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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따라하기] 젖은 눈덩이 만드는 법
저는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에서 성과를 내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두가지만 꼽는다면 첫째, 좋은 종목을 고르기가 쉽지 않고, 둘째, 종자돈(투자 원금)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의 글에서 첫번째 문제 - 좋은 종목 고르기가 쉽지 않은 것 - 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에 집중할 것을 권했습니다. 앞으로 이것 말고도 좋은 종목 고르는 방법 몇가지를 더 말씀 드릴까 합니다.
이 글에서는 좋은 종목 고르는 법 이야기를 잠시 건너 뛰고 종자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종자돈 문제는 주식 투자 성공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의 하나인데도 의외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간단한 계산을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워렌 버핏이 최근 펴낸 자서전의 제목이 <눈덩이>(snowball)네요. 버핏은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눈덩이(종자돈)가 있어야 한다. 기왕이면 젖은 눈덩이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식 투자에서 25%의 연수익률을 기록해온 올해 나이 35세의 어느 투자자가 45세가 됐을 때 주식 투자로 10억원을 만들고 은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합시다. 이 투자자는 지금 얼마의 종자돈으로 시작해야 할까요. 계산을 해보면 약 1억원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1,000,000,000 / (1+ 0.25)^10 = 107,374,182)
다시 말해 투자 실력이 상당한 투자자라도 10억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1억원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버거운 금액이네요.
현실적으로 개인 투자자가 마련할 수 있는 종자돈은 어느 정도일까요. 1,000만~5,000만원일텐데 이 경우 10년 후 손에 쥐게 되는 금액은 9,300만~4억 6,500만원입니다. (연수익률 25%를 가정했을 경우입니다). 계산을 해보면 종자돈이 적어질수록 10년 후 손에 쥐게 되는 금액이 급격하게 떨어지는데, 이는 종자돈이 적을수록 복리 효과가 발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개인 투자자가 투자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어느 정도의 종자돈이 마련되지 않으면 목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이 종자돈을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1년만에 종자돈 1,000만원을 만들려면 한달에 꼬박 83만원씩 저축해야 합니다. 한달에 83만원씩 저축하는 것,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또 1년에 5,000만원을 만들려면 매달 꼬박 417만원씩 저축해야 합니다. 이건 어지간히 돈을 많이 버는 월급쟁이가 아니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가끔씩 투자 지식이 탁월한 개인 투자자를 접하게 되는데, 종자돈 문제로 고민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이 분들은 부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쉽게 말해 돈을 빌려 주식 투자에 나서는 것이지요. 이 경우 리스크가 아주 높아집니다.
종자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이는 개인 투자자의 여건과 환경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일반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돈 관리를 소홀히 해온 분이라면 더 절약할 수도 있을 테고, 직장 업무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이라면 부업을 하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종자돈 문제를 확실히 해두지 않고 주식 투자로 큰 돈을 만지기를 기대한다면 목표 달성 확률이 극히 낮다는 것입니다. 주식 시장은 언뜻 무질서하게 보이면서도 실은 확률과 통계의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곳입니다. 주식 시장을 둘러보면 적은 돈으로도 일확천금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주장을 자주 접하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분이라면 통계와 확률의 원리를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어떤가요. 암담한가요.
한가지 희망적인 소식이 있습니다.
내년 2월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은 투자유한회사, 투자합자회사, 투자조합, 투자익명조합 같은 미국식 투자 파트너십(partnership, 개인과 법인의 중간단계) 설립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뜻이 맞는 개인 투자자들끼리 투자 파트너십을 만들어 투자 수익을 내고 수익을 분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발맞춰 재정경제부도 관련법을 개정해 내년초부터는 파트너십의 소득에 대해 법인세를 물리지 않는 방안을 시행 예고한 상태입니다.
현재 국내 세법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체를 개인과 법인으로만 구분하고 중간 단계인 파트너십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파트너십 형태의 기업은 법인으로 분류돼 이익이 생기면 법인세를 내고, 파트너 개인은 다시 배당 소득세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이 해결되는 내년 초부터는 개인 투자자들끼리 파트너십을 만들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제법 큼직한 젖은 눈덩이(종자돈)를 만들수 있을 겁니다.
실은 이게 버핏이 초기에 투자 인생을 시작했던 방식입니다. 알다시피 버핏은 1956년 당시 스물여섯의 나이에 오마하의 지역 유지 7명으로부터 모두 10만 5,000달러를 투자 받고, 여기에 자기 돈 100달러를 보태 버핏 어소시에츠라는 파트너십을 만듭니다. 전설의 투자 인생의 출발점이지요. 버핏은 굳이 다른 사람의 돈을 모아 투자에 나선 이유는 종자돈의 원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LLC(Limited Liability Company)라는 형태의 파트너십이 세제 혜택 등으로 광범위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10년 후, 20년 후쯤에는 한국에서도 워렌 버핏처럼 뛰어난 투자 성과를 내는 개인 투자자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지금까지는 워렌 버핏에 못지 않은 투자능력이 있더라도 종자돈 문제에 걸려 빛을 보지 못했던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본시장통합법이 개인 투자자에게도 남의 일은 아니네요. 한국의 워렌 버핏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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