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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리지 않았던 '싼 게 좋은 것이여'
PER는 주식 가치평가를 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쓰이는 개념이다. PER는 시가총액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수치이다. 즉 기업을 현재 시가총액으로 인수할 때 순이익만으로 얼마 뒤에 투자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가하는 수치로 이해하면 된다. 하지만 PER를 여러 가지 허점을 가진, 세련되지 못한 가치평가지표로 여기는 투자자도 많다.
대학경제신문에서는 2004년 4월 14일의 주가와 2003년 실적을 기준으로 PER를 구해보고 이 기업들이 향후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에 대해 궁금증을 표시한 바 있다. 이 때 골랐던 기업들의 평균 PER는 1.94로서 2년도 채 안되는 기간의 순이익만으로 투자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극도로 저평가된 기업들이었다.
PER 2대의 기업에 투자하면 매년 50%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부동산을 사서 임대수익만으로 2년 만에 투자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면, 혹은 은행에 예금을 해서 이자만으로 2년 만에 원금에 해당하는 이자를 받을 수 있다면, 그런 부동산이나 금융상품은 단 몇 분만에 판매 완료될 것이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는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실제로 2004년 4월 당시에도 PER가 2대도 안 되는 기업들이 수두룩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가치평가를 받고 있는 기업들이 나오는 것일까? 앞으로 당시 상황과 그 때 낮은 PER를 적용받던 기업들의 주가 변화 추이를 복기해보면서 투자자가 PER를 어떻게 인식해야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당시 PER가 낮았던 40개 기업의 특징을 검토해보자. 우선 건설 관련 기업들이 많이 보인다. 저PER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쌍용건설, 중앙건설을 비롯해 7위까지의 기업 중 무려 6개가 건설업을 주력 업종으로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이 외에 시멘트와 같은 건자재 기업을 포함시킬 경우 무려 20개에 달하는 기업들이 건설 관련 업종이다. 그 다음으로 철강, 섬유, 금융(저축은행, 캐피탈) 등이 저PER군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업종들로 어떤 특성을 가진 기업들이 저PER에 거래되는가를 알 수 있다. 저PER업종들은 이익의 지속성을 의심받는 기업들이다. 아무리 PER가 2라도 첫번째 해만 이익을 내고, 다음해 부도가 나버린다면 원금회수가 불가능해진다. 건설업의 경우 투자자들의 가슴속에 아픈 추억을 남긴 업종이다. IMF당시 아파트 미분양, 해외 부실 채권, 비자금 조성, 분식회계 등으로 국내 대형 건설업체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2002년과 2003년은 강남 아파트 가격 폭등과 수도 이전을 호재로 건설업이 초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다. 짓기만 하면 분양이 될 정도로 호경기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그 이익이 지속될 것을 믿지 않았다. 아무리 현재 이익을 많이 내더라도 대형 단지 분양 하나만 잘못되면 회사가 휘청거릴 수도 있고, 작년의 이익이 내년의 이익 수준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투자자들은 금융이나 철강쪽도 경험적으로 볼 때 이익의 지속성이 낮다고 판단했었다. 섬유쪽의 경우는 약간 다른데, 이 업종은 사람들이 더 이상 꿈이 없다고 여기는 업종이다. 섬유산업은 한 두해는 이익은 낼 수 있을지언정 노동집약적이라는 업종 특성상 결국 중국이나 신흥 개발도상국에 안마당을 내 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역설적으로 PER가 높은 기업은 이와는 정반대의 특성을 갖는다. PER가 높은 기업은 투자회수에 걸리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진다는 리스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PER가 높더라도 그 기업을 사는가, 다시 말해 어떤 기업들이 높은 PER를 적용받는가?
상대적으로 PER가 높은 기업들의 특성은 크게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번째는 사업이독점적이고 안정적인 이익을 내는 기업이다. 실제로 농심, 태평양, 신세계 등의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초우량 기업은 위에서 언급된 저PER기업보다 훨씬 높은 PER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업계를 리드하고 있고, 거의 독점적인 가격 협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익이 안정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비정상적으로 PER가 높은 기업들이 나타나는데, 이 경우는 투자자들이 성장성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경우이다. 최근 몇 달 사이 줄기세포 관련주, DMB관련주, 대체 에너지 관련주는 나름대로의 기대감을 반영해서 주가가 급등한 바 있다. 심지어는 PER가 100을 넘어가는 기업이 있을 정도다. 이 경우는 성장성에 대한 기대가 이미 주가에 반영되어 있으므로 설령 그 꿈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추가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다. 가령 PER이 100인 주식을 샀을 때 그 기업의 순이익이 1000% 증가하더라도 PER는 10이나 나온다. 오히려 실적이 매 분기 기대감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주가가 급락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지나치게 높은 PER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내 손에서만 폭탄이 터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폭탄돌리기 게임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PER의 또다른 함정은 당기순이익이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당기순이익에는 영업이익 외에도 자산매각 이익, 부채탕감으로 인한 이익, 법인세 환급으로 인한 특별이익 등 일시적인 이익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비경상적인 이익이 많을수록 PER는 그 기업의 진짜 실력과는 상관없이 왜곡이 되어 나타나기 쉽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학경제신문에서는 수정 PER로서 ‘PER(B)=시가총액/영업이익’를 도입한 바 있다. 기존의 PER(A)가 ‘시가총액/순이익’으로 나타나는 지표인데 비해, 이 지표는 그 기업이 순수 영업능력 대비 얼마나 저평가되어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두 가지 지표의 평균값을 감안하면 그 기업이 얼마나 저평가되어 있는가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개월 전 종합주가지수는 916.31, 현재 종합주가지수는 947.23로서 지수는 3.37% 올랐다. 이에 비해 수정 PER로 본 저PER 40대 기업의 주가는 평균 61.56%가 올랐다. 등록 취소된 한마음 저축은행을 제외할 경우 종합지수 상승분보다 무려 58.19%나 주가가 초과 상승한 것이다.
이렇게 저PER 전략이 승리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 저PER기업은 투자자들의 기대 수준이 매우 낮다는 점을 수 있다. 고PER 기업이 끊임없이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최고의 실적을 내야 간신히 주가를 유지하는데 반해, 저PER기업은 이익이 줄어들지만 않아도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만약 순이익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기미만 보여도 주가는 쉽게 움직인다. 하락 가능성 또한 매우 제한적이다. PER 1~2대의 저PER기업들은 이미 팔만한 사람들은 다 팔아버리고, 더 이상 이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거래량이 매우 적고, 가지고 있는 사람마저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큰 폭락장이 올 때도 저PER 기업의 주가는 종합지수만큼 많이 떨어지지 않는다.
두 번째 저PER기업의 재평가 과정은 안정적이고, 꾸준하다. PER 1~2대의 저평가 기업이 순이익이 전년 수준을 유지하면서, 주가가 두 배 가량 상승하더라도 PER는 여전히 2~4대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저PER기업이 시장에서 재평가를 받고 올라가더라도 워낙 싸게 거래되고 있던 기업이었기 때문에 주가는 여전히 싼 경우가 많다. 주가가 오르는 기업은 어떤 이유에서건 시장으로부터 더욱 더 주목을 받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만약 주가가 오르는 이유가 납득할만하고 주가가 여전히 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주가는 꾸준히 오르게 된다.
저PER 전략은 고전적이면서도 가장 간단하고 쉬운 투자전략이다. 주식시장에서 ‘싸다’는 것만큼 매력적인 단어는 없다. 950선에 육박할 정도로 오른 주식시장이 다소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저PER종목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서 자산 구성의 안정성을 더 높이는 것을 어떨까? 평범함과 단순함에서 오는 지루함을 참을 수만 있다면 저PER 전략은 투자자에게 만족할만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2004년도 저PER투자 전략 복기는 어려운 수학공식보다 싼 게 좋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민국 kim@vip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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