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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이야기] '보통 투자자' 장인 어른의 20루타
10여년 전 장인 어른께서는 첫째 딸인 필자의 아내와 둘재 딸(처제)을 같은 해에 한꺼번에 시집 보내고는 집안 기둥 뿌리까지 다 뽑혔다고 하셨다. 오십 평생을 군에 봉직하시다가 대기업 계열사에서 몇 년을 일 하시던 즈음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장모님이 말씀하시기를 정말로 집 한채 외에는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었다고 한다.
그 뒤로 환갑을 조금 넘기실 때까지 일을 더 하시고 퇴직한 지 몇년 되지도 않은 지난해 말 노년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시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맏사위인 필자에게 정을 많이 주셨는데 허망할 뿐이다.
장성한 아버지와 아들, 장인과 사위가 대개 그러하듯 처가집을 가도 공통의 화제를 찾기가 어려웠다. 제사때나 명절 때 가끔 반주 한잔을 대작할 때를 빼면 그리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눌 기회도 적었다. 그러다가 장인 어른과 필자간에 공통의 화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주식이었다.
가끔 처가집에 찾아 뵈면 반갑게 웃으시면서 "어떤 주(株)가 좋아? 주를 사려 하는데..."라고 말씀하셨다.
의미는 통하지만 주식의 '식'자를 빼고 주라고 말하시니 처음엔 생경하여 술 酒자로 들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우리 회사 좋아진다. 이익이 많이 늘 거다"라고 말씀 하셨다.
돌아가신 분께 죄송하지만 장인어른의 주식투자 스타일과 성적은 한마디로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군인이셨을 때는 물론이고 늦은 직장 생활을 몇년 하실 때만 해도 주식투자를 한번도 안 해보셨다. 아마도 퇴직을 조금 앞두고 자사주와 스톡옵션이라는 것으로 처음으로 주식을 아셨던 것 같다.
퇴직을 하시고 난 뒤에는 큰 규모는 아니지만 주식투자를 본격적으로 하셨다. 그런데 주위에서 좋다고 하면 그냥 사셨다가 폭락하는 날엔 손해 보고 팔아 버리시니 그저 초보 개미나 이른바 '마바라' 수준에서 크게 벗어 나시지 못한 것이다. 장모님과 같이 있게 되는 날엔 항상 "당신은 그렇게 주식을 잘 못하냐"는 장모님의 따끔한 핀잔을 들으시곤 했다(큰 금액은 아니셨기에 그 정도 비아냥에서 항상 멈추셨던 같다).
가끔 PER, PBR 개념을 설명해 드리고 책도 몇 권 사다드렸지만 아무래도 개념이 잘 안 잡히시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모든 일에 그러셨듯 어떤 주식이 좋은지 나름대로 탐문도 하시고 주말이면 신문광고의 무슨 무슨 고수들의 강연회도 열심히 다니시기도 했다.(그런 광고를 믿고 족집게 강연에 가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하지만 장인 어른은 종국에는 '성공한' 투자자의 한명으로 남으셨다. 본인이 다니셨던 회사 주식을 아주 오랜동안 보유하셨던 덕분이다. PER가 얼마인지 기술적 분석이 어떻게 되는 지는 끝내 파악을 못하셨지만 말이다. IMF때 적자나던 회사가 흑자로 전환된다는 믿음, 회사는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회사 주식만은 흔들림 없이 장기 보유하셨던 것 같다.
군을 떠나서 민간기업에 와서 결재서류를 잘 몰라서 밤늦게까지 공부하시고, 젊은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어 이른 새벽에 일어나 기초부터 영어회화를 공부하셨던 분이다. 그런 열정이 회사 발전에 얼마나 공헌했는지는 모르지만 첫 투자종목이자 가장 많은 보유하셨던 그 회사주식은 지난 10년간 20배 가까이 올라갔다. 홀로 남으신 장모님의 노후생활에 꽤 도움이 되는 연금 역할을 하게 되었다.
금융을 알고 투자업에 종사한다고 해서 사위의 조언에 귀 기울여 주셨고 또 적지 않은 돈을 필자가 관련된 투자조합에도 투자하셨다. 돌이켜 보면 투자에 대해 더 많이 배운 건 오히려 필자인 것 같다. 어떠한 분석보다 어떠한 지표보다 좋아지는 회사에 대한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가르쳐주셨으니 말이다. "어떤 주가 좋아?"라고 반갑게 맞아주시던 장인 어른과의 정겹던 대화가 그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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