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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기관자금을 거절한 '사나이'
일본 투신업계의 이단아 사와카미를 만나다
일본 투신업계의 이단아. 샐러리맨의 자금만 받기 위해 1조의 기관 자금을 거절한 사나이. 샐러리맨을 위한 단 하나의 펀드만을 운용하는 사와카미 투신의 사와카미 사장에 따라 붙는 수식어들이다.
처음 사와카미 사장의 친구이기도 한 미래에셋투자연구소의 강창희 소장님으로부터 사와카미라는 사람의 얘기를 전해 듣고는 매우 ‘독창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장기투자, 적립식, 샐러리맨, 단 하나의 펀드 등 투자자를 혹하게 할만한 매우 매력적인 키워드들을 담뿍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를 만나보고 나서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제 이틀동안 사와카미 사장의 팬으로서 그와 밀착해 동행하며 느낀 바와 함께 그에 관한 자세한 얘기를 풀어놓을까 한다. 현재 장기적인 안목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투자자, 현재 자산운용에 종사하는 전문가, 향후 자산운용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사와카미 사장은 큰 이정표를 제시해주리라 생각한다.
왜 샐러리맨 전용 펀드인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에서도 가입자의 계층을 아래로 특화한 주식형 펀드란 존재하지 않았다. 즉 기관용 사모펀드라든지 거액 자산가들을 위한 펀드는 있었지만 샐러리맨의 자산 증식을 돕겠다는 펀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계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우선 큰 돈을 모으기 쉽지 않다. 대중의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는 대중적 인지도가 있어야 한다. 우리 머리 속에도 딱히 유명한 일본의 펀드매니저 이름이 떠오르지 않듯이 피터 린치처럼 대중으로부터 큰 자금을 끌만한 매니저가 흔치 않다. 그렇다고 수 많은 사람을 일일이 만나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규모가 큰 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소액을 모으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게 사실이다. 관리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1000억 자금을 맡긴 단 하나의 주체와 1억 자금을 맡긴 1000명의 주체를 비교하면 총금액은 같지만 관리 비용에서 큰 차이가 난다.
사와카미 투신 역시 이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펀드를 직판하다 보니 약 30명의 직원 중 관리 인력이 20명에 이른다. 이들은 펀드 문의를 응대하고 4만5000명의 기존 펀드 가입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데 조그만 운용회사로서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사와카미 사장도 원하는 샐러리맨의 장기성 자금을 모으기 위해 직접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강연회와 설명회를 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와카미 투신은 왜 샐러리맨 전용 펀드를 고집하는가?
아이러니 하게도 사와카미 사장은 사와카미 투신을 창업하기 전 스위스 픽텟의 일본 지사장이었다. 픽텟은 유럽에서 유명한 거액자산가 대상 프라이빗 뱅크다. 그는 이때 유럽의 거액자산가들을 상대하면서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투자와 운용이 얼마나 큰 부를 가져오는지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눈에 일본의 현실은 비참했다. 일본 사람들의 대부분 자산은 은행 예금에 들어있다. 높은 저축율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국민으로 칭송 받은 적도 있었지만 개개인의 효용으로 보면 결과가 너무 초라하다. 현재 일본의 금리가 0.03%이기 때문이다. 사와카미 사장은 이래서는 부자는커녕 노령화 사회에도 대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부 자산이 펀드에 투자될 때도 있지만 항상 주가가 고점을 쳤을 때 뿐이었다. 대형 증권사들은 고객의 수익률보다는 고객들을 붐에 편승 시켜 배를 불리는 관습에 익숙해 있었다.
한 마디로 그는 진정으로 개인들을 위해주는 펀드가 일본에는 단 하나도 없다고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고객에게 좋은 상품을 소개하는 판매사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직접 샐러리맨을 위한 투신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그런 배경이 있는 터라 사와카미 펀드는 세 가지 원칙을 고집한다.
첫째 오로지 샐러리맨의 자금만 받아 들인다. 사와카미 펀드의 성과를 보고 연금 측에서 1조원의 돈을 맡기려 했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정중하게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둘째 사와카미 투신에서는 사와카미 펀드라는 단 하나의 펀드만 운용한다. 자금만 모으려고 고객 취향을 맞추다 보면 백화점식이 되어서 운용자가 집중할 수도 없고 투자자의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자신의 펀드를 피터 린치의 마젤란 펀드에 곧잘 비유하곤 한다. 셋째 판매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판매를 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사와카미 투신에는 투신사 치고는 관리 인력이 많은데 판매를 직접 담당하기 때문이다. 사와카미 사장은 다소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펀드의 성격과 고집하는 원칙을 정확하게 투자자에게 주지시킬 수 있고 수수료도 줄일 수 있다고 얘기한다. 실제로 사와카미 펀드의 수수료는 1%에 불과하다.
이런 원칙을 가지고 98년 출범한 사와카미 펀드는 시작은 초라했지만 현재는 4만 5000명의 가입자에 8000억원의 자산으로 규모 면에서도 일본 유수의 펀드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사와카미 사장은 자신의 경쟁 상대는 예금이라고 얘기한다. 그러기 때문에 시장도 무척 크고 자신의 펀드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단언한다. 적립식이라는 특성을 감안한다면 그의 호언은 결코 꿈이 아니다.
사와카미는 가치투자자인가?
미래에셋투자연구소와 VIP투자자문이 함께 사와카미 사장을 초청한 터라 직접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비행기가 조금 연착 되어서 입국장 앞에서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어떤 체격이 왜소한 노인이 인기척을 했다. “스미마셍. 스미마셍…”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고 있는 노인 바로 그가 사와카미 사장이었다. 분명 사람들이 상상하는 펀드매니저와 투신사 사장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여의도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그에게 투자 스타일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미 그의 저서 ‘불황에도 승리하는 사와카미 투자법’을 읽은 터라 궁금증이 극도로 달해 있었던 상황이었다. 연신 퍼붓는 질문에 그는 천천히 답변을 해주었다. 답변을 하는 그의 모습은 일종의 비장함 마저 느껴질 정도의 진지함이 묻어 있었다.
우선 의문이 들었던 것은 사와카미 사장이 종목을 우선으로 하는 바텀업(bottom up) 식의 투자를 하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좋은 기업이 싸게 거래된다면 장세는 무시하라’는 격언을 추종하는 나로서는 그가 주장하는 경기가 바닥일 때 사서 천정일 때 파는 경기 사이클적 투자를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다.
“저는 저 자신만의 투자 스타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비슷한 사람을 들라면 워렌 버핏입니다. 그는 종목을 중시 여기지만 철저하게 경기가 바닥에 있을 때나 아무도 그 종목에 대한 기대가 없을 때 혹은 주식시장이 폭락할 때 사들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약 300개의 종목을 보유하고 있지만 단 한 종목도 폭락 때 외에 산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종목이라도 싸게 사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에 놀랐는데 하나는 종목의 숫자가 무척 많다는 것이고 아무리 좋은 주식이라도 경기가 천정이며 하나도 남김없이 다 팔아버린다는 부분이었다. 특히 현금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천정에서 현금을 확보하면 다시 바닥으로 갈 때 그만큼 많은 주식을 살 수 있다는 논리다.
그는 젊은 시절 유럽 캐피탈 리서치에서 일했다.(캐피탈 그룹은 얼마 전 내한에 각 그룹사의 오너들을 불러들인 운용사로 잘 알려져 있다) 처음엔 아르바이트로 일했는데 분석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아예 취직을 한 경우라고 한다. 그런 까닭에 종목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 분석을 하지만 경기에 따른 타이밍이라는 부분을 가미한 것이다. 비중이 1%가 넘는 종목이 없을 정도로 그 숫자가 많은 것은 회사의 경영권에 간섭하기도 싫거니와 시장에서 괜한 오해를 사기 싫다는 그의 고집 때문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도요타 자동차 조차도 사와카미 펀드 전체의 1%를 넘지 않는다.
이어서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경기로 타이밍을 잡는다면 경기 예측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걸 잡아내는 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오직 종목 분석만이 인간의 영역이라는 나 자신의 고집이 묻어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는 또한 담담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경기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현재 경기가 바닥인지 천정인지 정도를 아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모두가 비관론에 싸여있고 경기가 어렵다고 난리를 치면 바로 그때가 바닥입니다. 다만 용기가 없어서 경기가 바닥일 때는 주식을 사지 못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더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에 경기는 언젠가는 돌아서기 마련입니다. 다만 저는 펀드매니저가 아주 잘 사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렇게 되면 서민 경기와 멀어지고 현재가 경기 불황인지 호황인지를 가늠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여전히 경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쪽에 100%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경험을 통해 나름의 포착 방법이 있으리라 여기기도 했고 일본이 현재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는 특수성이 어느 정도는 반영되어 있는 논리라 생각했다. 나도 종목 질문을 받으면 부담스럽다는 걸 알지만 어차피 시장이 다르다는 생각에 살짝 종목을 물어봤는데 닛폰 스틸(Nippon Steel)의 예를 들어줬다. 내가 바로 “포스코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고 이제 일본의 철강은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냐”고 받아 쳤더니 “그렇기 때문에 매우 싸다. 기업은 개선의 힘이 있기 때문에 항상 나쁘진 않다.”고 대답해줬다. 다시 한번 투자의 대가들은 역발상에 능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대화였다.
일일이 모든 대화를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의 투자 스타일을 요약 평가하자면 좋은 종목을 미리 선별해 놓고 경기가 최악이라 아무도 주식에 관심을 갖지 않을 때 씨를 뿌리듯이 여러 종목을 사들인 뒤 모두가 주식을 원할 때 100% 현금화 하는 사이클을 타는 투자라 칭할 수 있겠다. 벤저민 그레이엄과 버핏으로 이어지는 정통 가치투자를 신봉하는 투자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해보이는 방법일 수 있으나 나는 사와카미 사장은 가치투자자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 이유는 세 가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가격보다 가치에 주목한다는 점, 두 번째는 남들과 반대로 행동한다는 점, 세 번째는 긴 안목으로 투자를 한다는 점이다.
늦깎이의 도전, 비전은 무엇인가?
그의 도전 정신은 젊은 시절 캐피탈 리서치 취업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스위스에서 유학하던 사와카미 사장은 방학 중 아르바이를 구하기 위해 신문에 광고를 냈다. 한 젊은이의 당돌한 행동에 여러 회사들이 관심을 보였고 결국 캐피탈 리서치에 입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였으나 기업분석이 너무 재미있어서 돈을 받지 않을 테니 일하게 해달라고 요청해 하루 15시간씩 근무를 하며 일을 배웠다.
이렇게 그는 상식을 깨는 행동과 저돌적인 추진력을 타고났다. 사와카미 투신을 통해 보여준 행동들도 마찬가지인데 보수적인 일본 투신업계가 보기에는 이단아로 보는 것도 당연하다. 심지어는 올 9월에 감사합니다 라는 뜻의 아리가또 펀드를 출범시켰는데 사와카미 투신에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즉 적극적으로 자기와 같은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되려 경쟁사를 만드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에 대해 사와카미 사장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일본에서 사와카미 투신의 스타일은 배척 당하기 십상이고 실제로도 상당한 견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와 비슷한 철학을 가진 투신사들의 설립을 적극 도우면 기존 세력의 견제에도 버텨낼 수 있고 이 시장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결국 저희에게 이익이 되는 셈이지요.” 참 대단한 양반이다.
그러나 이런 의문점이 든다. 왜 이런 멋진 아이디어를 진작에 실현시키지 않고 안정적인 삶을 원할 법도 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큰 승부수를 던졌을까? 일단 오랜 금융권 생활로 돈을 많이 모아 창업할 실탄이 이제서야 마련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에게 창업 자금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생 빚을 내어 자본금 1억엔을 마련했으며 적자가 날 때마다 또 빚을 내어 메웠다고 대답했다. 그야말로 사업이 망하면 노후도 장담할 수 없는 큰 위험을 직접 부담한 셈이다.
1998년에 일본 투신업계에 큰 변화가 생겼다. 투신사 설립 요건 자본금을 1억엔으로 확 낮춰준 것이다. 사와카미 사장은 이전에는 픽텟 사를 나와 투자자문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변화의 기회를 살려 투신사로 전환하고 투자자문사 고객들을 바탕으로 사와카미 펀드를 출범시켰다. 즉 제도적 변화가 사와카미 사장이 기다리던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자산운용사를 설립하기 위해 자본금 100억원이 필요한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춰 보면 참 부러운 일이다.
그러나 도전의 가장 큰 이유를 들라면 역시 비전 때문이라 결론 낼 수 있다. 그가 꿈꾸는 사와카미 투신은 샐러리맨 전용 펀드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사회에 기여하는 기부형 회사를 추구한다.
이를 위한 첫 번째 계획은 사와카미 펀드의 고객들 중 부자가 나오면 이들을 대상으로 일부 자산들을 모아 수익을 모두 기부하는 펀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돈은 일정 이상 넘어가면 자신의 행복보다는 사회의 행복을 생각해야 한다는 게 그가 가진 이상적인 부자의 모습이다. 실제 픽텟 사에서 유럽의 부자들을 상대할 때 그들의 이런 점에 크게 감명 받았다고 한다.
두 번째 계획은 사와카미 투신이 본격적으로 이익을 내기 시작해 누적된 결손금을 메우는 순간 회사의 순이익을 모두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지분까지도 재단을 만들어 사회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 정도면 그가 늦깎이에 승부수를 던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와카미 투신의 대부분의 지분을 빚을 내어 자신이 직접 보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주주가 있으면 자본주의 논리상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뽑는 관점도 독특하다. 사와카미 투신의 과장 평균 연봉은 40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기존 금융권의 연봉에 비하면 턱없는 금액이다. 금융권이라고 해서 연봉을 많이 주면 기부는 물 건너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신규 채용을 할 때 많은 연봉을 기대하면 절대 자기네 회사에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한다고 한다. 대신 교육에 공을 들인다. 직원의 대부분이 금융권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밤 11시까지 직접 직원들 교육을 담당한다. 말 그대로 돈 보다는 사와카미 투신의 비전을 보고 보람을 위해 일하라는 것이다.
그와의 이틀간의 동행은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으며 운용자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주었다. 단지 투자의 대가를 만났다는 느낌보다는 사회를 걱정할 줄 아는 박애주의자를 만난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그에게 던진 질문은 투자 방법에서 그의 꿈으로 서서히 초점이 바뀌어가기도 했다. 그의 도전은 완료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비록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활동을 하지만 한국의 가치투자자들도 그의 도전을 지켜보고 응원해줬으면 한다. 그가 일본에 몰고 올 건전한 투자의 바람이 현해탄을 건너오길 기대해본다.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일본 투신업계의 이단아. 샐러리맨의 자금만 받기 위해 1조의 기관 자금을 거절한 사나이. 샐러리맨을 위한 단 하나의 펀드만을 운용하는 사와카미 투신의 사와카미 사장에 따라 붙는 수식어들이다.
처음 사와카미 사장의 친구이기도 한 미래에셋투자연구소의 강창희 소장님으로부터 사와카미라는 사람의 얘기를 전해 듣고는 매우 ‘독창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장기투자, 적립식, 샐러리맨, 단 하나의 펀드 등 투자자를 혹하게 할만한 매우 매력적인 키워드들을 담뿍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를 만나보고 나서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제 이틀동안 사와카미 사장의 팬으로서 그와 밀착해 동행하며 느낀 바와 함께 그에 관한 자세한 얘기를 풀어놓을까 한다. 현재 장기적인 안목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투자자, 현재 자산운용에 종사하는 전문가, 향후 자산운용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사와카미 사장은 큰 이정표를 제시해주리라 생각한다.
왜 샐러리맨 전용 펀드인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에서도 가입자의 계층을 아래로 특화한 주식형 펀드란 존재하지 않았다. 즉 기관용 사모펀드라든지 거액 자산가들을 위한 펀드는 있었지만 샐러리맨의 자산 증식을 돕겠다는 펀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계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우선 큰 돈을 모으기 쉽지 않다. 대중의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는 대중적 인지도가 있어야 한다. 우리 머리 속에도 딱히 유명한 일본의 펀드매니저 이름이 떠오르지 않듯이 피터 린치처럼 대중으로부터 큰 자금을 끌만한 매니저가 흔치 않다. 그렇다고 수 많은 사람을 일일이 만나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규모가 큰 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소액을 모으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게 사실이다. 관리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1000억 자금을 맡긴 단 하나의 주체와 1억 자금을 맡긴 1000명의 주체를 비교하면 총금액은 같지만 관리 비용에서 큰 차이가 난다.
사와카미 투신 역시 이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펀드를 직판하다 보니 약 30명의 직원 중 관리 인력이 20명에 이른다. 이들은 펀드 문의를 응대하고 4만5000명의 기존 펀드 가입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데 조그만 운용회사로서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사와카미 사장도 원하는 샐러리맨의 장기성 자금을 모으기 위해 직접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강연회와 설명회를 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와카미 투신은 왜 샐러리맨 전용 펀드를 고집하는가?
아이러니 하게도 사와카미 사장은 사와카미 투신을 창업하기 전 스위스 픽텟의 일본 지사장이었다. 픽텟은 유럽에서 유명한 거액자산가 대상 프라이빗 뱅크다. 그는 이때 유럽의 거액자산가들을 상대하면서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투자와 운용이 얼마나 큰 부를 가져오는지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눈에 일본의 현실은 비참했다. 일본 사람들의 대부분 자산은 은행 예금에 들어있다. 높은 저축율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국민으로 칭송 받은 적도 있었지만 개개인의 효용으로 보면 결과가 너무 초라하다. 현재 일본의 금리가 0.03%이기 때문이다. 사와카미 사장은 이래서는 부자는커녕 노령화 사회에도 대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부 자산이 펀드에 투자될 때도 있지만 항상 주가가 고점을 쳤을 때 뿐이었다. 대형 증권사들은 고객의 수익률보다는 고객들을 붐에 편승 시켜 배를 불리는 관습에 익숙해 있었다.
한 마디로 그는 진정으로 개인들을 위해주는 펀드가 일본에는 단 하나도 없다고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고객에게 좋은 상품을 소개하는 판매사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직접 샐러리맨을 위한 투신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그런 배경이 있는 터라 사와카미 펀드는 세 가지 원칙을 고집한다.
첫째 오로지 샐러리맨의 자금만 받아 들인다. 사와카미 펀드의 성과를 보고 연금 측에서 1조원의 돈을 맡기려 했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정중하게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둘째 사와카미 투신에서는 사와카미 펀드라는 단 하나의 펀드만 운용한다. 자금만 모으려고 고객 취향을 맞추다 보면 백화점식이 되어서 운용자가 집중할 수도 없고 투자자의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자신의 펀드를 피터 린치의 마젤란 펀드에 곧잘 비유하곤 한다. 셋째 판매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판매를 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사와카미 투신에는 투신사 치고는 관리 인력이 많은데 판매를 직접 담당하기 때문이다. 사와카미 사장은 다소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펀드의 성격과 고집하는 원칙을 정확하게 투자자에게 주지시킬 수 있고 수수료도 줄일 수 있다고 얘기한다. 실제로 사와카미 펀드의 수수료는 1%에 불과하다.
이런 원칙을 가지고 98년 출범한 사와카미 펀드는 시작은 초라했지만 현재는 4만 5000명의 가입자에 8000억원의 자산으로 규모 면에서도 일본 유수의 펀드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사와카미 사장은 자신의 경쟁 상대는 예금이라고 얘기한다. 그러기 때문에 시장도 무척 크고 자신의 펀드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단언한다. 적립식이라는 특성을 감안한다면 그의 호언은 결코 꿈이 아니다.
사와카미는 가치투자자인가?
미래에셋투자연구소와 VIP투자자문이 함께 사와카미 사장을 초청한 터라 직접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비행기가 조금 연착 되어서 입국장 앞에서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어떤 체격이 왜소한 노인이 인기척을 했다. “스미마셍. 스미마셍…”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고 있는 노인 바로 그가 사와카미 사장이었다. 분명 사람들이 상상하는 펀드매니저와 투신사 사장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여의도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그에게 투자 스타일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미 그의 저서 ‘불황에도 승리하는 사와카미 투자법’을 읽은 터라 궁금증이 극도로 달해 있었던 상황이었다. 연신 퍼붓는 질문에 그는 천천히 답변을 해주었다. 답변을 하는 그의 모습은 일종의 비장함 마저 느껴질 정도의 진지함이 묻어 있었다.
우선 의문이 들었던 것은 사와카미 사장이 종목을 우선으로 하는 바텀업(bottom up) 식의 투자를 하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좋은 기업이 싸게 거래된다면 장세는 무시하라’는 격언을 추종하는 나로서는 그가 주장하는 경기가 바닥일 때 사서 천정일 때 파는 경기 사이클적 투자를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다.
“저는 저 자신만의 투자 스타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비슷한 사람을 들라면 워렌 버핏입니다. 그는 종목을 중시 여기지만 철저하게 경기가 바닥에 있을 때나 아무도 그 종목에 대한 기대가 없을 때 혹은 주식시장이 폭락할 때 사들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약 300개의 종목을 보유하고 있지만 단 한 종목도 폭락 때 외에 산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종목이라도 싸게 사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에 놀랐는데 하나는 종목의 숫자가 무척 많다는 것이고 아무리 좋은 주식이라도 경기가 천정이며 하나도 남김없이 다 팔아버린다는 부분이었다. 특히 현금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천정에서 현금을 확보하면 다시 바닥으로 갈 때 그만큼 많은 주식을 살 수 있다는 논리다.
그는 젊은 시절 유럽 캐피탈 리서치에서 일했다.(캐피탈 그룹은 얼마 전 내한에 각 그룹사의 오너들을 불러들인 운용사로 잘 알려져 있다) 처음엔 아르바이트로 일했는데 분석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아예 취직을 한 경우라고 한다. 그런 까닭에 종목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 분석을 하지만 경기에 따른 타이밍이라는 부분을 가미한 것이다. 비중이 1%가 넘는 종목이 없을 정도로 그 숫자가 많은 것은 회사의 경영권에 간섭하기도 싫거니와 시장에서 괜한 오해를 사기 싫다는 그의 고집 때문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도요타 자동차 조차도 사와카미 펀드 전체의 1%를 넘지 않는다.
이어서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경기로 타이밍을 잡는다면 경기 예측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걸 잡아내는 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오직 종목 분석만이 인간의 영역이라는 나 자신의 고집이 묻어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는 또한 담담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경기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현재 경기가 바닥인지 천정인지 정도를 아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모두가 비관론에 싸여있고 경기가 어렵다고 난리를 치면 바로 그때가 바닥입니다. 다만 용기가 없어서 경기가 바닥일 때는 주식을 사지 못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더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에 경기는 언젠가는 돌아서기 마련입니다. 다만 저는 펀드매니저가 아주 잘 사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렇게 되면 서민 경기와 멀어지고 현재가 경기 불황인지 호황인지를 가늠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여전히 경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쪽에 100%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경험을 통해 나름의 포착 방법이 있으리라 여기기도 했고 일본이 현재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는 특수성이 어느 정도는 반영되어 있는 논리라 생각했다. 나도 종목 질문을 받으면 부담스럽다는 걸 알지만 어차피 시장이 다르다는 생각에 살짝 종목을 물어봤는데 닛폰 스틸(Nippon Steel)의 예를 들어줬다. 내가 바로 “포스코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고 이제 일본의 철강은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냐”고 받아 쳤더니 “그렇기 때문에 매우 싸다. 기업은 개선의 힘이 있기 때문에 항상 나쁘진 않다.”고 대답해줬다. 다시 한번 투자의 대가들은 역발상에 능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대화였다.
일일이 모든 대화를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의 투자 스타일을 요약 평가하자면 좋은 종목을 미리 선별해 놓고 경기가 최악이라 아무도 주식에 관심을 갖지 않을 때 씨를 뿌리듯이 여러 종목을 사들인 뒤 모두가 주식을 원할 때 100% 현금화 하는 사이클을 타는 투자라 칭할 수 있겠다. 벤저민 그레이엄과 버핏으로 이어지는 정통 가치투자를 신봉하는 투자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해보이는 방법일 수 있으나 나는 사와카미 사장은 가치투자자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 이유는 세 가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가격보다 가치에 주목한다는 점, 두 번째는 남들과 반대로 행동한다는 점, 세 번째는 긴 안목으로 투자를 한다는 점이다.
늦깎이의 도전, 비전은 무엇인가?
그의 도전 정신은 젊은 시절 캐피탈 리서치 취업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스위스에서 유학하던 사와카미 사장은 방학 중 아르바이를 구하기 위해 신문에 광고를 냈다. 한 젊은이의 당돌한 행동에 여러 회사들이 관심을 보였고 결국 캐피탈 리서치에 입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였으나 기업분석이 너무 재미있어서 돈을 받지 않을 테니 일하게 해달라고 요청해 하루 15시간씩 근무를 하며 일을 배웠다.
이렇게 그는 상식을 깨는 행동과 저돌적인 추진력을 타고났다. 사와카미 투신을 통해 보여준 행동들도 마찬가지인데 보수적인 일본 투신업계가 보기에는 이단아로 보는 것도 당연하다. 심지어는 올 9월에 감사합니다 라는 뜻의 아리가또 펀드를 출범시켰는데 사와카미 투신에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즉 적극적으로 자기와 같은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되려 경쟁사를 만드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에 대해 사와카미 사장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일본에서 사와카미 투신의 스타일은 배척 당하기 십상이고 실제로도 상당한 견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와 비슷한 철학을 가진 투신사들의 설립을 적극 도우면 기존 세력의 견제에도 버텨낼 수 있고 이 시장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결국 저희에게 이익이 되는 셈이지요.” 참 대단한 양반이다.
그러나 이런 의문점이 든다. 왜 이런 멋진 아이디어를 진작에 실현시키지 않고 안정적인 삶을 원할 법도 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큰 승부수를 던졌을까? 일단 오랜 금융권 생활로 돈을 많이 모아 창업할 실탄이 이제서야 마련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에게 창업 자금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생 빚을 내어 자본금 1억엔을 마련했으며 적자가 날 때마다 또 빚을 내어 메웠다고 대답했다. 그야말로 사업이 망하면 노후도 장담할 수 없는 큰 위험을 직접 부담한 셈이다.
1998년에 일본 투신업계에 큰 변화가 생겼다. 투신사 설립 요건 자본금을 1억엔으로 확 낮춰준 것이다. 사와카미 사장은 이전에는 픽텟 사를 나와 투자자문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변화의 기회를 살려 투신사로 전환하고 투자자문사 고객들을 바탕으로 사와카미 펀드를 출범시켰다. 즉 제도적 변화가 사와카미 사장이 기다리던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자산운용사를 설립하기 위해 자본금 100억원이 필요한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춰 보면 참 부러운 일이다.
그러나 도전의 가장 큰 이유를 들라면 역시 비전 때문이라 결론 낼 수 있다. 그가 꿈꾸는 사와카미 투신은 샐러리맨 전용 펀드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사회에 기여하는 기부형 회사를 추구한다.
이를 위한 첫 번째 계획은 사와카미 펀드의 고객들 중 부자가 나오면 이들을 대상으로 일부 자산들을 모아 수익을 모두 기부하는 펀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돈은 일정 이상 넘어가면 자신의 행복보다는 사회의 행복을 생각해야 한다는 게 그가 가진 이상적인 부자의 모습이다. 실제 픽텟 사에서 유럽의 부자들을 상대할 때 그들의 이런 점에 크게 감명 받았다고 한다.
두 번째 계획은 사와카미 투신이 본격적으로 이익을 내기 시작해 누적된 결손금을 메우는 순간 회사의 순이익을 모두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지분까지도 재단을 만들어 사회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 정도면 그가 늦깎이에 승부수를 던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와카미 투신의 대부분의 지분을 빚을 내어 자신이 직접 보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주주가 있으면 자본주의 논리상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뽑는 관점도 독특하다. 사와카미 투신의 과장 평균 연봉은 40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기존 금융권의 연봉에 비하면 턱없는 금액이다. 금융권이라고 해서 연봉을 많이 주면 기부는 물 건너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신규 채용을 할 때 많은 연봉을 기대하면 절대 자기네 회사에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한다고 한다. 대신 교육에 공을 들인다. 직원의 대부분이 금융권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밤 11시까지 직접 직원들 교육을 담당한다. 말 그대로 돈 보다는 사와카미 투신의 비전을 보고 보람을 위해 일하라는 것이다.
그와의 이틀간의 동행은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으며 운용자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주었다. 단지 투자의 대가를 만났다는 느낌보다는 사회를 걱정할 줄 아는 박애주의자를 만난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그에게 던진 질문은 투자 방법에서 그의 꿈으로 서서히 초점이 바뀌어가기도 했다. 그의 도전은 완료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비록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활동을 하지만 한국의 가치투자자들도 그의 도전을 지켜보고 응원해줬으면 한다. 그가 일본에 몰고 올 건전한 투자의 바람이 현해탄을 건너오길 기대해본다.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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