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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행 '내 나와바리는 건드리지 마소'


◇ 지방 은행 미스터리

세계 지도에서 우리나라를 한번 찾아보자.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이 지도를 뒤집어 보면 대륙 끝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태평양으로 뻗어 나가는 모양으로 되어 있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려 노력하지만 땅 덩어리는 참 작다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미국의 한 주 보다도 작은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졌다는 사실이 기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부산이라는 인구 6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도시에 국한해 돈 장사를 하는 은행이라면 그 한계가 뻔하다는 1차적인 지적을 떠나 도대체 생존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서울과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실제 이런 의문은 IMF 때 현실화 되었다. IMF가 한창이던 1998년 부산이 부도율, 실업률 모두 전국 최고를 달리자 부산은행도 당장 망할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부산을 연고로 한 동남은행은 간판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액면가 미만임에도 불구하고 부산 토착민들의 도움으로 유상증자에 성공함으로써 급한 불은 껐지만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했다. 시중 은행들은 합병으로 인해 대형화 되어 갔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이 부산으로 치고 내려오면 롯데, 현대의 진출로 초토화된 지방백화점 꼴이 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했다.

하지만 부산은행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2001년 523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것을 시작으로 작년까지 3년간 매년 10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순자산은 1조가 넘었다. 각종 지표를 봐도 안정성이 생겼다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효율성 면에서 시중 은행에 비해 낫다는 평가를 내려도 될 정도다. 도대체 모두의 우려 속에서도 승승장구 하고 있는 부산은행의 비결은 무엇일까?

부산은행의 각종 지표
자본적정성
자산건전성
수익성
BIS
비율
Tier1
비율
단순자기
자본비율
총연체율
고정이하
여신비율
ROA
ROE
NIM
12.46%
9.51%
5.83%
1.20%
1.12%
1.24%
20.51%
3.07%
2005년 2분기 기준


◇ 검증된 지역 독점

은행은 차별화가 쉽지 않은 비즈니스다. 그래서 경쟁이 한번 격화되면 걷잡을 수가 없고 대형 은행이 소형 은행을 죽을 때까지 밀어 붙이는 식으로 경쟁이 진행된다. 우리나라에서 은행의 대형화를 외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미국 은행들의 생존 경쟁 결과를 보면 꼭 수 차례의 합병을 통해 덩치가 아주 커진 쪽만 살아 남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덩치를 급하게 키우지 않은 대신 지역에 꽉 밀착되어 있어도 살아 남았다는 얘기다. 무차별하다지만 은행도 결국엔 서비스업인 탓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합병으로 덩치가 커진 시중 은행과 함께 지방 은행도 같이 살아 남아 공존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물론 매출액이나 순익 규모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가 나지만 자산건전성, 수익성, 효율성 모두 기대 이상으로 은행은 사이즈가 생명이다라고 외친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든 게 사실이다. 특히 부산은행과 대구은행은 쌍벽을 이루며 지방은행을 다시 봐야 할 이유를 충분히 제공해 왔다.

지방은행 비교

부산은행
대구은행
전북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
총자산
17,509
18,597
4,620
11,965
10,248
자기자본
1,026
924
213
591
413
당기순이익
133
124
36
109
72
ROE
13.74
13.60
18.11
19.18
17.78
ROA
0.81
0.70
0.83
0.98
0.81
B/S는 2005년 1분기, P/L은 2004년 결산 기준 (단위 십억원, %)

부산은행이 지역 독점형 기업이 된 데에는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 부산 지역에 촘촘하게 구축해둔 네트워크가 가장 큰 기여를 했다. 네트워크는 다시 인적 네트워크와 물적 네트워크로 나뉜다.

인적 네트워크의 힘은 역시 직원들이다. 부산은행의 직원 수는 3,000명이다. 3,000명이 은행 직원 숫자로는 적어 보일지 모르나 이들이 모두 부산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이들은 적어도 평균 2~3개의 모임에 참석하고 아는 사람이 100명은 넘을 것이다. 이를 합치면 부산은행은 곧 부산이 된다. 앞서 주지한 바와 같이 은행은 무차별한 특성이 있어 이런 인적 네트워크는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영업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



물적 네트워크의 핵심은 지점과 현금인출기(ATM)다. 부산은행은 부산에만 142개의 지점, 40개의 출장소 그리고 565대의 CD기, 864대의 ATM, 242대의 통장정리기를 보유하고 있다.

부산에 가본 사람이라면 중복 투자다 싶을 정도로 골목마다 하나씩 있는 부산은행 간판을 목격하게 되는데 외지인들에게는 생소함이지만 현지인들에게는 편리함을 의미한다. 어디서든 돈을 뽑을 수 있고 공과금을 납부할 수 있는데 부산은행을 외면할 이유가 있겠는가? 제 아무리 국민은행이라도 부산에서만큼은 부산은행 보다 편할 수 없다. 그 결과 부산 사람들의 80%가 부산은행 통장을 가지고 있다.

지역 독점형 기업은 담당 구역 소위 나와바리의 특성이 중요하다. 조폭도 나와바리가 명동이냐 시골이냐에 따라 다르고 도시가스업체도 수도권에 있느냐 강원도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부산은 특성 상 은행업을 하는 데 있어 두 가지 장점을 제공한다.

첫 번째는 우리가 남이가로 상징되는 경상도 사람 특유의 끈끈함이다. 이것이 잘못 발현되는 폐해도 있지만 인적 네트워크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는데 일조를 하고 있으며 과거 IMF 때 부산은행을 살리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두 번째는 대구, 전북 등에 비해 좋은 산업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신발 등 사양산업 비중이 높아 고생하기도 했지만 물동량 증가로 부산항이 바빠지고 조선, 자동차, 철강 등 최근 시황이 좋은 업종에 속한 중소 기업들이 많아 지역 경제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 생존을 넘어 프리미엄으로

지방 은행은 2002년에 가치투자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이유는 높은 배당수익률 때문이었다. 배당을 적극적으로 하는 데 반해 주가가 낮았던 탓이다. 따라서 주가가 조금 높아져 배당수익률이 떨어지면 포트폴리오에서 비중이 금방 떨어지기도 했다. 아마도 지방 은행의 한계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듯 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지방 은행은 시중 은행에 버금가는 밸류에이션을 적용 받는 알짜 주식으로 평가 받는다. 부산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64%에 이르는데 외국인 중에서도 장기 투자 성격의 자금이 대부분이다. 이제 생존이 문제가 아니라 시중 은행과의 밸류에이션 차이가 얼마가 되어야 하느냐 혹은 프리미엄을 받아야 하느냐를 논할 정도까지 그 위상이 높아졌다.

장기 투자자들이 부산은행을 선호하는 이유는 한 지역에 국한되어 있어 폭발적 성장은 없지만 안정적 영업 기반으로 존재 이유가 분명해 이익의 진폭이 적고 지속성이 뛰어나다는 데 있다. 실제로 부산은행은 3년 연속 1,000억원 대의 순이익을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에만 1,07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국민은행 등 시중은행과 비교하면 변동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높은 배당 성향과 이익의 지속성은 분명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부산은행, 국민은행 V차트 순이익 지수 비교


또한 저원가성 자금의 비중이 높다는 점도 프리미엄 요인이다. 은행업은 대출이자와 수신이자의 차이가 수익성을 결정 짓는다. 즉 예금 이자는 덜 주고 대출 이자는 많이 받으면 돈을 버는 것이다. 부산은행은 예금 이자를 덜 주는 데 강하다. 그 이유는 부산은행 통장이 지역민들과 기업들에게 사용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급여 이체, 결제성 자금은 대표적인 저원가성 자금이다. 여기에 더해 지방자치단체 자금, 시 금고도 포함되며 대외 신뢰성 제고라는 효과까지 제공한다. 최근 지방 균형 발전 정책에 따라 증권선물거래소를 필두로 공공기관들이 부산으로 이전하는 점도 긍정적이다.


◇ 극복해야 할 문제들

부산은행은 IMF 이후 5년이란 기간을 통해 부산 지역의 맹주임을 확인시켜 주는 동시에 지방 은행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아무리 덩치가 큰 시중 은행이라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지방 은행이 버티고 있는 지역을 공략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하지만 은행업 자체가 변화의 물결 속에 있어 경계를 늦추기엔 이르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그 자리에서 계좌이체가 가능한 시대다. 모바일 뱅킹은 지방 은행의 최대 강점인 편리함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온라인 뱅킹의 확산과 함께 고객들의 기대치가 높아져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 유지를 위해 막대한 지출을 해야만 한다. 규모가 작은 지방 은행에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전통적 텃밭인 기업 금융에서는 부산을 떠나 경남 지역으로 옮기는 기업들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경남은행에게 고객을 넘겨주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또한 저금리 시대에서 그 중요도가 더해지고 있는 소비자 금융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소비자 금융에서는 거액 고객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VIP 고객을 관리하는 역량이 더해지지 않으면 아무리 부산에 거주하더라도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신한, 하나, 씨티 등 PB에 강한 시중 은행으로 옮겨갈 수 있다.

결국 기업 금융 부문을 유지하면서 소비자 금융 비중을 점점 확대해 가야 하는데 여신 증가액의 60% 이상을 의무적으로 중소기업에 대출해야 하는 규제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IMF 때 실추된 신뢰를 회복시킨 것이 1차 라운드였고 지방 은행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2차 라운드였다면 이제부터 시작될 3차 라운드는 특화가 규모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줄 때다. 주가로 해석하면 1,000원 하던 주가가 액면가 5,000원을 회복한 것이 1차 라운드였고 1만원을 넘어선 것이 2차 라운드였다. 이미 주가가 장부가를 넘어가 있는 상태에서 주가를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 하려면 3차 라운드를 잘 치러야 한다.

부산이 고향인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심훈 행장을 중심으로 직원들이 똘똘 뭉쳐 각 라운드를 잘 헤쳐온 부산은행이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없애며 한국의 웰스 파고, 와코비아로 자리매김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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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 양자강
    아! 이렇게 적절할 수가.....
    수일간 은행을 특히 부산은행을 조사 중이었는데 이런 리포트 올라오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2005.09/16 11:17 답글쓰기
  • 양자강
    2005.09/1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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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티나
    심훈행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것같아요....
    지금까지 잘하고 계시는데.
    2005.09/16 20:43 답글쓰기
  • 크리스티나
    2005.09/1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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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고메
    심행장님은 제가 볼땐 중앙(?)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편이고 차기행장은 내부에서 적절히 조율하지 않을까 해요.
    2005.09/17 12:58 답글쓰기
  • 물고메
    2005.09/1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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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ycavalry
    대구은행이나 부산은행은 여러모로 비슷한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우리가 남이가'라는 경상도 특수성이 많이 작용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2005.09/19 06:47 답글쓰기
  • mycavalry
    2005.09/19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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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호 천하
    부산인구 채 400만이 넘지가 않아요...^^ 그것도 지속 감소 추세랍니다.
    2005.09/22 12:45 답글쓰기
  • 백호 천하
    2005.09/2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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