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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피티즘] '폭탄 배당'의 득과 실
합리적인 자본배치(Reasonable Capital Allocation)
이번 글에서는 지난번에 말씀 드린 버핏 입장에서 과연 합리적인 ‘자본배치’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자본배치능력’은 버핏이 투자의 길이를 고민할 때 중요하게 고려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은 배당을 안 주는 것보다 주는 것이 낫고, 규모가 작은 것보다 큰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순이익의 일정 부분을 정해서 배당하는 회사가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주주정책에서 앞서 있고, 자본의 효율적 배치를 위해 노력하는 회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배당에 관해 버핏이 직접 언급한 부분을 통해 살펴보죠.
배당정책은 주주들에게 공시되지만,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기업은 “우리 배당성향은 40~50%이며, 최소한 물가상승률만큼은 올려서 지급할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뿐이다. 왜 그런 정책이 주주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 어떤 분석도 첨부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의 배치는 사업과 투자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영진이나 주주나 어떤 이익이 유보되어야 하고, 배당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익이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별히 이익대비 자산의 규모가 큰 사업들에서 인플레이션은 창출된 이익이 재투자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렇게 그 사업이 현재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재투자되어야 하는 부분(‘제한된 이익’(Restricted)이라 부르자.)은 배당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제한된 이익’이 배당된다면, 사업은 판매량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장기적인 경쟁 우위를 잃게 되거나, 재무적인 건전성을 잃게 된다. 아무리 배당성향을 보수적으로 잡는다 하더라도 ‘제한된 이익’을 꾸준히 배당하는 기업은 외부에서 자본이 유입되지 않는 한 경쟁무대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다.
From 1984년 주주레터
일단 버핏은 기업이 창출하는 이익을 ‘제한된’(Restricted) 이익과 ‘제한되지 않은’(Unrestricted) 이익으로 구분합니다. 사업의 현재 위치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재투자되어야 하는 이익을 ‘제한된’ 이익이라 하고, 그런 부분과 무관한 이익을 ‘제한되지 않은’ 이익으로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제한된’ 이익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버핏의 정의에 의하면 ‘제한된 이익’은 현재 사업의 위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필요한 부분입니다. 즉 사업을 유지해나가는 데 필요한 혈액과도 같은 ‘운전자본’과 ‘설비투자’(CAPEX) 규모를 살펴봐야 합니다. 만일 ‘운전자본’과 ‘설비투자’ 자금을 유보된 이익과 그 해 벌어들이는 이익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 기업은 이익을 배당해서는 안됩니다. 이 경우 연간 벌어들이는 이익은 전부 ‘제한된 이익’이 됩니다. 만일 그런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이익을 배당한다면, 장기적으로 차입이 불가피하게 되어 재무구조가 악화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설비투자’ 자체를 미루면서 벌어들이는 이익을 모두 배당하는 기업은 “무대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심각한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들이 인수한 기업의 ‘제한된 이익’ 마저 배당으로 빼냄으로써 재 매각 후 기업들이 예전의 지위를 잃게 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어떤 기업의 배당정책을 점검할 때, 반드시 재무제표를 통해 이러한 부분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제한되지 않은’ 이익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조건 배당하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여기에 대한 버핏의 언급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한된 이익’은 배당에 대한 논의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좀 더 중요한 ‘제한되지 않은 이익’으로 넘어가 보자. 이런 이익들은 유보되거나 배당될 수 있다. 경영진은 반드시 어떤 경우가 주주들 입장에서 더 유리한지 선택해야 한다.
이 원칙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수많은 이유로 경영진들은 언제라도 배당할 수 있는 ‘제한되지 않은 이익’을 사업 영역확장이나 정말 안정된 재무적 환경 속에서 경영하기 위해 유보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유보에는 오직 하나의 이유만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제한되지 않은 이익’은 오직 역사적 증거나 미래에 대한 진지한 분석에 의해 도출된 합리적인 사업전망이 있을 때에 한해 유보되어야 한다. 즉 유보되는 1달러가 최소한 주주들에게 1달러 이상의 가치는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유보 자본이 추가적인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From 1984년 주주레터
버핏에 대해 관심 있는 투자자라면, 귀가 따갑도록 들어 봤음직한 유보의 원칙입니다. 버핏은 유보가 합리적 이려면, 사업의 전망이 정말 확실한 경우여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투자되는 1달러가 최소한 1달러 이상의 가치는 있어야 유보에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버핏이 버크셔해서웨이의 이익을 배당하지 않는 이유와 동일합니다. 만일 사업 전망이 불확실하여 유보에 의미가 없다면, 배당을 통해 투자자들이 직접 가치 있는 곳에 재투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죠.
투자자들은 반드시 배당정책을 살펴볼 때 위에서 언급한 기준을 토대로 적절한지 여부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경영진이 이익을 배당한다면 과연 배당해도 향후 사업에는 큰 영향이 없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이익을 유보한다면 유보하는 이유가 합당한지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보하는 이유가 버핏이 언급했듯이 단순히 안정된 재무적 환경 속에서 경영하기 위한 것이거나 사업 전망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업에 재투자하기 위한 것이라면 결국 투자자들에게 좋지 않은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버핏의 ‘이익’에 대한 원칙은 실제 버핏의 투자나 경영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과거 ‘버크셔해서웨이’를 인수하여 방직사업을 계속해나갈 때, 버핏은 당시 CEO ‘켄 체이스’(Ken Chase)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방직사업을 위한 재투자를 단행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방직업체까지 인수해서 합병해도 버크셔의 방직사업은 더욱 악화되어만 갔고, 결국 방직산업을 둘러싼 환경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규모로 설비투자를 단행한다면 공정의 효율화를 통해 이익구조를 좀 더 개선할 수 있다는 판단과 확신에도 불구하고 버핏은 방직사업에 대한 재투자를 단호히 거절합니다. 대신 ‘내셔널 인뎀너티’와 같은 지역보험사나 '일리노이 내셔널 뱅크'와 같은 지역 은행을 인수하는데 유보이익을 사용합니다. 결국 이러한 버핏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적절했으며 오늘날의 버핏을 있게 해준 근간이 되었습니다.
버핏은 유보이익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안으로 배당보다는 ‘자사주 매입’을 권합니다. 기업 자신이 본업과 관련 없는 사업 진출에 유보이익을 사용하는 것보다 본업 자체에 대한 투자를 선호하며, 본업이 성숙하여 더 이상 재투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들의 실질적인 부를 증가시켜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배당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배당에는 세금이 있어 배당보다는 자사주 매입이 더 효율적인 방안인 것이죠.
과거 ‘워싱턴 포스트’의 경우, 버핏의 이러한 생각이 결국 CEO인 ‘케이 그레이엄’에게 받아들여진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효율적 시장가설'의 유행으로 소외되어 주가가 PBR 0.2도 안 되던 시절에 버핏은 묵묵히 ‘워싱턴 포스트’ 주식을 사 모았고, 결국 ‘워싱턴 포스트’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발표로 주가는 급격히 내재가치에 수렴하게 되죠.('워싱턴 포스트'는 Truly Ridiculous Price 기회를 제공하는 주식시장을 충분히 활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버핏 역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의 본업에 대해 잘못 판단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보석업체 ‘보르샤임스’의 경우, 사업을 확장하고자 CAPEX를 단행하려고 했던 데 대해 버핏은 부정적으로 보았으나 결국 해당 CEO의 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하게 되죠.
항상 버핏의 기업관을 살펴보고 나면, 국내 기업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합리적인 기준 하에 ‘제한되지 않은 이익’을 최대한 주주들의 부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기업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한되지 않은 이익’ 마저 특별한 사업기회나 전망 없이 유보해서 예금에 넣어두어 전반적인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기업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물론 본업과 관련 없는 사업에 진출하거나 투자에 실패해서 유보한 이익을 까먹는 경우보다는 낫겠죠.
간혹 ‘폭탄배당’을 하거나 기존보다 배당을 더 늘리는 기업의 주가가 단기적으로 뛰어오르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단기적인 주가차익에 집중하는 투자자라면 그야말로 매도 적기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의 발전과 함께 하려는 투자자라면 냉정히 그러한 주주정책의 합리성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버핏의 견해는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ValueSniper(lynus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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