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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자기혁신' 애니콜 신화

골리앗을 이긴 다윗

한 시대를 풍미하는 소위 먹어주는 브랜드라는 것이 있다. 93년 엑스포에 갔을 때 아버지가 신속한 연락을 위해 허리춤에 채워주신 핸드폰은 모토롤라 TAC 시리즈였다. 지금 보면 폴더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커다란 크기와 무게였지만 당시에는 모토롤라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브랜드였다. 아마도 당시 삼성 제품을 차고 다녔다면 그렇게까지 자랑스럽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삼성전자는 삐삐 시장에서조차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94년까지만 해도 이와 같은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텔레비전과 냉장고면 모를까 삼성전자와 정보통신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당시 국내 핸드폰 시장은 모토롤라가 시장점유율 70%를 점유하고 있었고 해외에서는 노키아가 그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소비자의 머리 속에 삼성전자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전벽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시장 판도가 바뀌었다. 1분기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핸드폰 브랜드인 애니콜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46%다. 과거 절대 강자였던 모토롤라를 완전히 밀어내버렸다. 그 위세는 국내 시장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가트너에서 조사한 애니콜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12.5%로 노키아, 모토롤라에 이어 3위다. 모토롤라에 4% 정도 뒤진 수치다. 심지어 노키아의 본산인 핀란드에서의 점유율도 5%에 이른다. 애니콜은 50개 국가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애니콜의 브랜드 가치는 현재 30억 달러(약 3조3천억)로 추정된다. 이제 사람들은 Anycall의 Any라는 접두어를 보고 ‘어디서나 잘 터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애니콜은 누구나 선호하는 고가 핸드폰인 애니콜일 뿐이다. 도대체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사건이 벌어진 것일까?


애니콜, 신화를 벗다

95년 애니콜이 출시되었을 때 내세운 광고문구는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무선통신서비스가 아날로그로 이뤄지던 때고 기지국이 완전히 구비되지 않아 핸드폰 구매에 있어 가장 중요시 되는 요소가 통화품질이었다. 애니콜은 이 부분을 노려 한국 소비자의 머리 속을 파고 들어갔다. 산이 많다는 한국 사정에 기대 다소 감성에 호소한 감이 없지 않지만 SH-700 제품의 완성도가 한 몫 하면서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었다. 마케팅 전략이 주효하면서 입지를 넓힌 건 사실이지만 애니콜의 신화에는 이보다 좀더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했다.

먼저 애니콜의 성공 요인으로는 자기 부정을 통한 진보를 들 수 있다. 기술에 기반한 기업은 끊임없이 기술을 발전시켜야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기 자리가 너무 편하면 이런 숙명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국내에서 모토롤라가 1위를 빼앗긴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굳이 새로운 모델을 내놓지 않더라도 스타택이 잘 나가는 마당에 새로운 모델을 내놓아 캐쉬카우를 죽이지 않으려고 하는 소극적 태도를 취하다 보니 애니콜이 그 캐쉬카우를 죽여버린 꼴이 되어 버렸다. 반면 삼성전자는 D램 사업을 하며 터득한 기술기업의 숙명을 그대로 받아들여 1위가 되고 나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다양한 디자인, 부가 기능 추가 등을 통해 기존 제품을 뛰어 넘는 물건을 만들어 냈고 이는 높은 판매량과 브랜드 인지도로 연결되었다.

공부 많이 하는 학생이 꼭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아닌 것처럼 꼭 자기 부정을 하며 진보만 한다고 해서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기술 진보에만 집착하다가 사라져 간 많은 기업들을 기억하고 있다. 노력도 정확한 방향성을 가질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두 가지 면에서 올바른 방향을 타고 나갔다.

첫째로 고가 핸드폰 시장에 집중해 애니콜을 고가 브랜드화 하는데 주력했다. 소비자에게 고가로 인식되는 것은 모든 기업이 바라는 바지만 그 과정은 매우 험난하다. 우선 고가에 걸맞는 기술력이 받쳐줘야 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매출을 증가시키기 위한 밀어내기 장사를 하면 안 된다. 삼성전자는 어려운 길을 택했고 결국 그 길이 맞았음이 입증되고 있다.

애니콜이 나올 당시만 해도 핸드폰은 만드는 것 자체가 기술장벽이었지만 현재는 업체간 기술 격차가 거의 없어져 버렸다. 국내만 해도 LG전자, 팬택앤큐리텔, VK 등이 있고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전자회사들이 핸드폰을 제조한다. 심지어는 닝보버드, 하이얼 등 중국업체들까지 핸드폰 시장에 가담하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브랜드 싸움인데 만약 애니콜이 밀어내기 저가 매출을 일삼았다면 현재의 경쟁에서 지금의 위치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 애니콜이 높은 값에도 잘 팔려나가는 이유는 고가 판매라는 쉽지 않은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소비자의 필요를 외면한 채 기술 개발에만 매달리는 기술기업의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 노키아가 참패를 맛 본 ‘엔게이지’라는 핸드폰이 있다. 핸드폰보다는 게임기에 가까운 모양새인데 3D 게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력을 결집했지만 철저히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소비자의 필요를 너무 앞서간 기술기업의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반면 애니콜의 역사를 보면 그 시절에 소비자가 가장 원하는 부가 서비스를 포착해 완벽하게 해결함으로써 시장지위를 유지한 것을 알 수 있다. 문자메세지를 쉽게 입력할 수 있는 천지인 한글, 실제음에 가까운 벨소리, TFT-LCD를 장착한 컬러폰, 밖에서도 핸드폰 상태를 알 수 있는 듀얼폴더, 카메라폰, 캠코더폰 등이 소비자의 필요를 먼저 인식하고 기술은 단지 해결 방법으로 사용된 대표적인 사례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잘 했다고 회사에서 높은 월급 주는 건 아니듯이 높은 기술력이 있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애니콜을 키워냈다

삼성전자는 대단한 회사다. 베스트 브랜드에서 다룬 농심이나 하이트맥주도 대단한 회사지만 삼성전자의 ‘대단하다’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매우 어려운 분야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애니콜에서 이룬 성과는 단지 삼성전자만의 공이 아니다. 혹자는 삼성전자가 해외기업이었다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지만 애니콜이 이만큼 온 데에는 한국적 상황도 한 몫 거들었다.

먼저 한국의 소비자가 애니콜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제품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소비자들은 핸드폰과 무선통신 소비를 왕성하게 하며 게다가 초기 기술이 탑재된 제품을 기꺼이 써준다. 한국 소비자의 핸드폰 사랑은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나라 핸드폰 사용인구는 어림잡아 3600만명 정도다. 이런 충성스러운 소비자들을 상대로 상품성을 검증하고 마케팅 자료를 모으니 세계에 나가서도 꿀릴 게 없다. 일례로 해외 핸드폰 업체들이 미국 사람들은 손이 커서 벽돌처럼 커다란 핸드폰을 좋아할 것이라고 속단한 데 비해 국내에서 이미 경박단소한 모델의 우위성을 경험한 삼성전자는 편견을 깨고 작고 앙증맞은 모델로 미국에서 히트했다.

삼성전자의 핸드폰 협력업체들도 애니콜 신화에 일조했다. 노키아 등 해외업체들은 글로벌소싱이라 하여 부품을 세계 전역의 부품업체들로부터 조달한다. 이 방법은 제조원가를 낮출 수 있지만 발 빠른 대응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역설적으로 완성업체와 부품업체 간의 뿌리 깊은 갑을 관계를 바탕으로 한달에 무려 5~6개의 신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디자인과 방향을 제시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납기일을 맞추는 충성스러운 협력업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삼성전자는 베스트스톡인가

향후에도 삼성전자가 애니콜 신화를 이어나가는지를 알아보려면 앞에서 언급한 성공 비결을 꾸준히 유지하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다. 자기 부정에 소홀 한다거나 갑자기 소비자는 조작할 수도 없는 높은 기술을 탑재한다면 부정적 신호로 인식해야 한다. 만약 계속 그러하다면 삼성전자는 베스트스톡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삼성전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단한 기업이지만 애니콜만 보고 베스트스톡으로 꼽기에는 무리가 있다. 핸드폰 부문을 포함한 정보통신 사업부의 삼성전자에 대한 매출기여도는 33.7%다. 나머지 67%는 반도체, LCD, 디지털미디어, 생활가전으로 이뤄져 있다. 문제는 반도체와 LCD사업 부문이다.

핸드폰을 포함해 모니터, 컴퓨터, 가전 등은 소비자가 구매를 할 때 브랜드를 중요하게 보는 제품들이다. 이들은 브랜드 가치가 유지된다면 꾸준한 매출과 적정 마진이 가능하다. 그러나 반도체와 LCD는 브랜드에 의해 가격이 매겨진다기보다는 전세계적인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애니콜 카메라폰이 60만원 하다가 한달 뒤 10만원이 될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D램 가격이 10불 하다가 한달 뒤 1불이 될 수는 있다. 그만큼 가격 변동이 심하고 이에 따라 매출과 이익이 출렁거릴 수 있단 얘기다.

가치투자자 입장에서는 애니콜만 보고 삼성전자를 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마치 LG화학이 분할되기 전 사업부로 있던 LG생활건강만 보고 LG화학 주식을 살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LG생활건강이 만드는 치약, 비누, 샴푸, 화장품 등은 반복구매가 가능한 브랜드형 상품이었지만 LG화학의 유화 부문은 D램과 마찬가지로 수요공급 법칙으로 결정된 톤당 가격에 따라 이익이 출렁거리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D램과 LCD가 전세계적인 독점 상태로 접어들어 수요공급의 영향을 덜 받는 사업분야가 되면 애니콜의 가치가 진정으로 빛나게 되고 삼성전자 주식이 진정한 베스트 스톡으로 거듭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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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 Accuvision

    애니콜도 SK텔레콤 못지 않은 재미있는 성장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SK텔레콤의 성장스토리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지
    애니콜신화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조금 빈약해 보이네요
    아마 분량에 제약이 있어서 그렇겠죠

    댓글이 없어서 댓글을 달아봤습니다.
    그리고
    준철님의 글들이 거의 대부분 너무나 잘 써서
    그냥
    억지 트집 한번 잡아봤습니다. ^^;

    2004.12/25 23:49 답글쓰기
  • Accuvision
    2004.12/2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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