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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돈!돈!]무자비한 돈
2000년 7월 주간조선의 <검은 돈 검은 손 사채(私債)>라는 기사가 필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다. 사채는 ‘써서는 안 될 돈’이다.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 사채는 건재한가? “하다하다 안될 때 신용대출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 사채를 써본 사람들의 공통된 말이다.
…서울 중곡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동수(66년생)씨는 왼쪽 눈을 안대로 가린 채 인터뷰에 응했다. 외환위기 이후 실직당한 뒤 이씨는 아내의 출산비용과 급한 생활비 때문에 400만원을 빌렸다. 담보가 없어 일주일에 10%의 이자가 붙는 조건이었다. 이자를 갚지 못해 일주일 단위로 해결사들에게 시달렸고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게다가 출장비, 손해보상 등 갖은 명목이 붙어 빚은 1달 만에 100%가 늘어 800만원이 되었다. 해결사들은 산후조리중인 아내까지 협박하고, 이씨의 처가를 찾아 험한 말로 압박했다. 6개월 넘게 괴롭힘을 당하는 동안 빚이 늘어 2000만원이 넘어서자 해결사가 이씨에게 장기매각을 요구했다. 결국 왼쪽 안구를 포기한다는 각서에 도장을 찍었다. 병원 문에 들어서는 순간 이씨는 그동안 수백 번 해왔던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 없어졌다고 담담히 말했다.…(<검은 돈 검은 손 사채(私債)>, 주간조선 2000년 7월)
2008년 11월 사채업자의 농간에 빠져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한 딸을 죽이고 아버지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대학생 딸이 친구와 쇼핑몰을 하려고 빌린 300만원이 1년 반 만에 6700만원으로 불어났다. 이른바 꺾기수법(갚지 못한 이자를 원금에 포함)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갚아보려고 사채업자의 강요로 성매매로 내몰렸던 딸과 그 아버지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었다.
“정해진 날까지 150만원을 못 갚으면 내 몸을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21세 처녀가 ‘급전대출’ 명함을 보고 찾아오자 사채업자는 ‘신체포기각서’를 내밀었다. 직장도 신용도 없으니 서명하라고 했다. 그녀는 급한 마음에 월 100% 이자를 물기로 하고 2달간 150만원을 빌렸다. 돈을 못 갚자 사채업자는 각서를 들이대며 그녀를 충청도 티켓다방에 넘겼다. 흡혈귀(吸血鬼)란 바로 이들 사채업자들을 두고 한 말이다. 사채가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 되는 것은 이자가 비싼 탓도 있지만 꺾기(재대출) 탓이 크다.
사채업자들은 전주(錢主)를 모아 사업을 한다. 전주는 1억~2억원에서 10억원 이상에 이르기까지 주주형식으로 돈을 위탁한다. 전주로부터 모은 자금을 사채업자가 굴려 얻은 이익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전주의 돈은 대부분 탈세나 뇌물 등 불법으로 조성된 자금이다.
특히 과거 고위 정치인이나 공무원들로부터 은밀히 흘러나온 자금이 사채시장으로 흘러든다. 전주의 직업은 다양하지만 대개는 큰돈을 가진 부동산업자, 건설사업자, 졸부 등이다.
6공의 황태자 박철언(42년생)이 무용과 여교수(61년생)에게 178억원을 맡겨 관리하다가 돈을 떼인 사건이 있었다. 2008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그 돈이 1980년 타계한 선친의 유산 등 23억원을 사채시장에서 월 2~3.5부로 굴려 키운 것이라고 둘러댔다. 그는 이 시기에 서울지검 검사, 대통령 정무비서관, 안기부 특보, 청와대 정책보좌관, 정무장관을 지냈다. 2007년 한 현직검사가 사채업자에게 1억원을 맡기고 매달 250만원씩 2년 7개월 동안 8000만원을 이익배당금으로 받고 경고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자율을 최고 연 30%로 제한한 이자제한법이 2007년 7월부터 시행됐다. 법을 알지 못해 부당하게 고리사채 피해를 보거나 불법적 빚 독촉에 시달리는 국민이 없게 하기 위해 법무부는 <알기 쉬운 이자제한법>의 해설서를 지방자치단체, 검찰청, 법원 민원실 등에 배포했다. 무등록 대부업자의 최고이자율은 ‘이자제한법’에 따라 연 30%지만, 등록 대부업자는 ‘대부업법’에 따라 연 39%까지 이자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2007년 대법원은 “돈을 빌려주는 쪽과 돈을 빌리는 쪽의 경제력 차이로 인해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한도를 초과해 현저하게 높은 이자율을 약정한 경우, 이는 돈을 빌려준 쪽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어서 무효이며, 이미 지급한 이자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한편으로는 채무자들의 책임도 크다. 1997년 이후 노숙자, 파산한 기업가들, 채무자 등 숱한 사람들이 외환위기를 탓하지만, 그 뿌리는 각자 자기관리의 부실이다. 평소에 검약(儉約)이라는 미덕을 외면한 결과이며 자업자득인 면도 크다. 사람도 정글에 사는 동물과 다름이 없다. 각자의 책임 하에 치열하게 삶을 살아야 한다.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를 새기며 살아야 한다. 없는 돈이지만 저축을 하여 비가 올 때를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신(神)은 달콤한 마시멜로를 아껴먹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낸다.
필자는 대명천지 법치국가에서 돈 몇 푼에 눈알을 빼주는 무지와 어리석음에 혀를 찼다. 동네 파출소만 찾아가도 보호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해결사들의 협박에 굴복하는 무지몽매가 충격이었다. 아직도 이 사회는 계몽이 필요한 미개사회다.
글 / 임석민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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