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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을 기다려 끗발 잡았다

말뫼의 눈물

총중량 7560톤, 폭 165미터, 높이 128미터. HD현대중공업237,000원, ▲8,500원, 3.72%에 설치된 세계 최대의 골리앗 크레인의 프로필이다. 축구장의 1.5배에 45층 건물과 맞먹는 높이를 가졌으니 그 규모가 엄청남은 말할 것도 없다. 들어올릴 수 있는 중량은 1500톤에 달한다. 이 크레인에는 독특한 두 가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인수 가격이 단 1달러에 불과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말뫼의 눈물이란 별칭으로 불린다는 점이다.



이 크레인은 원래 1990년까지 조선 최강국이었던 스웨덴의 코컴스(Kockums)사의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업의 쇠락과 함께 도산해 방치되어 있다가 2002년 현대중공업이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코컴스사가 해체 및 운반 비용을 부담할 능력이 되지 않아 현대중공업이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1달러에 인수하는 조건으로 결론이 났다. 이때 코컴스사가 위치한 도시 말뫼에서 크레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언론들이 이를 크게보도하면서 말뫼의 눈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는 전세계 조선업의 현황을 한 눈에 보여줬던 사례다. 즉 스웨덴, 노르웨이를 포함한 유럽은 지는 해, 거대한 크레인을 인수할 정도로 일감이 풍부한 한국은 뜨는 해라는 것이다. 자동차 분야처럼 단지 개선되고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한국의 조선소들은 현재 세계 넘버원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그 명성은 곧 한국의 대표적인 조선사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명성 그 자체다.


장기 호황의 뒤에 숨은 배경

대한민국 조선산업은 이미 1993년에 수주량 기준으로 1위에 올라섰다. 2000년 들어서는 양과 질에서 절대 지존이었던 일본마저도 제쳤다. 이미 이건 다 아는 얘기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 조선업이 새삼스레 다시 주목 받는 이유가 뭘까? 많은 사람들이 세계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물동량 증가를 얘기하지만 그보다 더 핵심적인 배경은 고유가가 몰고 온 세계 에너지 구도의 변화에 있다.

첫째로 기름값이 올라가면서 상대적으로 LNG 수요가 증가했다. LNG는 기체 상태이다 보니 이동이 용이하지 않아 파이프 설치 등 인프라가 필요해 기름값이 쌀 때는 굳이 쓰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난방용은 LNG로 대체하자는 움직임이 미국을 중심으로 불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일쇼크 이후 일찌감치 LNG를 도입해 도시가스 인프라를 깔았는데 절묘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LNG는 대부분 중동에 묻혀 있는데 거긴 날씨가 더워서 난방용으로 LNG를 사용할 필요가 없고 선진국은 겨울이 존재하는 곳에 위치하지만 LNG 매장량이 없다는 공간 상의 불일치에서 기인한다. 즉 수요처와 공급처 사이의 간극을 메워 LNG를 운반할 무엇인가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LNG운반선이다.

대한민국 조선산업이 대박 난 이유가 바로 이 점을 미리 인지해 LNG운반선 개발에 일찍부터 박차를 가했다는 데 있다. 실제 지난 7월말 현재 한국은 5882만GT(1004척)의 선박 수주잔량을 기록해 세계 시장점유율 37.5%를 점유하고 있는데 이중 LNG운반선을 포함한 고부가가치선의 비중은 무려 세계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선견지명이 과실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둘째로 고유가로 인해 메이저 석유사들이 과거에 경제성이 맞지 않아 놔뒀던 유정까지도 손대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적인 유정이 심해 유정이다. 기름을 팔 때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은 역시 육상 시추다. 하지만 매장량이 많은 곳은 이미 개발될 대로 개발되었고 심지어 근해 시추도 포화 상태기 때문에 유일한 대안은 먼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뭔가 장비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해양플랜트다.



과거 조선사들에게 해양플랜트는 애물단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메이저석유사들이 굳이 먼 바다로 나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수요가 적었고 그로 인해 조선사는 고정비 부담을 떠안아 적자가 누적되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지난 2년 사이에 부유식 심해시추선 가격이 60% 상승해 시세가 5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또한 멕시코만 등 지역에서 석유시추설비 확보 경쟁이 벌어져 10월에 하루 임대료가 지난해보다 3배 이상 올랐다. 해양플랜트가 대당 약 5억 달러 선에서 발주되는 것이 현실이니 조선사 입장에서는 고진감래가 따로 없다.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른

HD현대중공업237,000원, ▲8,500원, 3.72%은 대한민국 조선업의 산 역사다. 고 정주영 회장이 허허벌판인 미포만 사진 하나 들고 유럽으로 날아간 얘기, 금융기관과의 담판 자리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거북선을 보여준 얘기, 조선소도 없을 때 미리 수주를 받아 조선소를 지으면서 배를 만든 얘기, 이 모든 것이 현대중공업의 에피소드다.

하지만 순수한 조선업으로 보고 상기의 아이디어를 적용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조선, 해양, 엔진 외에도 건설장비와 플랜트 사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관련이 70%를 넘으니 무슨 상관인가 하겠지만 건설장비 등이 대규모 장치 산업인 까닭에 조금만 업황이 좋지 않으면 이익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행히 현재로서는 모든 사업 부문이 잘 돌아가고 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매출 구성 비교
사업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조선
50.7
79.7
해양
14.3
19.4
플랜트
6.5

엔진/기계
8.4

건설장비
10.0

전기전자
9.0

기타
1.1
0.9
(2005년 3분기 기준, 단위 : %)

대우조선해양은 대우중공업에서 조선 부문만 떨어져 나온 탓에 현대중공업에 비해 매출 구성이 심플하다. 사명 그대로 조선과 해양 두 사업부문만 있어 전체 매출의 99.1%를 차지한다. 조선업 아이디어만 놓고 보면 대우조선해양이 더 잘 들어맞고 분석도 훨씬 용이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대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을 합친 것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두 회사의 차이는 매출 구성에만 있지 않다. 일단 사이즈와 역사가 틀리다. 매출로 볼 때 현대중공업은 약 10조, 대우조선해양은 약 5조로 두 배 차이가 난다. 또한 현대중공업은 창립 이래로 세계 선두권을 유지하며 큰 어려움 없이 순항한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대우중공업 시절 그룹 전체의 위기로 워크아웃 상태까지 갔었다. 그 결과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는 개인인 반면,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이 어려움을 겪은 것을 꼭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업계 최고의 비용 통제 능력을 키운 데다가 계열사 리스크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산업은행이 계속 같이 갈 수는 없는 만큼 향후 M&A에 따른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신규수주량 추이 비교

2002
2003
2004
2005.10

현대
대우
현대
대우
현대
대우
현대
대우
탱커선
22
13
57
23
17
16
10
8
벌크선
6
4

3

6


컨테이너선
26
6
66
9
55
10
46
14
LNG선

5

3
12
20
5
8
특수선
5

1

4



기타
2
3
2
13
16
12
17
8
(단위 : 척)

위의 표에서 2002년부터 현재까지 신규수주량 추이를 보면 조선업의 변화와 함께 두 회사의 차이를 읽을 수 있다. 우선 저부가가치 선박 비중이 줄어들고 고부가가치 선박에 대한 비중이 높아짐을 알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2003년부터 벌크선을 전혀 수주하지 않았으며 2004년에 처음으로 LNG선을 수주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2004년을 마지막으로 벌크선을 수주하지 않아 현대중공업 보다 느렸으나 LNG선은 이미 2002년에 5척을 수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5년 10월 현재 신규수주를 보면 전략과 경쟁력의 차이도 읽을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컨테이너선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주력으로 신규 수주를 하고 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 매출의 절반 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LNG선 수주 규모는 두 배에 이른다. 컨테이너선 비중은 현대중공업의 약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즉 현대중공업은 외형과 고부가가치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1위를 유지하겠다는 심산인데 반해 대우조선해양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많이 남길 수 있는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특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향후 체크 포인트

대한민국 조선업은 세계 시장의 지존으로 뒤에서 바람까지 맞고 있다. 하지만 재무제표를 보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거대한 시가총액과 매출액에 비해 적자 혹은 소폭 이익이라는 초라한 실적을 보이고 있어서다. 그 이유는 매출과 비용의 시간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배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조선업은 수주 시점과 매출 인식 시점이 다르다. 즉 매출은 수주를 할 때 정해지지만 만들 때 들어가는 비용은 현재 시점에서 들어간다. 따라서 저가 수주를 해놓은 상태에서 나중에 비용이 급등하면 일은 바쁜데 적자가 나는 사태가 발생한다. 최근 조선업이 딱 그 모양이었다. 조선업이 활황에 들어가기 전 고정비를 커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가 수주를 해뒀는데 후판 등 원자재값이 뛰면서 현재 재무제표 상으로는 적자가 났던 것이다. 여기에는 매출은 달러, 비용은 원화인 특유의 구조에서 달러가 약세로 간 영향도 있었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는 두 가지를 유심히 봐야 한다. 하나는 현재 수주가 고가 수주이냐 하는 점이다. 일단 LNG선, 해양플랜트 모두 수요 초과 상태라 선별 수주를 하고 있어 긍정적이라 결론 내릴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원자재 동향이다. 특히 후판 가격 동향이 관건이다. 아직 추세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결론을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보인다. 환율 문제는 조선사들이 헷지를 하고 있으므로 실적을 감상할 때 영업이익 보다는 경상이익을 봐주는 센스만 있으면 되겠다.

장기적으로 위협 요소는 역시 제조업 최강국인 중국의 추격이다. 현재는 벌크선, 컨테이너선을 만드는 수준이고 한국은 이미 고부가가치선으로 포트폴리오를 옮긴 터라 격차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 격차가 있다고 했던 다른 산업에서의 추격 속도를 감안할 때 안심할 수만은 없다. 과거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왕좌를 가져온 데에는 일본의 숙련된 노동자들의 노쇠와 이에 따라 자동화 설비를 한 것이 시장 변화 대응의 걸림돌이 되었던 영향이 컸다. 현재는 우리나라 조선업 종사자들의 실력과 노하우가 절정에 달해 있지만 후진 양성에 실패할 경우 일본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부디 부단한 기술 개발과 원가 경쟁력 유지를 통해 두 회사 모두 울산의 눈물’ 혹은 '거제의 눈물'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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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 happyj
    재미있네요.. 글이 참 맛있습니다.
    2005.12/13 09:02 답글쓰기
  • happyj
    2005.12/13 09:02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생각하는돌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석유 에너지 얘기가 나오니까 문득...유가가 계속 오른다면 몇 년 후의 에너지 산업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궁금해지네요...
    2005.12/13 11:04 답글쓰기
  • 생각하는돌
    2005.12/13 11:04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hansann21
    잘 읽었습니다.
    참 좋은 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충 알고만 있었는데
    전문가에 의해 잘 요약된 글이라 파박 정리가 되었네요
    2005.12/13 13:11 답글쓰기
  • hansann21
    2005.12/1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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