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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장의 추억

중학교 사회, 도덕 시간에 유독 국가관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썼던 교과서의 내용은 주로 반공과 우리나라의 놀라운 경제성장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특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20%를 넘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복리의 개념을 이해하고 나서야 국가 전체 경제가 20%씩 성장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기업도 20%씩 성장하면 4년 뒤 두 배가 되는데 하물며 국가에 대해서는 말 해서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고성장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을지 모른다. 국내 경기가 침체되고 세계경제가 좋지 않아 GNP성장률이 3%에 미칠지도 모른다는 발표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사이클과 구조 자체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다. 그 징후는 여러 군데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저금리 상황인데도 신규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이 확보해둔 이익잉여금조차도 꽉 쥐고 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돈이 되고 성장성이 살아있는 분야가 없어지고 있단 얘기다. 저금리 상황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시장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금리 이상을 넘어가는 사업을 찾기 힘든 저성장 국면에서 자금 수요의 위축은 저금리를 장기적인 추세로 정착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투자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수출 주도의 기업보다는 국내에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사업의 유지를 위해 자본지출이 필요치 않은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 성장을 담보로 높은 가격을 받는 기업들이 주목 받던 시대는 지나갔다. 성장을 위한 신사업의 리스크는 과거보다 훨씬 높아진 상황이다. 요즘 창업이 활발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판이 모두 짜있는 산업 구조 때문이다. 만들기만 하면 팔리고 비관련사업 다각화를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주영 시대의 영광은 이미 뒤안길로 사라졌다.

우리보다 먼저 저성장 국면으로 들어간 미국에서도 주가 상승이 가장 높았던 기업들은 포드나 GM 같은 제조업이 아닌 월마트, 스타벅스, 홈데포, 씨티코프 등의 서비스 기업들이었다. 미국이 걸어온 영광의 길은 70년대에는 일본, 80년대에는 한국, 90년대에는 중국으로 이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본과 기술을 어떻게 글로벌하게 배분하는가 하는 것이 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저성장 국면에서 기업들도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에셋플러스의 강방천 전무는 '투자자는 기업의 매출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먹는다'라고 말한다. 기업들도 매출 지상주의에서 탈피해 비용절감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그 이익을 주주에게 적극적으로 돌려주면서 적정 잉여금을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럴 때만 투자자들은 시장에서 기업에 대해 적절한 가치를 부여할 것이다. 이제는 빵을 키워 나눠 먹자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이미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기업들에게는 핑계일 따름이다. 바야흐로 기업의 이익을 기업의 주인인 주주와 나누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기업가들은 이해해야 한다.

Growth란 단어는 투자자에게 참 매력적이다. 투자성과도 Growth Stock이 가장 높다는 것은 지금도 불변의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Growth를 다른 의미로 재정의해야 하는 시기에 직면했다. 저성장과 저금리를 받아들이고 고성장을 추억 속에서만 간직해야 한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Growth의 정의는 중국 등 신흥개발국의 것인 것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변화의 시기에 어떤 기회를 잡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달려있다.

최준철 wallstreet@i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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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 efana
    유경찬씨가 지은 '제로시대'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2003.09/09 12:47 답글쓰기
  • efana
    2003.09/09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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