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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주 투자의 개척자 '필립피셔'

편집자주 필립피셔,월가의영웅
【편집자주=이 글은 과거에 박정태 기자가 머니투데이 재직(2001년)당시 '월가를 움직이는 100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던 글입니다. 시간상으로는 오래된 글이지만 월가의 영웅들의 철학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글이라 판단돼 다시 연재하고자 합니다. 시간이 흘러 일부 수치 등은 지난 데이터가 될 수도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박정태 기자는 현재 '굿모닝북스'의 대표이사로 가치투자와 관련된 좋은 책을 발행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불운한 시대가 천재를 만든다. 주식시장 이론도 마찬가지다.

내재가치 이하로 거래되는 가치주에 분산투자할 것을 주장했던 벤자민 그래함이 주식투자 이론서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증권분석(Security Analysis)'을 출간한 것은 1929년 주식시장 대폭락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1934년이었다. 엄습한 대공황의 와중에서 4년간의 집필기간이 소요된 이 책에서 그래함은 보수적인 관점에서 주식투자를 하라고 강조했다.

내재가치와 합리적인 가격, 분산투자, 원금상환 보장 등 그가 이 책에서 쓴 용어들은 이런 그의 시각을 잘 보여 준다. 그래함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최악의 경우에도 투자원금을 건질 수 있는 위험이 적은 주식에 투자하면 주식시장의 대폭락과 사상 초유의 약세시장에서도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함보다는 13살이 적지만 필립 피셔 역시 대공황의 시련을 겪으며 자신의 투자이론을 정립했다. 그러나 피셔의 투자이론은 그래함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피셔는 오히려 성장잠재력이 뛰어난 질적으로 우수한 기업이라면 장부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해도 더 높은 투자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그래함을 가치주 투자이론의 원조라고 한다면 피셔는 성장주 투자이론을 월가에 처음으로 도입한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손익계산서나 대차대조표와 같은 재무제표를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보다는 그 회사가 속해있는 업종이나 경영진의 능력, 경쟁상의 우위와 같은 질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다는 피셔의 말이다. 피셔는 분산투자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었다. 분산투자를 위해 자신이 잘 모르는 여러 회사에 투자한다면 이는 위험을 오히려 높일 수 있다. 이 보다는 자신이 잘 아는 소수의 회사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게 피셔의 주장이다.

피셔가 1958년에 출간한 '보통의 주식과 특별한 이익(Common Stocks and Uncommon Profits)'이라는 책은 제목부터가 이같은 도전적인 주식투자전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워렌 버팻이 피셔를 처음으로 찾아간 것도 이 책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됐다.

피셔의 아버지는 외과의사였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진료비를 받지않을 정도로 물질적인 면을 도외시했고, 그래서 집안사정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피셔는 자신이 12~13세 때부터 주식시장에 관심을 가졌으며, 주식시장은 매우 흥미로운 '게임의 장'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주식시장은 성공한 기업가와 훌륭한 기업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이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학업성적이 워낙 뛰어났던 피셔는 15세에 대학에 입학했고, 스탠포드대학 경영대학원을 마친 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앵글로 런던 앤드 파리 내셔널 은행에 조사분석 담당자로 들어갔다. 당시에는 은행에서도 주식을 팔았는데 이곳에서 그가 한 업무는 증권 조사분석이었다. 통계분석 업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피셔는 1년만에 이 곳을 그만두고 증권회사로 옮겼으나 대공황의 여파로 증권회사는 파산하고 만다.

피셔는 결국 1931년 직접 투자자문회사인 피셔 앤드 컴퍼니를 설립한다. 공황이라는 시대의 그늘 속에서 창문조차 없는 작은 사무실을 얻어 출발했지만 몇 해동안은 주식시장의 약세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로 고전한다.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계기는 이 때 찾아왔다. 피셔가 대학원 재학시절 눈여겨 보아왔던 회사인 야채 통조림용 기계 제조업체인 푸드 머시너리 컴퍼니(FMC) 주식을 고객들에게 추천하고, 자신도 매입한 것이다.

피셔가 대학원 재학중 기업컨설팅 과목을 강의했던 에머트 교수는 매주 수요일 학생들을 데리고 센프란시스코 근처의 기업을 방문했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기업현장 시찰뿐만 아니라 에머트 교수가 경영진과 현장기술자들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을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는 어떻게 하는 것이며, 성공적인 기업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파악해야 하는 가를 이때 배웠다고 피셔는 말하고 있다. 이때 방문했던 기업 가운데 두 회사가 또 다른 회사와 합병해 1928년 새로 설립한 회사가 바로 FMC였다.

FMC는 야채통조림 소비의 폭발적인 증가를 배경으로 영업이 무척 잘됐지만 대공황의 영향으로 1928년 50달러까지 거래됐던 주가가 1931년에는 4달러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피셔는 이미 이 회사 경영진의 우수함을 알고 있었고, 성장잠재력이 큰데도 불구하고 시장 전체의 약세로 인해 주가가 과도하게 하락했다고 판단했다. 그와 그의 고객들은 4달러에 이 회사 주식을 매입해 결국 50배의 차익을 남기고 팔았고, 이 거래를 계기로 그의 투자자문회사는 제궤도에 오르게 된다.

수집가능한 모든 정보와 자료를 분석한 뒤 현장조사와 경영진과의 인터뷰까지 마치고 난 다음에야 투자하는 신중하기 이를 데 없는 피셔지만 그도 여러차례 실수를 했다. 그는 그러나 실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투자자들은 자신의 실수를 반영해야만 한다. 성공한 것만 생각하고 얘기하는 것은 가시를 빼놓고 장미만 보는 것과 같다. 실은 가시가 장미보다 더 중요하다. 실수가 있었다는 사실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지금까지 세 번의 실수를 했는데 모두 자신의 기준에 맞는 철저한 조사과정이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욱 정밀하게 조사했었다면 자신의 투자를 막을 수 있는 사실을 발견했을텐데 이를 간과하는 바람에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이런 실수를 발견한 뒤 곧 손실을 최소화했고, 이 손실에 비해 훨씬 더 큰 투자수익을 다른 성장주에서 올릴 수 있었다. 그의 투자전략 역시 손실은 최소화하고, 이익은 극대화하는 것인 셈이다.

주식시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피셔의 영향 때문인지 그의 아들과 손자도 주식투자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아들인 켄은 자신이 설립한 피셔 인베스트먼트의 최고경영자로 일하며 포브스지에 '포트폴리오 전략'이라는 칼럼을 장기 연재하고 있고, 그의 손자인 클레이는 16세에 주식투자 입문서를 썼을 정도다.

그의 아들 켄은 그러나 아버지와 달리 계량적인 분석에 무게를 두고, 경제전망과 금리변화, 주식시장 전반의 기조 등을 중시한다. 기업의 질적인 측면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아버지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세대가 달라지면 투자전략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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