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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딸깍발이의 ‘아름다운 유산’

[프레시안] 고 서성환 회장 유족, 모자가정 '느티나무' 되고자 50억 기부

대기업 오너들의 변칙상속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때에 한 기업인의 유산기부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국내 최대화장품 기업이자 '딸깍발이' 개성상인으로 유명한 (주)태평양 고 서성환 회장과 그의 유족들의 '아름다운 기부'가 그것이다.


지난 1월 타계한 서성환 회장은 생전에도 남다른 기부활동으로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에 앞장서 왔다.

가난한 모자가정의 '커다란 느티나무'

(주)태평양 설립자 고 서성환 회장의 유가족들은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의 태평양 본사에서 저소득 모자가정의 생활자립 지원을 위한 ‘장원 서성환의 아름다운 세상’ 기금을 아름다운재단(이사장 박상증)에 건네는 기금전달식을 가졌다.

이 기금은 유가족들이 태평양 창업자인 서성환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조성한 것으로, 고인이 남긴 유산인 태평양 주식 7만4천주와 해당주식에 대한 2002년도 이익배당금 전액 등 총 50억원 규모다.

서성환 회장의 유가족이 모인 가운데 실시된 이날 전달식에서 유가족 대표이자 고인의 부인인 변금주 여사는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에게 직접 기금을 전달했다.

변여사는 가족대표로 인사를 하며 “늘 남을 돕는 데 앞장선 고인의 뜻을 받들어 소외계층을 위해 유산을 기부하기로 온 가족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상증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은 “서 회장의 유지에 따른 이번 기부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커다란 느티나무를 세운 셈"이라며 "재단은 충실한 기금운영을 통해 고인의 아름다운 선행이 온 세상에 펼쳐지고 결실을 맺게 할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한국에서 시작된 노블리스 오브리제

아름다운재단은 "고 서회장의 뜻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원금은 보전하고 운영수익을 재단으로 사업을 진행키로 했다"며 "운영수익은 저속득 모자가정의 자활을 위한 창업 지원에 쓰이게 되며, 일정기간후 회수된 기금은 또다른 저소득 모자가정의 자립기반 국축을 위해 지원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단측은 "우리 사회지도층은 개인적인 기부나 유산의 사회 환원에 인색해 시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얻지 못해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고 서성환 회장의 사회환원 뜻도 아름답지만 유산상속을 둘러싼 법정공방이 빈번한 현실에서 유족들의 선의의 결정은 우리 사회 '노블리스 오브리제'의 새로운 시작이라 할만하다"고 그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재단은 이어 "저소득 모자가정은 고용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 빈곤을 탈피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런 빈곤은 세대로 이전돼 자녀들 역시 빈곤을 그대로 물려받는 경향이 높다"며 "기금을 통해 저소득 모자가정의 창업과 사업진행, 생계를 지원해 저소득 모자가정 세대가 빈곤을 탈피하고 가난이 이전되는 것을 방지하도록 계속해 실질적인 자활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많은 기업이 사회에 재산을 환원, 기부하고 있지만 기업내부에 재단을 만들어서 하는 경우가 많아 크게 보면 사내에 유보되는 모습이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이렇게 큰 금액을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완전히 별도의 재단에 기부한 결단을 내린 것에 감사를 드린다”며 “이번 전달식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블리스 오브리제’의 새로운 모범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인 서성환 누구인가


고인의 미망인인 변금주여사가 가족을 대표해 '아름다운재단' 약정서를 전달하는 모습. 아름다운재단은 서 회장이 기부한 50억원의 유산을 토대로 저소득 모자가정을 위한 '장원 서성환의 아름다운세상' 기금을 운영하게 된다.

올해 1월 별세한 태평양 창업자 서성환 회장은 1963년 중앙대학교에 성환 장학금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1973년에 사재를 출연하여 태평양장학문화재단을 설립하고, 1976년 육영사업을 위한 태평양학원 설립했으며, 1982년 태평양복지재단을 설립해 지원하는 등 생전에 남다른 기부활동을 해왔다.

고인이 생전에 활동해온 한국차문화협회는 협회지 3~4월호에 고인을 기리며 다음과 같은 글을 실은 바 있다. 고인이 어떤 분인가를 알기 위해 이 글을 전제한다.

"주식회사 태평양의 창업주인 장원(粧源) 서성환(徐成煥)회장은 1924년 7월 14일(음력)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 신답리(黃海道 平山郡 積岩面 新沓里)에서 서대근(徐大根)공과 윤독정(尹獨亭) 여사의 3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이천(利川)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고려 개국공신의 가문으로 알려져 왔다.

부친이 개성으로 이주하여 1932년부터 개성 송악산 밑에서 창성상회(昌盛商會)라는 잡화상으로 화장품을 취급하기 시작하다가 가내수공업으로 화장품을 제조하기 시작하였다. 1939년 중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을 도와 가업인 화장품 제조에 참여하게 된다. 1943년에는 개성 고려백화점에 화장품부를 개설하고 집에서 생산한 제품을 가져다 직접판매하기 시작하는데 당시로서 직접 제조와 소매를 병행하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때부터 하루 2~3시간만 자면서 1인 4역을 하며, 부족한 원료를 구하러 원산까지 다니는 등 화장품 사업에 전념하게 되었다.

해방 후 국내 경제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특히 제조업분야는 기반시설이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사업을 한다는 사람들은 모두 판매업에 뛰어들었지 제조업에 손을 대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서성환 회장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화장품 품질은 조잡한 것이 많아 크림의 경우는 날씨가 더우면 끓어 넘치고 로션은 기름이 분리되어 맹물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품질만 좋으면 얼마든지 팔리는 상황이었습니다.”고 한다. 서회장은 이때부터 품질향상과 최고 제품을 만들어야 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서성환 회장이 개성에서 본격적으로 화장품제조에 참여할 당시 송악산 앞에서 국군과 북한군이 교전하는 불안한 정치환경에서는 사업의 꿈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여 서울로 올라와 1947년 회현동(지금의 신세계백화점 건너편 남산터널 입구부근)에서 독립하여 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생산한 품목은 개성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안수, 구리므, 포마드 등이었는데 최초로 태평양의 상표명을 붙인 ‘메로디크림’을 발매(48년)하기 시작하였다.

원료부족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서울에서 사업이 자리 잡을 만하니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부산 초량동으로 피난하게 되지만 생산을 멈추지 않았다. 서울에서 생산에서 참여했던 여직원들이 찾아와 내 일처럼 일하고, 거래처에서 그 동안 쌓인 신용과 신의로 우선적으로 원료와 용기를 공급 받아 사업에 안정을 기하면서 최초로 순 식물성 포마드인 ‘ABC포마드’발매(51년)하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낮에는 생산하고 밤에는 포장하여 부산뿐만 아니라 대전 대구까지 판매노선을 개척하였으며, 거래처의 신뢰로 판매 후 바로 현금수금이 이루어져 여관방에서 베개 삼아 잠을 청할 정도로 사업이 번창하였다.

서성환 회장이 ‘마케팅의 귀재’라 불리 우는 이유는 화장품 유통사에 혁명적인 제도를 도입한 것 이외에도 작명(브랜드)에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알기 쉽고, 부르기 편한 브랜드 작명을 선호했는데 태평양, ABC, 아모레, 타미나, 미보라, 나그랑, 탐스핀, 화니핀, 미로 등이 있다. 또한 광고에서도 태평양의 광고는 한국 광고사에 많은 기록을 남겨왔는데 최초로 시도한 매체광고 방법(70년 조선일보에 한국 최초 신문전면 원색 광고 등)과 새로운 광고기법(66년 아모레CM송 도입 등)으로 유명하다. 특히 화장품 광고모델전략은 제품홍보의 특성에 맞게 선정하는 세심한 면을 보였는데 초기에는 김보애, 최무룡, 이민자 등 유명 연예인 전략과 시장을 주도할 때는 주미, 금보라, 황신애, 옥소리, 이영애 등 신인 모델을 발굴 육성함으로 태평양의 모델은 연애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태평양이 70년대 초중반까지 7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면서 업계 1위를 굳건히 지켜왔던 것은 기술우위로 품질이 우수한 신제품을 내놓아 소비자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았고, 서성환 회장이 항상 “소비자를 속이지 말고 소비자에게 더 큰 이익을 주도록 하라”고 강조하며 소비자에게 한 발 더 가깝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그 사례로써 여성 전문 교양 잡지인 <화장계>발간(58년, ‘향장’전신), 미용상담실 개설(61년), 미용사원제도 도입(63년), 최초 소비자 전담 부서인 소비자과 창설(1974년), 미용지식 대중화를 위한 아모레 일번지 개설(1984년), 메이컵 교실 개설, 피부미용분석시스템 개발(85년) 등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향상과 만족을 주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미용관리를 위한 피부5단계 화장법 정립(1968년), 오! 마이 러브 캠페인(71년), 고객체험의 장으로 명동에 the Amore 개설 등 의 화장문화를 선도하여 왔다. 특히 71년 국내 최초 메이크업 캠페인 전개는 입체화장의 개념을 도입하여 화장패턴을 개발하고 소비자의 욕구에 부합한 유행색을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수요대응 마케팅에서 수요를 창조하는 마케팅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소비자 문화의 선도는 1993년에 ‘무한책임주의’ 선언으로 연결되어 소비자에 신뢰 받는 기업이미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서성환 회장의 또 다른 일면을 볼 수 있는 것이 차(茶)사업 진출이다. 1970년대 중반 서회장이 차사업을 시작할 당시, 녹차를 마시는 인구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으며, 녹차의 생활화는 마치 바위에 계란 던지기처럼 무모한 짓으로 비유되어 임원진들이 반대를 많이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茶)사업을 강행한 서성환 회장은 “어느 나라를 가 보아도 나라마다 각각 독특한 차가 한가지씩 있는데 우리나라는 뚜렷이 내세울게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 사업만은 누군가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꼭 한국을 대표하는 차로 자리를 굳힐 생각입니다”라 말했다.

다원조성을 추진하면서 서성환 회장은 막막하고 암담하기만 했을 만한 상황에서도, 돌과 잡초만 무성한 불모지의 땅을 옥토로 바꿔 녹색혁명을 이룩한 것이다. 이는 한 기업인의 사명감과 개척정신으로 얻어진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녹차의 생활화를 위하여 백만인 무료시음운동을 비롯하여 월간 잡지 <설록차>발행(83년), 녹차 국제세미나, 차문화를 육성하기 위한 다예강좌 등 지속적인 계몽활동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그의 강한 집념과 평생의 차(茶)문화 사업을 정리하는 오 설록 박물관(2001년)을 제주에 개관함으로써 관광명소로써 역할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 차문화를 해외 관광객에 알리면서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갖게 했다. 또한 지난 20여년간 지속적인 투자로 우리 고유의 전통차인 녹차의 품질을 높이고, 녹차를 대중의 생활차로 발전시켜 전통문화를 계승해온 서성환 회장이야말로 투철한 기업가 정신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서성환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 기업인이라 할 수 있다. 1959년 태평양화학공업주식회사로 전환한 이래 주주에게 고 배당을 매년 해왔으며, IMF로 어려운 상황에서는 오히려 배당률이 증가되었다. 그리고 인류에 봉사한다는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윤리를 실천했다.

‘성환장학금’을 1963년부터 중앙대학교에 기부해온 서성환 회장은 1973년 태평양장학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인재육성을 위한 장학사업, 학술연구지원사업, 여성생활문화를 개척하는 컬춰렛 선발 논문공모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후 육영사업에 뜻을 두고 학교법인 태평양학원을 설립(76년)하여 교육투자를 하고 있으며, 국내 최초의 기업박물관인 태평양 박물관을 개관(79년)하였으며, 헤어, 의상, 주택 등 9개 분야의 한국 생활문화 100년을 정리, 편찬(95년)하여 학문적 연구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화장사관은 우리나라 고대부터 대한제국시대까지 각종 화장품 용기와 화장용구, 장신구들을 통하여 한국인의 화장과 화장품의 변천사를 조명해낸 박물관으로서 한국에서는 물론 세계에서 유일한 화장품 박물관이었다. 그리고 다예관(81년 개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차박물관으로서 한국 차문화 구명(究明)에 앞장 서 왔는데 한국의 다성인 초의선사 영정과 친필 저서인 우리나라 유일의 다예서인 동다송(東茶頌) 등을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태평양박물관 소장명품 특별전 개최(87년), 국내 최초 9개 도시 전시 순회전(88년), 한국여성의 멋 오천년전을 개최(94년) 등을 통하여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전통문화 창달에도 공헌하였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태평양의 이미지를 새롭게 인식시킴과 아울러 전통 화장문화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서회장은 사회복지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사회복지법인 태평양 복지재단(82년)도 설립하였다. 태평양복지재단에서는 사회복지시설 지원사업과 후생복지사업, 사회복지 학술연구비 사업을 구분하여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저소득 계층의 자녀들이 불우한 환경을 딛고 건강한 가치관을 지닌 사회일원으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교육기회제공을 위한 장학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지난 50여년간 서성환 회장은 아호 장원(粧源)이란 말 그대로 화장품 업계에 원조요 업계 1인자로 군림(君臨)해 온 것이다. 이는 서회장만이 갖고 있는 특질과 외유내강형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최초와 최고를 추구하면서 집요하게 도전하는 자세와 개척정신을 유지해왔으며, 남이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강한 승부욕, 기업을 하면서도 인류와 사회, 소비자에게 봉사를 하고자 하는 사명감을 갖고 실천해왔다. 또한 항상 겸손하면서도 근면하고 정직한 태도로 솔선수범해 왔고, 태평양의 바다를 품에 안을 정도의 넓은 포용력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실패한 직원은 반드시 한번의 기회를 더 주었다. 그리고 조향기술에 대한 지식의 전문성과 감각은 연구원들도 자문을 구할 정도로 해박하였으며 제품에 대한 탁월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경영학계에서 주는 ‘참 경영인상’ 수상(99년)의 의미는 그의 업적에 대한 인정과 아울러 한 평생 아름다움과 건강을 창조해 오직 한 길을 걸어온 기업인에 대한 영원한 귀감을 삼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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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 박서희
    사람들은 오래 살기 위해 엉뚱한(?) 일들을 많이 합니다.
    정말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는 것이 오래오래 사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그 누군가가 많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알고 지내는 지인들의 가슴속에라도 영원히 남을
    향기를 만들고 싶어지는군요.
    2003.06/30 23:50 답글쓰기
  • 박서희
    2003.06/3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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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루
    내가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될 것 같구요
    내가 있어 다른사람이 행복해질수 있었다면 아마 마음에 영원히 남아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03.07/02 08:10 답글쓰기
  • 알루
    2003.07/0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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