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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자자, 구세주 vs 해적?

외국인의 주식투자 비중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은 올들어 거래소에서만 14조원이 넘는 주식을 순매수했다. 이 같은 순매수 규모는 증시가 외국인에 개방된 이후 연간 기준으로 가장 큰 규모이다. 이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은 어느새 지난 6월말 기준으로 43%를 넘어섰다.

금융의 꽃인 시중은행의 경우부터 살펴보자. 8개 중 3군데의 경영권이 이미 외국자본의 손으로 넘어갔고, 나머지 은행들도 외국인 지분율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또한 외국인 지분율이 국내 최대주주 지분율을 상회하는 상장사만 40개가 넘어서고, 국제경쟁력이 높고, 독점력을 갖춘 초우량기업들이 대부분이다. SK의 현 경영진에 문제를 제기했던 소버린 사태는 이 같은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사례이다.

시장을 개방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를 불러들인 것은 외자유치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 선진금융기법 전수, 경쟁을 통한 국제 경쟁력 제고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같은 목적과는 달리 단기적 차익을 노린 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더구나 우리 나라 기업들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주가가 올라가도 내국인들의 지분율이 그리 크지 않아서 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지적도 많다. 기업은 호황이지만 평범한 시민들의 주머니에는 주식이 없어서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와는 반대로 외국인이 그나마 우리 나라의 주식들을 많이 샀기 때문에 주식시장의 안전판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외국인이 한국 주식시장에 주주 중심주의 경영을 뿌리내리게 했다는 평가도 많다. 어떤 시각이 맞는 것일까? 지킬 박사는 외국인 주식 투자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하이드는 외국인 주식 투자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이드 : 외국인들이 공격적으로 우리 나라 주식을 사고 있네. 외국인들은 자기들이 투자한 기업에 고배당, 자사주 매입 소각, 유상감자 등을 요구하면서 자기네 나라로 돈을 빼돌리고 있네.

이렇게 된다면 우리 나라 기업들은 신규 투자를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셈이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아야 하는 셈이지. 그래서 난 외국인들이 지나치게 우리 나라 주식을 갖는 것에 반대하네.

지킬 : 글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고배당, 자사주 매입 소각 등은 외국인들 뿐만 아니라 국내 주주들에게 도움이 되는 주주정책이네. 주주가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시세차익도 있지만,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소각도 매우 중요한 방법이네. 그것이 기업가치를 실제로 상승시킬 수도 있고.

오히려 우리 나라 기업들은 지금까지 주주를 배려하는데 너무 인색한 것이 사실이었네. 지금은 외국인 주주가 늘면서 선진국 수준에 맞게 주주정책이 개선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할걸세.

하이드 : 자네는 외국인 주식 투자의 폐해를 너무 안일한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네. 아니, 유상감자까지 해가면서 기업에 유보된 자금을 빼가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건가?

당기 순이익 중에서 일부를 배당이라고 가져가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네. 하지만 기존에 회사에 쌓아놨던 이익유보금까지 빼가는 것은 회사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행위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지킬 : 음…. 자네는 외국인 주주의 폐해를 침소봉대하는 경향이 있구만. 아직 유상감자까지 해가면서 돈을 빼가는 외국인 주주는 그렇게 많지 않네.

우리나라는 경제성장률이 3~5%정도밖에 안되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네. 여기에 비해 우리나라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떨어지는 세계 최저 수준이고, 유보된 이익도 많네. 외국인들이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을 요구하고, 때때로 유상감자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기업경영의 효율성을 늘리고 투자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네.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나라의 경우에는 그런 정책을 더 요구한다는 말이지.

투자계획이 없거나 투자실익이 없다고 판단되는 상태에서 고용창출을 위해 투자를 한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기업은 ROE를 높여서 주주에게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된다고 생각하네.

하이드 : 자네 주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지나치게 등한시하는 견해라고 생각하네. 기업에서 돈을 빼가면 아무래도 기업활동을 위축될 수 밖에 없네. 부채를 쓰면 된다고 하지만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차곡차곡 쌓아놨던 이익유보금은 배당해버리고 돈을 빌려서 쓰는 게 기분 좋은 일일 것 같은가?

기업은 분명히 고용을 창출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할 의무가 있네. 만약 단기적인 시각에서 기업의 유보자금을 다 빼간다면 기업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당장 외국계에게 지분이 많이 넘어간 시중 은행들을 보세. 선진 금융 기법을 들여오기는커녕 손쉽게 돈을 벌 수 있고 리스크가 적은 가계대출에 집중하고 있지 않나. 기업 금융이나 서민의 생활안정과 같은 금융기관의 공공적 기능에는 무관심하면서 수수료 인상을 통해 수익 극대화에만 열을 올리고 있네. 그로 인한 불편과 투자 위축은 우리가 고스란히 감소해야겠지.

더구나 론스타,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펀드나 투자은행 등은 어떻게 하면 수년 안에 이 주식을 비싸게 팔 것인가만을 고민해왔고, 실제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면서 주식을 판 경우도 있네. 이게 과연 외국인에게 주식 투자를 개방한 취지였나?

지킬 : 자네 말도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이 들어와서 증시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들이 너무 무시되고 있는 측면이 있네.

생각을 해보세. 만약 IMF 당시에 그 은행의 주식을 외국계 투자자들이 사지 않았다면 누가 샀을 것인가? 달러가 부족하고, 해외 신인도가 급격하게 떨어져서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말이지.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주식을 샀네. 그리고 오히려 3~5년 정도 꾸준히 장기 투자를 했지. 국내 기관이나 개인 투자자 중 누가 그렇게 큰 자금을 장기투자하는 경우가 있는가? 위험을 감수한 만큼 적절히 이익을 올린 셈이지.

만약 그렇게 이익을 올릴 수 없다면 누가 투자를 하겠나. 물에 빠진 아이를 건져주니까 모자는 어디 갔느냐고 따지는 할머니 이야기가 생각나는군.

또 최근 2~3년 동안 한국에서 주식을 사들인 외국인의 경우를 생각해보세나. 그동안 국내 기관 투자자들과 개인들은 한국 주식을 팔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네. 주식 혐오증에 걸린 경우도 있었고, 정치불안으로 인해 한국 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사람도 있었고, 부동산 투자를 위해 주식을 처분한 사람들도 있었네.

외국인들은 그 주식을 고스란히 받았네. 외국인이 사들인 주식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국내 기관들과 개인이 넘긴 거라네. 막상 그들이 내던지는 주식을 받아줄때는 주식시장에 안전판이고, 구세주처럼 떠받들다가 이제 배당금이 나가니까 비판을 하는 것은 왠지 앞뒤가 안맞다는 생각이 드네.

하이드 : 난 외국인의 주식투자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법적인 제도를 정비해서도 막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네. 외국인이 지나치게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결국 경제주권이 넘어가는 셈이네. 우리 국민이 만든 기업이 외국인들 때문에 우리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없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어디있겠나.

지킬 : 난 외국인 주식투자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21세기판 쇄국주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네. 외국인 주식투자를 막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나라의 금융 자본이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분석해서 주식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네.

경제활동에 있어 국경이 거의 무의미해진 마당에 투자 규제가 왠 말인가? 차라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게. 국내 금융 자본과 투자자들이 외국인들보다 더 뛰어난 분석력을 기르고, 더 오랜 기간 장기투자를 하고,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서 기업경영을 감시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질 필요가 있네. 쇄국주의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우매한 정책에 불과하다네.

김민국 / kim@vip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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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 그리샴
    좋은 글입니다. 올해에만 외국인이 산 주식 14조원,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국내기관과 개인이 넘겼다는 부분이 눈을 끕니다.
    우리나라 신문은 왜 그렇게 한국 경제비관론과 경제 망국론을 많이 실을까요. 그리고 연기금과 은행, 여러 금융권은 왜 그렇게 알짜 주식을 내다 팔기에 혈안이 되었을까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 입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비관론이라는 알약을 먹고 출근하는 것 같습니다.
    2004.10/20 21:08 답글쓰기
  • 그리샴
    2004.10/2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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