꽉 잡고 있는 상황에서 보너스로 붙는 수출 물량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결국 KT&G에게 있어 고가 담배를 얼마만큼 잘 만들어 국내 소비자에게 어필하느냐 그리고 후발 주자이지만 어떤 독특함으로 해외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느냐가 세금 인상과 시장 축소라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핵심이다. 투자자는 이런 결과를 순매출단가와 수출물량이라는 수치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수출 또한 순매출단가를 따로 떼어 계산한다면 정확도는 더해진다.
KT&G보다 배당수익률이 더 나오는 종목은 꽤나 많다. 하지만 KT&G가 고배당종목 리스트의 상위 부분을 늘 차지하는 이유는 단지 배당수익률 수치에만 있지 않다. 예측 불허한 당장의 6%보다 예측 가능한 꾸준하며 성장 가능한 4%를 원하는 투자자에게 KT&G는 여전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풍긴다. 3년 뒤에 보고서를 쓸 때도 현실이 된 상상을 다시 얘기하고 싶다.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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