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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집중으로 권토중래 노린다

LG생활건강 수난 시대

투자자에게 종합선물세트는 계륵과 같다. 종합선물세트 안에 포함된 특정한 한 가지 제품은 너무 마음에 들지만 그 제품을 사려면 그저 그런 다른 제품까지도 같이 사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갖고 싶은 건 한 없이 작아 보이고 맘에 안 드는 건 한 없이 크게 보이는 게 종합선물세트를 산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


요즘 대표적인 종합선물세트로 LG, GS, 신한지주, 농심홀딩스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지주회사가 없던 시절에는 각 사업 부문이 섞여 있는 그룹의 모태가 대표적이었다. 그 중 수 없이 가치투자자를 갈등에 빠뜨렸던 회사가 바로 LG화학이었다. 당시 LG화학의 사업부였던 생활용품 부문은 시장 독점력, 반복 구매되는 제품, 꾸준한 현금흐름으로 인해 가치투자자의 구미에 딱 맞았으나 정작 매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화학 부문은 가치투자자가 꺼려 하는 경기변동형 사업의 전형이었다. 게다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했던 팩티브라는 놈도 손 안의 새가 아니라 숲 속의 새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2000년 12월에 LG화학이 사업 영역에 따라 LG화학, LG생활건강, LG생명과학 세 개 회사로 분할할 것을 천명했다. 이로 인해 가치투자자는 종합선물세트를 구매할 필요 없이 LG생활건강 주식을 통해 구미에 맞는 생활용품 부문만을 골라 사들일 수 있게 되었다. 분할되어 2001년 4월 25일 첫 거래를 시작한 LG생활건강은 보통주 기준으로 주가가 11,900원에서 시작해 불과 한달 만에 3만원을 넘는 기염을 토했다. 경기가 정점에 달해 최고의 실적을 올림과 동시에 고배당주로서의 이미지를 공고히 한 2002년 3월에는 주가가 무려 51,900원까지 올랐다. 그야말로 스타주였다.

그러나 기업가치는 변하기 마련이다. 이후 계속 되는 경기 침체와 생활용품 업체들간의 경쟁 격화로 실적이 꺾이고 배당금마저 줄어들면서 주가 또한 올 초까지 계속 내림세를 탔다. 아무리 기다려도 실적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어느 샌가 가치투자자의 연구 대상에서도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경쟁 기업이라 할 수 있는 태평양이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순항해 오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2류 기업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야말로 2003년부터는 LG생활건강의 수난시대였다.




하지만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수난 시대가 워낙 길긴 했지만 원래 좋은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고 업력이 만만치 않은 회사이므로 턴어라운드의 가능성은 항상 열어둬야 한다. 꺼진 불도 다시 보는 마음으로 LG생활건강의 최근 변화를 편견 없이 살펴보도록 하자.


◇ 변화 조짐 보이는 1분기 실적

엘라스틴, 더블리치, 페리오 치약, 죽염 치약, 세이, 한스푼, 슈퍼타이, 자연퐁, 샤프란, 라끄베르, 드봉, 헤르시나 등 한국 사람이라면 알만한 수 많은 브랜드들이 LG생활건강에 속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진한 실적을 이어온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경기가 나빠 사람들이 생활용품에 대한 구매를 늦추거나 절약을 하는 바람에 재구매 텀이 길어져 버렸다.

둘째, 생활용품과 화장품 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뛰어 들면서 경쟁이 격심해졌다.

셋째, 좋은 브랜드는 많았으나 브랜드 산하 아이템 숫자가 지나치게 많아 포커스를 잡지 못해 경쟁자들 앞에서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앞의 두 가지 이유가 대외적 상황에 대한 부분이라면 세 번째는 LG생활건강 자체의 문제인 셈이다.




2005년 1월 1일, 전격적으로 CEO 교체가 단행 되었는데 이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니 LG생활건강의 부진이 대외적 요인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대주주 측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신임 CEO인 차석용 대표이사는 언뜻 봐도 LG생활건강의 현재 상황에 딱 맞는 인사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우선 P&G 출신으로 미국 본사, 한국 지사, 아시아 본부를 두루 거쳐 생활용품과 화장품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다. 다음으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해태제과를 맡아 살려낸 경험이 있어 문제가 있는 회사를 끌어갈 수 있는 능력이 이미 검증된 바 있다.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차석용 대표이사의 3개월 치 성적표를 한번 들여다보자. 2005년 1분기 매출액은 2,61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25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5% 증가했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어 매출은 여전히 감소세를 이어갔지만 이익 기여도가 큰 제품의 비중이 늘어나고 전반적으로 비용 감소가 일어나 사실상 10분기 만에 이익 증가가 나타났다. 이에 따라 영업이익률도 8.4%에서 9.7%로 개선되었다. 매출과 비용이 둘 다 하락했지만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샴푸, 치약, 비누, 세제 등 생활용품 부문의 시장점유율이 작년 4분기에 비해 2.3% 높은 34.1%를 기록했다. 화장품 부문에서는 시장점유율의 변화가 거의 없지만 프리미엄급 제품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백화점 시장점유율이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수치들을 종합해 보면 경기 회복보다는 실제적인 LG생활건강 내부의 변화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컸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차석용 대표이사가 맡은 바 임무대로 앞서 언급한 세 번째 문제를 해결하는데 매진했고 그 결과로서 일부가 1분기 실적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차석용 대표이사의 최근 발언들을 취합하면 선택과 집중이라는 키워드가 도출되는데 선택과 집중은 투자자에게 있어 1분기 실적뿐 아니라 향후 LG생활건강의 방향을 읽어내는 결정적인 단서다.


◇ 차석용 대표의 선택과 집중 전략

어떤 기업의 향후 방향을 읽는 가장 쉬운 방법은 CEO가 자본을 어디에다 배정하느냐를 파 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장 증설에 투자하고 있다면 매출 성장을 위한 생산능력 확보가 방향인 셈이고, 대손충당금으로 자본을 전입 시키고 있다면 재무건전성 확보가 방향인 셈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 LG생활건강의 사령탑인 차석용 대표는 마케팅에 자본을 배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000억원을 오가는 엄청난 규모의 마케팅 비용을 더 늘이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통해 마케팅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결과를 극대화 하는 데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전략은 네 가지 면에서 볼 때 훌륭한 전략이라고 평가된다. 첫째, 이미 생활용품과 화장품은 업체간 품질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따라서 품질에 자본 배정을 아무리 해봐야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쉽지 않으며 결국엔 브랜드에서 승부가 갈리게 되어 있다.

둘째, LG생활건강의 쪼그라든 이익 규모를 감안할 때 현재 마케팅 비용 이상을 쓰는 건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마케팅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엔 마케팅을 하면 더 잘 팔릴 제품, 돈 되는 제품에 자원을 집중해서 비용 대비 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LG생활건강은 이미 아이템 숫자가 너무 많다. 시장이 성장할 때 과도하게 뿌려뒀던 부분들은 상황이 변했으니 거둬 드리는 게 마땅하다. 아이템이 많아지면 매출이 늘 거 같지만 사실은 비용이 더 빨리 늘어난다. 반대로 아이템이 줄어들면 매출도 좀 줄지만 비용은 더 빨리 줄어든다.

넷째, 선택과 집중 전략을 쓰면 시장점유율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는다면서 초점을 잃는 바람에 유니레버, P&G, 태평양 등 강력한 경쟁자들 앞에서 우왕좌왕 하던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않아도 된다. 한 마디로 목표와 기준이 설정되었으니 조직 단합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이 양 날개인 생활용품 부문과 화장품 부문에 이식되면, 돈 되는 프리미엄급 브랜드는 밀어주되 이익기여도도 낮고 비전이 안 보이는 브랜드는 과감히 축소한다는 전략으로 구체화된다. 예를 들어 마케팅 자원을 많이 받게 될 생활용품 부문에서의 엘리트는 엘라스틴 샴푸인데 샴푸는 소비자의 선호도가 분명한데다가 브랜드가 어필하면 고가를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비누의 경우 종류도 워낙 많거니와 소비자 선호도가 크게 좌우하지 않는 부문이고 마진도 적어 아이템을 축소할 계획이다. 또한 차석용 대표이사가 전에 몸담았던 P&G 스타일로 제품보다는 브랜드를 강조하고 나섰는데 프로덕트 매니저 시스템을 브랜드 매니저 시스템으로 바꿀 계획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생활용품 부문이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더 많은 변화를 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화장품 부문이다.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LG생활건강이 차지하는 비중은 9.6% 밖에 되지 않는데 심지어 그 위치 조차도 불안한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전 부문에 있어 태평양에 밀리고 있을 뿐 아니라 고가 시장에서는 외국 화장품업체가 버티고 저가 시장에서는 미샤나 더페이스샵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러다 보니 백화점 매출도 미진하고 뷰티플렉스도 휴플레이스에 뒤쳐지는 상황이 이어져 중가 위주의 전문점 매출 비중만 높은 상태였다. 이에 대한 돌파구로 LG생활건강이 선택한 카드는 라끄베르, 헤르시나 등 어정쩡한 중가 브랜드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백화점에 들어가는 프리미엄급 브랜드인 더 후오휘 그리고 이자녹스에 자원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더 후는 고현정을, 오휘는 김태희를 모델로 쓰고 있는데 둘 다 광고 시장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빅모델들이다. 그 결과 2005년 1분기에 백화점과 구방판 부문의 비중이 확대되었는데 2분기부터 집중력을 더 강화하면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가 양극화 되고 있고 전문점 마진이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고현정을 내세운 더 후와 김태희를 내세운 오휘>



바뀌지 않은 외부 환경은 여전히 걸림돌

목표는 정해졌다. 사령탑을 위시한 진용도 다시 갖췄다. 1분기 실적에 변화의 흔적이 묻어날 정도로 움직임이 빠른 것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과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LG생활건강은 달라지고 있지만 생활용품과 화장품 시장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생활용품 시장에서 유니레버와 P&G가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화장품 시장에서도 터줏대감 태평양은 여전히 강하고 미샤도 상장 후 자본력까지 더해져 점차 영토를 넓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뜨뜻미지근하다.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밸류에이션이 만만치 않은 점 또한 부담스럽다. 작년 기준으로 PER이 15배 PBR이 2배 수준이며, 변화가 성공해 올해 EPS가 30% 증가한다 하더라도 PER이 12배로 낮지 않은 수준이다. 보수적인 투자자 입장에선 LG생활건강에 CEO 프리미엄과 턴어라운드 프리미엄이 어느 정도는 주가에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LG생활건강을 턴어라운드로 놓고 지켜보되 여전히 핵심은 배당에 맞춰지는 것이 안전하다. 2년간 주당 1500원의 배당금이 작년 750원으로 반 토막 나며 고배당주로서의 위상에 먹칠을 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배당을 필요로 하는 지주회사 LG가 34%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사업모델이 여전히 잉여현금흐름을 발생시키는 구조이므로 실적만 좋아지면 배당금은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750원을 기준으로 하면 현재 보통주와 우선주의 시가배당률은 각각 2.1%, 4.0%인데 배당금만 2003년 수준으로 회복 되어도 확실히 고배당주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 이렇게 배당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보통주보다는 역시 주가가 저렴하고 액면배당률이 높은 우선주가 더 매력적이다. 과연 LG생활건강이 턴어라운드에 성공해 예전의 영광을 되찾고 차석용 대표이사를 스타 CEO의 반열에 올릴 수 있을 것인지 주목해보자.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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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 오모사
    최준철님이 권하신 보라빛 소가 온다를 보면

    앞으로의 대표이사는 회사를 경영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오타구가 있는 마케터여야 살수 있다고 했읍니다

    선택과 집중 좋은 말인데

    글쎄요. 비합리적으로 흐르던 회사를 합리적으로 만드는 것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지금 시기가 논리적, 합리적 사고만 가지고는 부족한 시기라고 하지 않습니까?

    헤라나, 설화수 결코 광고로 만들어진 브랜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휘나 더후를 광고로 해서 이겨보겠다는 생각이 타당한지......
    2005.05/19 01:08 답글쓰기
  • 오모사
    2005.05/19 01:08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seobby
    1사분기 실적 발표와 최근 눈에 띄는 TV광고 등은 CEO를 중심으로 한
    기업내부의 변화를 나타내는 단초라는데는 동의합니다.
    저도 4월 자유게시판에 그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글을 올린 적이 있으니깐요.

    하지만 문제는 주변 경쟁자들이 다들 만만치 않은 기업들인데다가,
    배당 및 각종 상황들이 아주 매력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현 주가 수준이 높은 편이라는데서 주저했습니다.

    고가 화장품을 중심으로 한 분야에서 보다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는 징조를 보이거나,
    정말 획기적인 제품의 출시가 성공할 것 같거나,
    현재의 상황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주가가 보다 많이 빠지기 전에는
    버리기는 아깝지만 선뜻 손이 안 가는 계륵같은 주식으로 남을 듯 합니다.
    2005.05/19 18:41 답글쓰기
  • seobby
    2005.05/1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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