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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리코, 복사기의 또 다른 이름
◇ 복사기의 또 다른 이름
용산 미군 부대에서 카투사 생활을 할 당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미군들이 냉장고, 에어컨, 컴퓨터 할 것 없이 모두 월풀, GE, 하니웰, 컴팩 등 미국 제품을 쓰는데 한국 제품을 사용하는 곳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복사기였다. 이유인즉슨 복사기는 쓰다 보면 종이가 끼거나 해서 수리를 해야 하고 카트리지도 자주 갈아줘야 하는데 애프터서비스가 잘 안 되면 무척이나 불편하단 것이었다. 때문에 군 생활 내내 제록스가 아닌 신도리코 복사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복사기의 사용 이유가 미군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닌 모양이다. 신도리코38,400원, ▲150원, 0.39%는 단 한번도 국내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으며 지금도 약 47%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복사기의 원조인 제록스나 혁신으로 무장한 일본의 캐논이 토종업체에 밀린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후지제록스와 캐논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각각 24% 수준으로 신도리코와 격차가 크다. 삼성 조차도 복사기 시장에서 쓴 맛을 봤으니 꼭 토종업체이기 때문에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건 아닌 듯 하다.
<신도리코의 제품들>
시장점유율만큼이나 실적 또한 눈부시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매출액은 2973억, 3427억, 5143억, 6159억으로 성장했고 내수가 최악이었다는 작년에도 6077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최근 4년간 순이익 또한 매년 많게는 600억, 적게는 450억원 내외를 기록했다. 이것저것 하는 회사가 아니라 오로지 한 우물만 파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준이다. 나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신도리코를 살펴보자.
◇ 신도리코의 가치(Value)
신도리코38,400원, ▲150원, 0.39%의 경쟁력의 원천을 얘기할 때 많은 요소들이 거론된다. 대표적인 것이 쾌적한 공장 시설이다. 근로자의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갤러리에 정원까지 갖춘 신도리코 아산 공장은 신문 기사의 단골 손님이다. 고용의 안정성도 빼놓을 수 없다. 연봉이 매우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인위적 감원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고용을 보장하는 정책을 사용함으로써 직원의 충성도를 유지하고 있다. 혹자는 성공적인 2세 경영을 얘기하기도 한다. 창업주인 고 우상기 회장도 뛰어난 경영능력을 발휘했지만 우석형 회장이라는 후계자를 잘 육성함으로써 계속 기업으로서 더 발전해나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신도리코 아산 공장>
모두 일리 있는 얘기다. 하지만 측정이 힘든 주관적 영역이 많고 비즈니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으로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좀더 관점을 좁힐 필요가 있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신도리코의 핵심적인 가치(Value)를 짚어보라면 우수한 비즈니스 모델, 촘촘한 영업망, 탁월한 재무구조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맥도날드는 햄버거에서 마진을 남기지 않고 감자튀김과 콜라에서 마진을 남긴다는 얘기가 있다. 또한 질레트는 면도기에서 마진을 남기지 않고 면도날에서 마진을 남긴다. 마찬가지로 신도리코도 복사기가 아니라 카트리지에서 높은 마진을 남긴다. 감자튀김, 콜라, 면도날, 카트리지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같은 회사의 제품에서만 제대로 작동된다는 점이며 두 번째는 빨리 소모되기 때문에 반복 구매가 쉽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신도리코 복사기 사업의 비밀이다.
우수한 비즈니스 모델은 촘촘한 영업망을 통해 구현된다. 추가 구매되는 카트리지에서 마진을 남기는 사업이므로 복사기 한 번 팔면 끝이라는 식의 사고로는 복사기 사업을 해나갈 수 없다. 복사기의 고장을 고쳐주고 카트리지를 계속 공급하는 영업망 구축은 필수 사항이지만 금방 해낼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영업망 차이로 인해 신도리코와 해외업체와의 시장 점유율이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신도리코는 현재 전국에 지사 9개소, 서비스센터 12개, 판매점 500개, 네트워크 150여 점포가 있으며, 1000여 명이 판매일선에서 뛰고 있다.
사무실에 있다 보면 신도리코 영업사원이 들어와 명함을 돌리고 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대부분 기업체 과장, 부장 명함을 받아 오라는 임무를 부여 받은 신입 사원들이다. 신도리코의 판매 사원은 대졸자로 구성되는 것으로 유명하며 신제품이 출시되면 이를 판매로 연결시키는 핵심 조직이다.
신도리코는 창업 이래 적자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다. 허튼 곳에 돈을 써 본 적도 없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회사 내부에 돈이 쌓여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규모가 만만치 않다. 현재 시가총액이 6200억원인데 현금보유액만 3000억원에 이른다. 총자산 6090억 중 반이 현금성 자산인 셈이다. 차입금은 없고 매입채무, 퇴직급여충당금 등 부채를 다 합쳐봐야 720억원에 불과하다. 작년에는 이자수익만 72억원을 올렸다. 이렇게 탄탄한 재무구조는 경영의 안정성을 높일 뿐 아니라 과감한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원천이 된다. 아산 공장과 중국 청도 공장도 그 규모가 적지 않지만 모두 빚 없이 마련했다. IMF와 같은 극한 상황이 다시 와도 신도리코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 내수기업에서 수출기업으로
1960년에 창립되어 복사기를 수입해 판매하던 신도교역이 1970년 일본 리코사와 합작하며 양 사의 이름을 합친 신도리코가 되었다. 국내 합작회사의 운명이란 게 그렇듯이 수출보다는 국내 시장 개척이나 현지 생산이 우선이다. 수출은 다른 나라의 회사와 하건 직접 하건 기술과 브랜드를 가진 해외 투자사의 문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합작회사로 출발한 신도리코도 2000년까지는 전형적인 내수 기업이었다.
수출기업으로의 변모는 대규모 수출 계약에서 감지되었다. 2000년에 렉스마크와 레이저 프린터 3억 달러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2001년에는 합작선인 리코에 3억 달러어치의 복사기를 납품하기로 계약했다. 두 계약 모두 신도리코에 큰 변화를 의미했다.
우선 렉스마크와의 계약은 납품 아이템이 복사기가 아니라 레이저 프린터라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이 계약을 기점으로 신도리코는 레이저 프린터 시장에 진출했다. 물론 수출은 렉스마크로의 납품이고 내수는 블랙풋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통해서였다. 레이저 프린터도 카트리지 판매가 핵심이라는 점에서 복사기 만큼이나 수익성 좋은 사업이다. 또한 디지털화에 따라 줄어드는 복사기 수요를 벌충하는 새로운 매출처를 찾은 셈이다. 현재 레이저 프린터는 신도리코 매출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리코와의 계약은 리코로부터 배운 기술을 다시 리코로 역수출하는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45년 동안 꾸준히 키워온 기술력, 원가 경쟁력 등을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스승으로부터 인정 받았다는 뜻이다. 그 동안의 신뢰 관계나 일본 내의 높은 원가 수준으로 볼 때 계약 물량은 장기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핵심적으로 해 오던 사업 분야이므로 큰 무리는 없다.
<신도리코 제품 수출액 추이>
(단위 : 천원)
내수기업에서 수출기업으로의 변화는 분명 일장일단이 있다. 장점이라고 하면 역시 외형의 증가와 매출 포트폴리오의 다변화를 들 수 있다. 복사기의 디지털화라는 이슈가 있고 신도리코도 디지웍스라는 제품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기존 수요의 대체라는 점에서 큰 성장을 찾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은 단기간에 매출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그러나 자체 브랜드 수출이 아니라 OEM(단순생산위탁)에서 좀더 나은 수준인 ODM(설계위탁방식)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신뢰 관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두 개 업체에 대부분의 물량을 의존하고 있으며 납품을 하다 보니 마케팅, 네트워크 등 초기 비용은 적게 드나 마진이 내수에 비해 낮게 고정되는 바람에 매출은 증가하나 영업이익률이 점차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물론 중국 청도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원가율이 떨어지는 효과가 있으나 내수에서 맛보던 짜릿한 고마진보단 원가율 싸움을 해야 하는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 주식시장에서의 브랜드
요즘 주주정책에 관심있는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3대3대3대1의 원칙(기업 이익을 3:3:3:1로 주주, 직원, 재투자, 공익에 쓰는 것)’의 원조가 바로 신도리코다. 이 원칙은 나라를 사랑하고 직장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고 우상기 회장의 삼애정신(三愛精神)에서 비롯되었다. 말은 쉽지만 어디 행동도 그럴까? 사람이든 기업이든 실천이 힘든 건 매한가지다. 그러나 신도리코는 원칙의 창시자이면서 꾸준히 말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시장에서 신뢰를 쌓아왔다.
예를 들어 배당성향을 보자. 1999년부터 2004년까지 6년 동안 신도리코의 배당성향은 39%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이익이 성장하는 바람에 배당금 또한 상향 조정되었고 신도리코의 주주들은 고배당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주가가 올랐지만 지금도 신도리코의 시가배당률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신도리코 배당정책>
또 하나 회자되는 이야기는 99년 벤처 광풍 때 그 많은 현금을 들고 있었고 나름대로 IT업이라 할 수 있는데 복사기 한 우물만 판다는 이유로 단 한 건도 벤처 투자를 집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신도리코는 벤처 광풍의 후유증에서 비켜날 수 있었고 디지털 복사기, 레이저 프린터 등의 차세대 제품 개발에 온 힘을 기울일 수 있었다.
이렇게 주식시장에서 신도리코 브랜드는 원칙에 어긋남 없이 한 우물을 파는 투명한 기업의 대명사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른 우려가 요즘 같은 활황장 속에서도 주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우선 사무의 디지털화로 복사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물론 신규 진출한 레이저 프린터의 경우 오히려 디지털 문서의 출력이 늘면서 전망이 밝은 편이지만 신도리코가 국내에 처음 출시한 팩스가 현저히 사용 감소 추세를 보인다는 면에서 복사기도 결국 같은 운명을 걷지 않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프린터는 프린터대로 삼성, 델, HP 등 대기업들이 주력 사업으로 선언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질 위험이 있다. ODM의 한계도 지적된다.
결국 신도리코가 베스트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계속 돌파구를 찾아가며 성장과 마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영업에 대한 주식시장의 우려를 잠재워야 한다. 이미 회사 자체는 투명함, 정직함이란 브랜드를 가지고 있으므로 만약 좋은 실적이 나올 경우 주가로 반영되는 속도는 빠를 것이란 점은 긍정적이다. 향후 신도리코의 실적을 결정할 디지털 복합기, 중국 청도 공장, 추가 수출 물량 계약 등에 주목하며 신도리코가 묵묵히 걸어가는 길을 따라가보자.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용산 미군 부대에서 카투사 생활을 할 당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미군들이 냉장고, 에어컨, 컴퓨터 할 것 없이 모두 월풀, GE, 하니웰, 컴팩 등 미국 제품을 쓰는데 한국 제품을 사용하는 곳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복사기였다. 이유인즉슨 복사기는 쓰다 보면 종이가 끼거나 해서 수리를 해야 하고 카트리지도 자주 갈아줘야 하는데 애프터서비스가 잘 안 되면 무척이나 불편하단 것이었다. 때문에 군 생활 내내 제록스가 아닌 신도리코 복사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복사기의 사용 이유가 미군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닌 모양이다. 신도리코38,400원, ▲150원, 0.39%는 단 한번도 국내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으며 지금도 약 47%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복사기의 원조인 제록스나 혁신으로 무장한 일본의 캐논이 토종업체에 밀린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후지제록스와 캐논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각각 24% 수준으로 신도리코와 격차가 크다. 삼성 조차도 복사기 시장에서 쓴 맛을 봤으니 꼭 토종업체이기 때문에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건 아닌 듯 하다.
<신도리코의 제품들>
시장점유율만큼이나 실적 또한 눈부시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매출액은 2973억, 3427억, 5143억, 6159억으로 성장했고 내수가 최악이었다는 작년에도 6077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최근 4년간 순이익 또한 매년 많게는 600억, 적게는 450억원 내외를 기록했다. 이것저것 하는 회사가 아니라 오로지 한 우물만 파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준이다. 나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신도리코를 살펴보자.
◇ 신도리코의 가치(Value)
신도리코38,400원, ▲150원, 0.39%의 경쟁력의 원천을 얘기할 때 많은 요소들이 거론된다. 대표적인 것이 쾌적한 공장 시설이다. 근로자의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갤러리에 정원까지 갖춘 신도리코 아산 공장은 신문 기사의 단골 손님이다. 고용의 안정성도 빼놓을 수 없다. 연봉이 매우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인위적 감원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고용을 보장하는 정책을 사용함으로써 직원의 충성도를 유지하고 있다. 혹자는 성공적인 2세 경영을 얘기하기도 한다. 창업주인 고 우상기 회장도 뛰어난 경영능력을 발휘했지만 우석형 회장이라는 후계자를 잘 육성함으로써 계속 기업으로서 더 발전해나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신도리코 아산 공장>
모두 일리 있는 얘기다. 하지만 측정이 힘든 주관적 영역이 많고 비즈니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으로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좀더 관점을 좁힐 필요가 있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신도리코의 핵심적인 가치(Value)를 짚어보라면 우수한 비즈니스 모델, 촘촘한 영업망, 탁월한 재무구조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맥도날드는 햄버거에서 마진을 남기지 않고 감자튀김과 콜라에서 마진을 남긴다는 얘기가 있다. 또한 질레트는 면도기에서 마진을 남기지 않고 면도날에서 마진을 남긴다. 마찬가지로 신도리코도 복사기가 아니라 카트리지에서 높은 마진을 남긴다. 감자튀김, 콜라, 면도날, 카트리지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같은 회사의 제품에서만 제대로 작동된다는 점이며 두 번째는 빨리 소모되기 때문에 반복 구매가 쉽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신도리코 복사기 사업의 비밀이다.
우수한 비즈니스 모델은 촘촘한 영업망을 통해 구현된다. 추가 구매되는 카트리지에서 마진을 남기는 사업이므로 복사기 한 번 팔면 끝이라는 식의 사고로는 복사기 사업을 해나갈 수 없다. 복사기의 고장을 고쳐주고 카트리지를 계속 공급하는 영업망 구축은 필수 사항이지만 금방 해낼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영업망 차이로 인해 신도리코와 해외업체와의 시장 점유율이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신도리코는 현재 전국에 지사 9개소, 서비스센터 12개, 판매점 500개, 네트워크 150여 점포가 있으며, 1000여 명이 판매일선에서 뛰고 있다.
사무실에 있다 보면 신도리코 영업사원이 들어와 명함을 돌리고 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대부분 기업체 과장, 부장 명함을 받아 오라는 임무를 부여 받은 신입 사원들이다. 신도리코의 판매 사원은 대졸자로 구성되는 것으로 유명하며 신제품이 출시되면 이를 판매로 연결시키는 핵심 조직이다.
신도리코는 창업 이래 적자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다. 허튼 곳에 돈을 써 본 적도 없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회사 내부에 돈이 쌓여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규모가 만만치 않다. 현재 시가총액이 6200억원인데 현금보유액만 3000억원에 이른다. 총자산 6090억 중 반이 현금성 자산인 셈이다. 차입금은 없고 매입채무, 퇴직급여충당금 등 부채를 다 합쳐봐야 720억원에 불과하다. 작년에는 이자수익만 72억원을 올렸다. 이렇게 탄탄한 재무구조는 경영의 안정성을 높일 뿐 아니라 과감한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원천이 된다. 아산 공장과 중국 청도 공장도 그 규모가 적지 않지만 모두 빚 없이 마련했다. IMF와 같은 극한 상황이 다시 와도 신도리코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 내수기업에서 수출기업으로
1960년에 창립되어 복사기를 수입해 판매하던 신도교역이 1970년 일본 리코사와 합작하며 양 사의 이름을 합친 신도리코가 되었다. 국내 합작회사의 운명이란 게 그렇듯이 수출보다는 국내 시장 개척이나 현지 생산이 우선이다. 수출은 다른 나라의 회사와 하건 직접 하건 기술과 브랜드를 가진 해외 투자사의 문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합작회사로 출발한 신도리코도 2000년까지는 전형적인 내수 기업이었다.
수출기업으로의 변모는 대규모 수출 계약에서 감지되었다. 2000년에 렉스마크와 레이저 프린터 3억 달러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2001년에는 합작선인 리코에 3억 달러어치의 복사기를 납품하기로 계약했다. 두 계약 모두 신도리코에 큰 변화를 의미했다.
우선 렉스마크와의 계약은 납품 아이템이 복사기가 아니라 레이저 프린터라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이 계약을 기점으로 신도리코는 레이저 프린터 시장에 진출했다. 물론 수출은 렉스마크로의 납품이고 내수는 블랙풋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통해서였다. 레이저 프린터도 카트리지 판매가 핵심이라는 점에서 복사기 만큼이나 수익성 좋은 사업이다. 또한 디지털화에 따라 줄어드는 복사기 수요를 벌충하는 새로운 매출처를 찾은 셈이다. 현재 레이저 프린터는 신도리코 매출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리코와의 계약은 리코로부터 배운 기술을 다시 리코로 역수출하는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45년 동안 꾸준히 키워온 기술력, 원가 경쟁력 등을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스승으로부터 인정 받았다는 뜻이다. 그 동안의 신뢰 관계나 일본 내의 높은 원가 수준으로 볼 때 계약 물량은 장기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핵심적으로 해 오던 사업 분야이므로 큰 무리는 없다.
<신도리코 제품 수출액 추이>
(단위 : 천원)
내수기업에서 수출기업으로의 변화는 분명 일장일단이 있다. 장점이라고 하면 역시 외형의 증가와 매출 포트폴리오의 다변화를 들 수 있다. 복사기의 디지털화라는 이슈가 있고 신도리코도 디지웍스라는 제품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기존 수요의 대체라는 점에서 큰 성장을 찾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은 단기간에 매출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그러나 자체 브랜드 수출이 아니라 OEM(단순생산위탁)에서 좀더 나은 수준인 ODM(설계위탁방식)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신뢰 관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두 개 업체에 대부분의 물량을 의존하고 있으며 납품을 하다 보니 마케팅, 네트워크 등 초기 비용은 적게 드나 마진이 내수에 비해 낮게 고정되는 바람에 매출은 증가하나 영업이익률이 점차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물론 중국 청도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원가율이 떨어지는 효과가 있으나 내수에서 맛보던 짜릿한 고마진보단 원가율 싸움을 해야 하는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 주식시장에서의 브랜드
요즘 주주정책에 관심있는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3대3대3대1의 원칙(기업 이익을 3:3:3:1로 주주, 직원, 재투자, 공익에 쓰는 것)’의 원조가 바로 신도리코다. 이 원칙은 나라를 사랑하고 직장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고 우상기 회장의 삼애정신(三愛精神)에서 비롯되었다. 말은 쉽지만 어디 행동도 그럴까? 사람이든 기업이든 실천이 힘든 건 매한가지다. 그러나 신도리코는 원칙의 창시자이면서 꾸준히 말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시장에서 신뢰를 쌓아왔다.
예를 들어 배당성향을 보자. 1999년부터 2004년까지 6년 동안 신도리코의 배당성향은 39%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이익이 성장하는 바람에 배당금 또한 상향 조정되었고 신도리코의 주주들은 고배당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주가가 올랐지만 지금도 신도리코의 시가배당률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신도리코 배당정책>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배당성향 |
43.08 |
45.28 |
45.15 |
39.07 |
39.78 |
46.01 |
주당배당금 |
2,000 |
2,000 |
2,250 |
2,500 |
2,500 |
2,250 |
(배당성향 : %, 주당배당금 : 원)
또 하나 회자되는 이야기는 99년 벤처 광풍 때 그 많은 현금을 들고 있었고 나름대로 IT업이라 할 수 있는데 복사기 한 우물만 판다는 이유로 단 한 건도 벤처 투자를 집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신도리코는 벤처 광풍의 후유증에서 비켜날 수 있었고 디지털 복사기, 레이저 프린터 등의 차세대 제품 개발에 온 힘을 기울일 수 있었다.
이렇게 주식시장에서 신도리코 브랜드는 원칙에 어긋남 없이 한 우물을 파는 투명한 기업의 대명사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른 우려가 요즘 같은 활황장 속에서도 주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우선 사무의 디지털화로 복사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물론 신규 진출한 레이저 프린터의 경우 오히려 디지털 문서의 출력이 늘면서 전망이 밝은 편이지만 신도리코가 국내에 처음 출시한 팩스가 현저히 사용 감소 추세를 보인다는 면에서 복사기도 결국 같은 운명을 걷지 않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프린터는 프린터대로 삼성, 델, HP 등 대기업들이 주력 사업으로 선언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질 위험이 있다. ODM의 한계도 지적된다.
결국 신도리코가 베스트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계속 돌파구를 찾아가며 성장과 마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영업에 대한 주식시장의 우려를 잠재워야 한다. 이미 회사 자체는 투명함, 정직함이란 브랜드를 가지고 있으므로 만약 좋은 실적이 나올 경우 주가로 반영되는 속도는 빠를 것이란 점은 긍정적이다. 향후 신도리코의 실적을 결정할 디지털 복합기, 중국 청도 공장, 추가 수출 물량 계약 등에 주목하며 신도리코가 묵묵히 걸어가는 길을 따라가보자.
최준철 wallstreet@vip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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