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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주시대를 연 월가의 백상어"
편집자주
월가의영웅,존체임버스
【편집자주=이 글은 과거에 박정태 기자가 머니투데이 재직(2001년)당시 '월가를 움직이는 100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던 글입니다. 시간상으로는 오래된 글이지만 월가의 영웅들의 철학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글이라 판단돼 다시 연재하고자 합니다. 시간이 흘러 일부 수치 등은 지난 데이터가 될 수도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박정태 기자는 현재 '굿모닝북스'의 대표이사로 가치투자와 관련된 좋은 책을 발행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창업한 지 불과 16년, 주식시장에 상장된 지는 10년 밖에 되지 않은 실리콘 밸리의 한 기업이 지난해 3월 29일 월가의 역사를 다시 썼다. 시스코는 이 날 시가총액 5,310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등 쟁쟁한 기업들을 제치고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5,000여개 기업중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올랐다.
시스코는 이로써 최단 시일내 시가총액 5,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1999년 12월 10일 시가총액 3,000억 달러를 돌파한 지 3개월만의 일이었다. 시스코는 이제 월가에서조차 꿈처럼 느껴졌던 "시가총액 1조 달러"를 가장 먼저 기록할 기업으로 손꼽히게 됐다.
시가총액은 그 날의 주가로 환산한 기업가치. 시스코는 한마디로 나스닥 시장 최고의 "가치있는 기업"이 된 셈이다. 물론 뉴욕증권거래소(NYSE)까지 합치면 제너럴 일렉트릭(GE)에 이어 2위였지만, 월가에서는 시스코가 곧 GE를 제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시스코는 지난해 말 몰아친 첨단 기술주의 급락세 여파로 시가총액이 2,800억 달러수준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시가총액 순위도 나스닥에서는 여전히 1위이지만 뉴욕 주식시장 전체로는 4위까지 추락했다. 하지만 시스코의 성장신화를 거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90년 2월 나스닥 상장이후 지금까지 44분기 연속 순이익 증가와 연평균 60%이상의 수익증가를 기록한 기업은 아직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스탠포드대학의 컴퓨터 시스템 관리자였던 레오나드 보삭과 샌디 러너 부부가 라우터를 개발해 1984년 시스코를 창업한 과정은 이제 실리콘 밸리의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시스코는 1988년 벤처 캐피탈 회사에 의해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된 최고경영자(CEO) 존 모그리지에 의해 회사의 틀을 갖췄다. 보삭과 러너 부부는 1990년 시스코가 기업공개를 한 직후 보유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시스코를 떠났다. 모그리지도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진 기업을 새로운 최고경영자에게 맡겨야 했다.
1995년 존 체임버스는 시스코의 3번째 CEO가 됐고, 지금 그의 이름은 시스코를 상징한다. 그가 취임할 당시 시스코의 시가총액은 90억달러, 한 해 매출액은 22억 달러에 불과했다. 시가총액은 이미 30배 이상이 됐고, 매출액도 올해 7월 끝나는 2000 회계년도중 3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같은 엄청난 성장속도는 물론 시스코가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기술력 덕분이다. 시스코는 현재 전세계 라우터와 인터넷 스위치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고객들이 요구하는 네트웍킹 관련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End-to-end)" 제공하는 유일한 기업이기도 하다. 또 인터넷 회사답게 매출의 90%가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세계 최고의 첨단기술 기업이라고 말하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같은 기업을 일궈낸 체임버스는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다. 더구나 그는 미 서부지역 최고의 명문이자 실리콘 밸리에서는 '스탠포드 마피아'를 형성하고 있는 스탠포드대학 출신도 아니다. 그는 동부지역의 웨스트버지니아대학에서 법학과 경영학을 전공했고, 인디애나대학에서 MBA(경영학석사)를 취득했다. 그 후 IBM와 왕컴퓨터에서 세일즈맨으로 경력을 다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시스코를 세계 최고의 가치있는 기업으로 키워낸 그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시스코는 창업초기 라우터로 성장했지만 기업공개 직후인 1990년 대초 위협적인 경쟁상대를 만난다. 라우터보다 훨씬 싼 값으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터넷 스위치가 개발된 것이다. 1991년 1월 선임부사장으로 시스코에 입사한 체임버스는 IBM과 왕컴퓨터가 밟았던 실패의 전철의 알고 있었다. 기술의 진보속도는 너무나 빠른데 과거의 선도적인 기술기업이라고 해서 자신의 기술만 고집하다 보면 결국 경쟁기업에게 뒤처지고 마는 것이다.
체임버스는 이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당시 인터넷 스위치 개발업체로 선두주자였던 크레센도와 칼파나 등을 인수하는 전략을 세웠다. 성공적인 기업인수의 전형으로 불리는 크레센도의 인수를 위해 시스코가 지불한 금액은 9,500만 달러였다. 물론 시스코의 주식으로 인수대금을 치른 것이었지만 크레센도의 당시 한 해 매출액은 1,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지금 시스코의 인터넷 스위치 매출액은 한 해 50억 달러가 넘는다.
체임버스가 시스코에 합류한 1991년 이후 시스코가 인수한 기업의 숫자는 60개가 넘고, 인수금액도 300억 달러에 이른다. 1995년에는 고성능 ATM(비동기 전송모드) 기술개발 업체로 한 해 매출액이 150만 달러에 불과했던 라이트스트림을 1억2,000만 달러에 사들여 월가를 놀라게 하더니 불과 1년만에 라이트스트림보다 더 뛰어난 ATM 기술을 갖고 있는 스트라타콤을 45억 달러에 또 인수했다.
최근에는 광네트워크 기술개발 업체의 인수에 나서 1999년 세렌트를 72억 달러에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스웨덴 업체인 퀘이던을 8억 달러에 사들였다. 지난해 5월에는 인터넷 스위치의 속도를 더욱 향상시킨 스마트 인터넷 스위치를 개발한 애로우 포인트를 61억 달러에 인수했다. 애로우 포인트는 당시 분기 매출액 950만 달러, 순손실 750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시스코는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면서 인수했다. 시스코의 인수대상 후보로 오르는 기업은 그날부터 첨단기술 기업임이 확인되고, 그 기업의 주가는 몇 배로 뛴다. 일종의 시스코 효과가 실리콘 밸리가 아닌 월가에서 나타나는 셈이다.
체임버스의 이같은 기업인수 전략은 실리콘 밸리에서 "때릴 것인가, 사들일 것인가(Beat or Buy)"하는 전략으로 통한다. 경쟁상대를 이기려면 더 나은 기술력을 가지거나, 가격경쟁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같은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기업인수로 제시하는 금액이 엄청나 보여도 비용측면에서 오히려 더 효율적이고, 쉽게 얻기 힘든 유능한 엔지니어들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기회도 된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인수대금은 시스코의 주식으로 지불한다. 엄청난 규모의 기업인수가 가능한 것도 사실은 시스코의 주가가 높은 덕분이고, 또 기업인수 후 시스코의 주가는 더 높아져 새로운 기업인수가 가능해진다. 피인수기업의 주주는 물론 시스코의 주주도 기업인수의 덕을 보는 셈이다. 특히 갓 상장된 첨단기업을 찾아내 거액을 들여 인수하는 시스코의 전략은 최근 몇년간 뉴욕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군 첨단 기술주 붐의 조성에도 밑거름이 됐다.
시스코의 최대주주는 다름 아닌 세계적인 뮤추얼 펀드 회사인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이다. 피델리티는 시스코의 주식을 88억 달러(2000년 5월 현재)어치나 보유하고 있다. 해외투자로 이름이 잘 알려진 야누스펀드와 미국내 최대의 기관투자가인 교원연금보험퇴직펀드(TIAA-CREF) 등도 각각 64억 달러, 24억 달러의 시스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안전성을 중시하는 이들 펀드가 시스코의 주식을 대거 편입한 가장 큰 이유는 "정확성" 때문. 체임버스는 기업실적 설명회 때마다 매출대비 순이익률이 떨어지고 있다며 엄살을 부리지만 시스코는 기업공개후 지금까지 매출 및 순이익 추정치에 미달하는 실적을 발표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그래서 월가에서는 시스코를 시계처럼 정확한 기업으로 부른다. 그만큼 주주들의 신뢰도가 높고, GE의 실무진이 직접 시스코를 방문해 이같은 주주신뢰 고양의 노하우를 배워갔을 정도다.
체임버스의 다음 기업인수 대상은 "컨텐츠 인식 네트워킹(contents-aware-networking)" 기술개발 업체로 알려져 있다. 라우터에서 인터넷 스위치, 광네트워크로 이어진 시스코의 기술개발 및 기업인수 행진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셈이다. "첨단기술 업계의 거대한 백상어(the Great White Shark of the tech world)"로 불리는 체임버스의 다음 인수대상이 어떤 기업이 될 지 월가는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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