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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LPG를 한물갔다 했는가

건재한 LPG


한때 이런 농담이 있었다. 전세계의 오토바이 폭주족들이 다 모여서 누가 가장 난폭한지 경합을 벌였는데 우리나라 대표가 1등을 했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외모나 오토바이는 평범했으나 매일같이 보기만해도 무서운 가스통을 뒤에 매고 달리는 모습에 외국 폭주족들이 기겁했기 때문이란다.

그만큼 우리에게 가스(LPG) 배달 오토바이는 무서운 존재라기보단 서민 연료의 대표로 인식될 만큼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가스 배달 오토바이는 한때의 버스 안내양처럼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실제로 도시가스가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만 LPG가 사용되므로 난방용이나 취사용 수요는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운송용의 주류를 이루는 택시도 성장이 없긴 마찬가지다. 한때 앞선 경제성으로 보급되던 LPG차량도 약한 출력과 모자란 충전소 등의 이유로 외면당하면서 경유차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그렇게 보면 LPG도 한물간 게 아니냐는 얘길 들을 법도 하고 마찬가지로 LPG 유통업체도 별 볼일 없지 않느냐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LPG업계의 양대산맥 SK가스와 E1(구 LG가스)은 여전히 풍부한 현금흐름을 창출하며 주주들에게 조용히 짭짤한 배당 수입을 안겨주고 있다.


LPG가 짭짤한 이유

엄밀히 얘기하면 SK, GS칼텍스, S-Oil도 LPG를 생산한다.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LPG가 부산물로 일부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우리나라의 수요를 다 댈 수 없어 원유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LPG를 추가로 수입해야 한다. 이것을 SK가스201,500원, ▲5,000원, 2.54%E172,300원, ▲100원, 0.14%이 하는 것이다. 즉 LPG 수입 유통업체라 보면 되겠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수입 유통업체가 단 두 개 밖에 없다는 사실에 있다. 몇몇 업체가 짭짤함에 이끌려 시장 진입을 시도해봤으나 무참하게 깨져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유는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수입한 LPG를 저장할 기지가 필요한데 이것이 엄청난 자본 지출을 요구한다. 둘째, LPG를 공급할 유통망이 필요한데 단기간에 구축이 어렵다. 둘째 이유 때문에 첫째 이유에서 언급한 저장 기지를 만들 엄두가 안 나기도 한다. 셋째, SK가스와 E1 모두 SK와 GS칼텍스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과점 상태를 계속 유지한 데다가 2001년에 LPG 가격마저 자율화가 되었으니 굳이 수요가 증가하지 않더라도 유지만 하면 이익 내는 건 땅 짚고 헤엄치기다. 실제로 2001년부터 매출은 거의 정체였지만 아래 그래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순이익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5년간 SK가스와 E1의 순이익 추이




꾸준한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섭섭치 않은 배당금을 지급했는데 시장에서는 LPG업체에 대해 성장성 프리미엄을 주지 않으니 주가가 낮았고 그러다 보니 배당수익률이 높게 나와 늘 배당투자자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특히 2001년부터 가치투자자들 사이에서 도시가스보다도 선호되는 모습이 나타났는데 도시가스가 투자보수율에 묶여 이익이 제한되어 있는 반면 LPG는 가격자율화의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변화의 조짐 보이기 시작

하지만 아무리 가격자율화라 하더라도 난방용 수요에서 도시가스에 비해 열위 했기 때문에 무턱대고 가격을 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난방용으로 쓰이는 프로판 보다는 운송용으로 쓰이는 부탄에서 성장의 불씨를 찾아야 하는데 이 부분이 2004년까지만 해도 불확실한 정책에 달려 있었다. 즉 정부에서 휘발유, 경유, LPG의 가격 비율을 결정하는데 만약 LPG의 비율을 경유와 근접하게 잡으면 특유의 가격 매력이 사라져 부탄 수요 성장은 요원한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 부분이 LPG에 유리하게 결정이 났다. 2008년까지 단계적으로 휘발유, 경유, LPG의 비율을 100:85:50으로 조절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으로 일단 현재 굴러다니는 택시 수요는 건재하게 되었고 일반 차량 수요 확대라는 디딤돌을 마련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진 않았다. 소비자들이 이미 경유 차량을 선택한 데다가 자동차업체들도 LPG 차량을 준비하지 않았던 탓이다.

정작 LPG차량을 부활시킨 주인공은 고유가였다. 유가가 올라 휘발유 차량 유지에 부담을 느낀 운전자들이 대안으로 LPG를 떠올리던 찰나에 기아자동차가 뉴카렌스를 선보였다. LPG차량으로는 무려 7년 만에 나온 신차다. 주목할만한 점은 LPI라는 새로운 엔진을 탑재했다는 것이다.

뉴카렌스와 LPI엔진




과거 LPG엔진은 연료를 기화해 실린더에 분사했지만 LPI엔진은 연료를 액체 상태로 분사해 LPG엔진의 고질적인 단점이었던 출력을 개선했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에 비해 충전소도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고유가 시대가 도래했는데 LPG차량의 단점은 개선되었으니 당연히 뉴카렌스는 대박이 났다.


본격적으로 다른 길 걷는다

지금까지 SK가스와 E1 중에 뭐가 더 좋으냐는 질문은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하는 질문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워낙 단순한 사업을 하는 데다가 과점이니 다르면 더 이상하다 하겠다. 아래 표에서 나타내는 바와 같이 5년간 주요 수치들이 쌍둥이처럼 거의 비슷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06년부터는 이 표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SK가스와 E1이 다른 길을 걸어가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LPG환경의 우호적인 변화라는 것도 물이 반쯤 찬 컵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SK가스는 에너지 한 분야만 파도 성장이 가능하다는 시각이고 E1은 아무리 그래 봐야 여기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시각으로 파악된다.

SK가스는 SK E&S(구 SK엔론)라는 에너지 전문 지주회사의 자회사답게 그 동안 꾸준히 한 우물파기에 집중해왔다. 우선 LPG용 난방열기구의 보급 등 LPG의 사용처를 늘리는데 힘을 썼다. 겨울에 발레파킹을 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기다리는 파라솔 같은 히터기를 파티오 히터기라 하는데 LPG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제품이다. 이외에도 이동이 가능한 히터기도 있다. 둘 다 자세히 보면 SK가스 상표가 찍혀있다.

다음은 해외 진출이다. 이것은 다시 충전소 사업과 해외자원개발로 나뉜다. 2000년에 처음으로 중국에 진출해 현재 4개 도시에서 15개의 충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내년까지 22개로 늘릴 계획이다. 또한 2억5000만배럴 규모의 매장량이 예상되는 러시아 캄차카 반도 지역의 육상광구 탐사사업의 지분 15%를 취득함으로써 모기업인 SK처럼 자원개발에도 명함을 내밀었다. 비전으로는 당당히 동아시아 에너지 메이저를 내세운다.

E1은 2003년 11월 LG그룹에서 계열분리 되면서 가치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부풀렸다. 개인 최대주주가 생기면 배당금을 늘리지 않겠느냐라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2004년 4월 E1으로 CI를 교체하면서 기대감을 산산이 무너뜨렸다. E가 Energy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천명하면서 유보이익을 사업다각화 쪽으로 사용할 계획을 잡았음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첫 목표물은 범양상선(현 STX팬오션)이였으나 STX 그룹에 물을 먹었다. 그리고 나서는 축구대회를 후원하는 등 에너지회사가 잘 하지 않는 일들을 꾸준히 하더니 결국에는 얼마 전 큰 사건을 저질렀다. 8550억원을 투입해 이랜드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국제상사의 최대주주(74%)로 올라선 것이다.

이외에도 인천 컨테이너 터미널 착공으로 범양상선 때 이루지 못했던 물류사업에도 손을 댔다. 그나마 에너지 기업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는 활동은 국영석유회사인 페타미나와 손잡고 인도네시아 LPG 개발에 뛰어든 것 정도다.

다른 방향을 극명히 드러내는 히터기와 운동화



이제는 선호도를 말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두 기업 모두 투자를 통한 성장을 택했기 때문에 배당투자자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당분간 배당금이 상향 조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누가 더 많은 배당금을 주느냐를 가지고 따진다면 두 기업 중에 누가 더 좋아?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답할 수가 없다.

하지만 성장을 추구하는 방향이 극명하게 갈리므로 선호도에 따른 선택은 아주 쉬워졌다. LPG에 대한 성장성을 여전히 믿고 있으며 기업은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은 당연히 SK가스를 선택할 일이다. 반면 유보자금도 잘 쓰면 굳이 관련 사업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고 흑묘백묘론을 펼치는 투자자들에게는 E1이 적격이다. 특히 새 주인을 맞아 집중력을 살리면 프로스펙스가 다시 옛 영화를 누릴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면 더욱 그렇다. 선택은 투자자의 몫이다.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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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 고가치발굴,저가격_인내
    LPG엔진의 기화기 부분을 어느 회사에서 만드나 궁금하던데 모토닉 아닌가 하네요 ^^
    2006.06/14 10:34 답글쓰기
  • 고가치발굴,저가격_인내
    2006.06/1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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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nicbird
    SK가스와 E1 의 얘기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에 나왔던 필립모리스와 RJ레이놀즈의 사례를 생각나게 하는군요. 1964년 담배와 암의 관련성에 관한 보고서 발표후 담배회사들은 모두 사업 다각화에 나서지만 필립모리스는 일관성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반면에 RJ레이놀즈는 컨테이너 회사와 석유회사를 사들이는 등 방랑을 하다가 결국 필립모리스에 업계 1위 자리를 내어주게 되지요.
    E1은 RJ레이놀즈를 SK가스는 필립모리스를 닮은 것 같습니다.
    2006.06/14 23:22 답글쓰기
  • panicbird
    2006.06/1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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