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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가는 자, 위로 가는 자

바야흐로 무선 세상이다. 조그만 휴대전화를 가지고 어디서나 대화를 할 수 있고 커피숍에서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 놓고 인터넷을 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텔레비전도 집 밖에서 본다. 모두 처음에는 신기하기 그지 없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모습이었으나 이젠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그러나 당신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컴퓨터 뒤를 한번 보라. 만약 컴퓨터가 없다면 텔레비전 뒤라도 한번 보라. 각종 선(線)들로 뒤엉켜 있는 광경을 보고 과연 무선 세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겠는가? 밖을 보라. 여전히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를 잇는 전선은 존재하고 산에는 철탑이 즐비하다. 전력은 아직도 무선으로 대체할 수 없다. 사실 휴대전화도, 무선인터넷도, DMB도 네트워크 상에서 서로 얽혀 있는 선의 도움 없이 100% 무선으로 서비스 되는 것은 아니다.



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수요 성장은 예전 같지 않다. 아니 그냥 저성장 상태에 들어갔다고 보는 게 맞다. 무선 세상이 되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 이미 깔릴만한 곳은 다 깔렸기 때문이다. 인프라를 한창 깔 때는 수요를 충족 시키기에도 바쁠 정도로 잘 나가지만 거의 다 깔리고 나면 할 일이 줄어드는 게 바로 인프라 제공 기업들의 숙명이며 전선업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떻게든 성장은 해야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선 기업하면 역시 대한전선11,210원, ▼-230원, -2.01%과 LS전선이다. 매출에 있어서는 2004년 기준으로 대한전선과 LS전선이 각각 2조4286억원, 1조6,111억원으로 LS전선이 앞선다. 그러나 대한전선은 LS전선보다 설립이 더 빨랐으며 LS전선은 물론 어느 기업도 무시 못할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55년 설립해서 지금까지 50년간 단 한해도 적자가 나지 않은 것이다.



대한전선
LS전선
설립년도
1955년
1962년
시장점유율
29%
49%
매출액
1조 6,111억
2조 4,286억
영업이익
762억
942억
순이익
448억
1,178억
자산총계
1조 7,250억
2조 3,217억
자본총계
6,845억
1조 1,320억
시가총액
9,680억
9,450억
대차대조표는 2005년 반기 기준, 손익계산서는 2004년 결산 기준

두 기업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70%가 넘어간다. 말 그대로 과점 시장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이건 다시 말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전력, 통신 인프라를 깔면서 사용한 전선은 대한전선 아니면 LS전선 제품이었단 얘기다. 그런 까닭에 둘 다 그 동안 돈을 엄청 잘 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각 6,845억원, 1조 1,320억원이라는 자본총계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울한 면에서도 공통점을 가진다. 우선 IMF 이후부터 매출이 거의 정체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시장 성장도 없는 데다가 누가 누구 것을 빼앗아온다는 개념도 없어 정말 투자가들이 재미를 못 느낄 만할 정도다. 게다가 영업이익률도 하락 추세다. 2004년 기준으로 영업이익률은 대한전선 4.7%, LS전선 3.8%로 전형적인 저마진 사업이 되어 버렸다.

매출액 추이 비교 (1999년~2004년)


기업이 성장을 멈춘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직원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우수한 인재도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매출이 정체된 상태에서 원가 관리만 하는 것은 재미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이러다 보면 원가 경쟁력을 갖춘 중국 업체들에 덜미를 잡힐지도 모른다. 결국 길게 보면 성장의 정체는 생존에 관련된 문제다.

대한전선과 LS전선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다행히도 그 동안 벌어놓은 돈이 많고 마진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전선 사업이 캐쉬카우 노릇을 하고 있어서 조금은 여유 있는 상태에서 성장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전선과 LS전선의 대결을 관전하는 진정한 재미는 둘 다 성장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동일하되 그 전략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대한전선은 옆으로의 성장, LS전선은 위로의 성장을 추구한다.


돈 되면 뭐든 한다

얼마 전 타계한 대한전선의 고 설원량 회장의 지론은 사업의 가치는 규모가 아니라 이익 창출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3년에 TEC 브랜드로 잘 알려진 가전 사업 부문을 대우전자에 매각한 건이다. 매출의 반을 차지하던 주요 사업 분야였지만 삼성과 금성의 공격으로 적자 누적이 불가피했다. 잘 안되니까 팔아 먹은 거지 뭐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은 이익보다는 외형 즉 매출이 중요하던 때라는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외에도 반도체, 전화교환기, 알루미늄 열연, 보험업 등에 진출했지만 성과가 시원치 않자 조기 철수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이와 함께 50년 연속 흑자의 비결로 꼽히는 것이 현금 확보 전략이다. 사업 자체가 워낙 현금 창출 능력이 좋았던 면도 있지만 무리하게 확장하지 않고 현금을 넉넉하게 가져갔던 탓에 IMF 때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50년간 형성된 기업 문화 그리고 그 동안 쌓아둔 막대한 총알을 바탕으로 대한전선이 선택한 성장 전략은 전선에 얽매이지 않고 돈 되는 사업이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것이다. 전문경영인인 임종욱 대표는 초기 30%의 수익성을 낼 수 있고 사업의 연속성만 보장된다면 어떤 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다고 대외적으로 공포할 정도다. 조직 내에서는 전략경영본부라는 부서가 신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투자 사례가 무주리조트, 쌍방울, 진로 정리 채권 인수 등이다. 이중 가장 대박은 역시 진로 정리 채권이었다. 2728억원을 투자해 3000억원을 벌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한전선의 군인공제회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많았지만 진로 정리 채권을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서 우려의 목소리를 많이 잠재웠다. 특히 채권을 가진 기업들의 인수전에도 가담해 M&A까지 불사하는 과감함은 실제로도 수익 증가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적극성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해줬다.

74.5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무주리조트는 일회성 이익 성격이 강한 진로의 경우와 달리 향후 대한전선의 지속적인 사업 부문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질질 끌어오던 골프장을 정식 개장하고 무주 레저도시개발 단독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2015년까지 1조 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등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아직 본격적인 흑자를 내고 있지는 못하지만 레저라는 미래산업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주요 자회사 비교
대한전선
LS전선
자회사
지분율
자회사
지분율
무주리조트
74.5
LS산전
46
쌍방울
33.14
LS니꼬동제련
50
노벨리스코리아
23.5
진로산업
95.5
남아공 엠텍
49
카보닉스
73.5
몽골 스카이텔
39.97
코스페이스
87.1
케이티씨
49.75
청도락성공조 유한공사
100
대한벌크터미날
100
락성전람무석 유한공사
100
대한리치
51
락성기계무석 유한공사
100


본업이 최고여

LS전선은 LG에서 독립한 LS그룹의 지주회사 격이다. 그룹의 소속 계열사는 17개이고 핵심은 LS전선, LS산전, 그리고 LS니꼬동제련이다. 척 봐도 전선, 전력기기, 전기동 등 관련업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대한전선과 근본적으로 다른 출발점을 가지는 까닭이다. LS전선이 저성장을 타파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하겠다고 혼자서 나서면 다른 계열사들이 붕 떠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LS전선은 새로운 영역 확보를 기술에서 찾고 있다. 전 계열사를 통틀어 약 150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비를 책정하고 있을 정도로 본업에서 고부가가치 품목을 만들어 내는 쪽에 올인하고 있다. 그 동안 번 돈을 투자적, 재무적으로 집행하고 있는 대한전선과는 분명 다른 행보다.

LS전선이 생각하는 성장 축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댁내광가입자망 FTTH(fiber to the home)다. 현재 인터넷망은 동케이블 기반인데 용량이 아무리 커봐야 10메가다. 하지만 FTTH는 광케이블 기반으로 용량이 100메가에 이른다. 쌍방향 통신을 가능케 해주는 초고속 통신 시대의 핵심인 셈이다. 만약 망 업그레이드가 진행된다면 제2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한전선도 수익 다각화를 하면서도 FTTH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LS전선 혼자서만 독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두 번째는 해외 진출이다. 현재도 수출과 내수가 반반일 정도로 해외 비중이 높지만 앞으로는 이를 더 가속화 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중국 진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중국 장쑤성 우시에 LS산업단지를 준공했는데 이를 계기로 청도와 천진에 있는 기존 공장까지도 생산 능력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FTTH로 쿠웨이트에서 공급 계약을 따내는 등 품목 또한 확대하고 있다.

세 번째는 부품, 소재산업으로의 확장이다. 현재 15% 수준인 부품, 소재 매출 비중을 30%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차세대 에너지저장장치인 울트라 커패시터다. 울트라 캐패시터는 기존 2차 전지 제품의 출력을 100배 이상 상회하는 초고용량의 제품으로 에너지사업 분야의 핵심이다. 또한 연성회로기판(FPCB) 등 회로기판 소재에도 관심이 많아 연성동박적층필름(FCCL) 생산라인 갖추기에도 나섰다. 지난해에는 무선통신 부품사업업체인 코스페이스와 2차전지업체인 카보닉스를 인수해 기술개발 뿐 아니라 기술확보를 위한 자금 집행에도 열심이다


마이웨이 평가는 역사가

대한전선, LS전선 모두 시가총액 9,000억원을 넘고 있다. 성장이 정체된 분야에 속해 있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각각의 순이익 규모를 감안하면 사실 이 정도의 시가총액은 이익창출능력 보다는 그 동안 쌓아둔 자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특히 대한전선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결국 향후에는 어떤 방향을 택했는지에 상관없이 보유 중인 자산의 활용도를 높이고 지속 가능한 이익 원천을 만들어내는 쪽이 더 높은 시가총액을 적용 받을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두 기업을 모두 살펴보았듯이 전략이 상이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역량과 잘 맞고 구체적인 전술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수준이라 둘 다 투자 고려 대상으로 적합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섣불리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비즈니스계의 역사가들이 관련 사업 다각화와 비관련 사업 다각화 중 어떤 것이 더 맞는가에 대해서 논할 때 두 기업의 사례를 들지 모른다. 대한전선, LS전선 모두 원하는 바대로 잘 걸어가 정체된 성장을 타파하려고 노력하는 기업들에게 자신감을 불러 일으키는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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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 레옹2
    저도 LS 전선 소유자였지만.. (지금은 아님)아무래도 요즘 너무 해외에 투자를 무리하게 하는것 같더군요
    걱정은 되지만 앞으로 5년을 본다면 정말 좋은 회사라고 생각됩니다.
    2005.10/28 08:17 답글쓰기
  • 레옹2
    2005.10/2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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