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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워렌 버핏은 야누스일까?
지난 29일, 워렌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에 대해 ‘또 다른 진실’이 있다고 주장한 한 경제신문의 기명 칼럼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워런 버핏, 또다른 진실) 이 칼럼은 ‘버핏 회장의 거액기부는 세금 없는 재산 상속’이고, ‘버핏 회장은 과대평가된 증권투기꾼’이라고 정의했다.
이 칼럼의 주장과 팩트를 하나씩 짚어보자.
1. 버핏 회장의 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는 50개가 넘는 다양한 분야의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거느린 문어발 그룹이다?
: 보험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가 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문어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버핏 회장의 투자 지주회사 역할도 겸하고 있다. 버핏 회장이 밝힌 버크셔 헤서웨이의 기업 인수 기준은 이렇다.
▶대규모 기업(세전이익이 최소 7500만달러) ▶지속적 이익 창출 능력을 보유한 기업 ▶부채가 없고 ROE(자기자본이익률)가 높은 기업 ▶적절한 경영능력을 지닌 기업(우리는 경영을 제공할 수 없다)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을 지닌 기업(신기술 사업은 우리가 이해 못함) ▶적당한 인수 가격
인수 기준을 보면 버크셔 해서웨이는 문어발은 문어발이지만 버핏 회장이 펀드 매니저로 있는 ‘보험 사업도 하는 뮤추얼 펀드’에 가까워 보인다. 뮤추얼 펀드가 수십 가지 종목을 투자했다고 비난받아야 할까?
2.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처럼 창업하지 않고 M&A로 현재의 버크셔 해서웨이를 일군 버핏 회장은 투기꾼일 뿐 기업가가 아니다?
: 창업 없이 인수만 했다고 해서 기업가가 아닌 투기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창업과 M&A는 둘 다 기업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이나 삼성그룹도 창업 후 M&A를 병행해 왔다. 단, M&A를 반복하며 인수했던 기업을 자주 팔아치우고 차익만 얻고 만다면 투기꾼이라고 비난할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 버핏 회장은 그러나 상장기업인 버크셔 해서웨이를 우량한 기업으로 키웠다. 기업 가치를 반영하는 거울인 주가로 그의 성과를 들여다보자.
버크셔 해서웨이 홈페이지에 공개된 사업보고서 앞부분에는 항상 S&P500과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 상승률이 비교되어 나온다. (S&P500은 미국증시의 대형 우량주 500 종목을 지수화 한 것이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2010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1965년부터 2010년까지 연 평균 상승률의 경우 버크셔 해서웨이는 20.2%, S&P500은 9.4%다. 전체 기간의 누적 상승률 간격은 더 넓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누적 상승률은 490,409%, 같은 기간 S&P500의 누적 상승률은 6,262%였다. 총 46년의 기간 동안 버크셔 해서웨이가 S&P500보다 연간 상승률이 낮았던 해는 8번에 불과하다.
3.보험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는 상속세 회피용 보험상품을 많이 팔고, 버핏이 인수한 회사들 중에서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2세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매물로 내놓은 경우가 적지 않으니, 버핏 회장이 상속세 폐지를 반대한 것은 이런 이유다?
: 종신보험 등 장기보험은 보험사들의 주력상품이 된지 오래다. 또한 종신보험이 부자들의 절세용 상속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상속세 자금 마련을 위해 시장에 나온 매물기업을 많이 인수했다는 것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서도 상속세를 내기 위해 2세가 부친이 창업한 기업을 M&A 시장에 내놓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버핏 회장이 이런 비즈니스 환경 덕분에 유리한 측면이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버핏 회장이 이런 이유로 상속세 폐지를 반대한다고 보는 것은 침소봉대다.
4. 버핏 회장은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해 기부했다?
: 버핏 회장은 지난 2006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370억달러(약 35조원), 버핏의 자녀들이 운영하는 자선재단과 작고한 전처의 이름을 딴 수전 톰슨 버핏 재단 등에 총 64억달러를 기부했다. 버핏 회장은 가족이 아닌 제3자의 자선재단에 대부분의 재산을 기부했다. 그의 기부가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한 편법이었다면 위 기부금의 비중을 거꾸로 했어야 맞을 것이다.
칼럼은 버핏 회장이 자선재단을 운영하는 자신의 아들에게 쓴 편지와 거액을 기부한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쓴 기부약정서에 ‘내가 재단에 기부하는 재산이 상속세나 증여세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법적인 조치를 다하라’고 쓴 내용을 버핏 회장이 상속세를 피하려고 한다는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기부금은 말 그대로 기부된 돈이어서 상속이나 증여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상속세와 증여세의 대상도 아니다.
5. 정주영 회장이나 이병철 회장의 40년 투자 수익률이 버핏을 간단히 제압하는 만큼 버핏은 역사적인 투자자가 아니다?
: 사업의 성과와 투자의 성과는 서로 다른 전제와 활동으로 얻어진 결과다. 이를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사업의 성과는 사업의 성과와, 투자의 성과는 투자의 성과와 비교해야 한다.
※ 버핏과 상속세 논란
논란이 된 칼럼의 필자는 지난 2006년 7월에도 같은 신문에 이번 칼럼과 매우 비슷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다산칼럼]버핏, 결국 상속세를 피해가다 - 2006년 7월4일) 상속세와 관련해 버핏 회장을 비난한 사람이 이 필자만은 아니다.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윈 퓰러 이사장도 2006년 7월에 헤리티지재단 웹사이트를 통해 이와 비슷한 논리로 버핏 회장을 비난했다.
“버핏 회장이 재산을 기부한 이유가 자선 한 가지만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상속세 회피가 또 다른 이유다. 버핏 회장이 ‘나의 기부가 과세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했는데, 아이로니컬하게도 버핏 회장은 상속세를 회피하면서 상속세를 옹호하고 있다.”(에드윈 퓰러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2006년 6~7월 무렵, 이런 논란이 한미 양국에서 함께 불거진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버핏 회장의 기부와 한국·미국의 상속세 폐지·완화 추진 움직임이 그 무렵에 맞물렸기 때문이다.
버핏 회장이 거액의 기부 의사를 밝힌 것은 2006년 6월26일. 이날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기부 약정식을 연 버핏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부부가 운영하는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370억달러(약 35조원), 그리고 버핏의 3남매가 각각 운영하는 3개 자선 재단, 작고한 전처를 기리기 위한 수전 톰슨 버핏 재단에 총 64억달러를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약정식에 이어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버핏 회장은 “상속 폐지 시도는 혐오스러운 행위이며, 상속세를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상속세는 매우 공정한 세금이며, 기회 균등의 이상을 유지하고 부유층에게 특혜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속세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상속세 폐지를 추진 중이었다. 보수적인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이 공개적으로 버핏 회장을 비난한 것도 그런 이유다.
2006년에 한국에서는 오너 2·3세들의 경영권 세습을 위한 편법적인 지분 증여 등이 문제가 되어 현대·기아차, 삼성그룹 등이 검찰 수사를 받았는데, 재벌그룹 모임인 전경련과 대한상의 등에서는 이를 기회로 상속세제 개편을 위한 여론몰이가 한창이었다. 그러던 중 버핏 회장이 거액의 기부 소식이 알려지면서 상속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이들의 여론몰이는 주춤해졌다.
철강왕에서 존경받는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던 미국의 철강재벌 앤드루 카네기는 “죽은 뒤에도 부자인 것처럼 부끄러운 일은 없다”고 말했다. 모든 부자들에게 재산의 95%를 사회에 환원한 카네기나, 85%를 기부한 버핏 회장이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또한 모든 이들이 이런 자선가들을 천사라고 칭송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기부와 자선이라는 아름다운 행보 자체는 존중하는 매너를 갖출 필요는 있을 것 같다.
한국투자교육연구소 이혜경 연구원(vixen@i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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