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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과 공화국

왕국과 공화국



이연결, 양조위 주연의 '영웅'이라는 영화를 보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이 등장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것은 진시황의 거대한 궁과 줄지어 서 있는 그의 신하들의 모습이다. 아무리 진시황이라지만 단 한 명을 위해 그렇게 거대한 궁과 수많은 신하들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남자라면 저렇게 한번 살아봐야지'하는 부러움이 교차하는 것은 사실이다.




옛날부터 국가의 전형적인 모형은 '왕국'이었다. 백성을 이끌어가는 왕이 존재하고 그 밑으로 층층시하의 계급이 있다. 왕국의 핵심은 국가의 소유주가 바로 왕이라는 것이다. 루이14세는 '짐은 곧 국가니라'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 당시로 본다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극을 보면 조선을 '이씨의 나라'라고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따라서 왕국에서 국가는 왕의 아들에게 물려지고 또 그 아들에게 물려지는 식으로 세습된다.

그러나 왕국이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폐해를 보이자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공화국'이다. 성장한 시민계급에 의해 주도된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왕권이 실제적인 위협을 받았고 결국 1886년 미국이 건국되면서 공화국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후 근대에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변모했다. 오늘날 세계에 남아있는 왕국은 영국, 스웨덴 등 입헌군주국가들과 중동, 동남아,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 정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필자는 왕국이 쇠락한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는 세습에 있어서의 확률게임이다. 왕권을 물려받는 자식이 세종대왕처럼 성군이면 그 나라는 크게 흥하게 된다. 반면 그렇지 못하면 바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지와 덕을 모두 갖춘 성군이 왕의 몇 안 되는 아들 중에 나온다는 것이 확률적으로 높지 않다. 나라를 처음 세운 왕은 탁월하지만 그 아들도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와 반대로 공화국에서는 국민 전체에서 지도자를 뽑기 때문에 그 확률이 올라가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는 왕의 책임감 문제다. 잘못된 판단을 하더라도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에 자리를 계속 보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하, 백성의 눈치를 그다지 보아야 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로마의 네로처럼 모든 사람을 희생시키고 자신만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국가 뿐 아니라 기업도 왕국과 공화국으로 나뉜다. 오너가 모든 경영권을 가지는 기업은 왕국이요, 주식이 널리 분포되어 있고 전문경영인이 경영권을 가지는 기업은 공화국에 해당한다. 오너가 있되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는 회사는 입헌군주국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모여 조직한 단체라는 점에서 규모와 목적의 차이가 있을 뿐 기업과 국가는 유사한 점이 많다.

물론 왕국은 악이요, 공화국은 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피해야 한다. 오너가 경영하면서도 견제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성군 CEO인 기업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왕국은 왕국대로 공화국은 공화국대로 단점을 극복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너가 모든 경영권을 갖는 왕국의 가장 큰 문제는 세습이다. 경영권이 오너의 아들에게 세습될 경우 왕국과 똑같이 확률게임을 해야 한다. 세습이 되어 버리면 검증되지 않은 2세가 막연히 잘 하기만을 기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져 버린다. IMF 이후 사라져간 해태, 삼미 등 2세 경영 기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따라서 2세도 전문경영인과 똑같이 같은 출발선에 서서 자신의 능력이 검증될 때만 왕권을 물려받아야 한다.

전문경영인이 경영권을 갖는 공화국의 가장 큰 문제는 주인의식의 부재다. 회사가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개인을 위한 결정을 내리거나 임기 중 다른 주머니를 차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경제학에서 문제 삼는 대리인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과거 전문경영인 회사의 전형으로 칭송 받았던 기아자동차가 알고 보니 비리로 얼룩졌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전문경영인에게 주인의식을 불러 일으켜 줄 보상제도와 그의 독단적 결정을 견제하는 의사기구의 설치가 요구된다. 공화국의 핵심은 1인 독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시스템에 있다.

왕국이든 공화국이든 기업이 가져야 하는 생각은 딱 한가지다. 주식회사라면 기업의 주인인 주주, 실제 기업을 이끌어가는 직원, 기업에게 토양을 제공하는 사회를 위한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기업의 결과물은 기업을 둘러싼 사람,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올바른 사고를 가지고 정도를 걸었다면 최근 일련의 사태에서 볼 수 있는 안타까운 결과들이 없었음은 물론이요, 기업이 존경 받는 사회 풍토가 조성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준철 / wallstreet@i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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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 영혼
    지배구조 문제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좋은 지적이셨습니다~!
    2003.03/18 22:45 답글쓰기
  • 영혼
    2003.03/1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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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박귀진
    왕국과 공화국이래서 생각나는건데 몇년전에 읽었던
    은하영웅전설이생각나네요
    2003.05/04 04:11 답글쓰기
  • 반박귀진
    2003.05/04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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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로몬쵸이스
    열심히 계속해서 읽어야 겠네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http://
    2007.05/11 16:30 답글쓰기
  • 솔로몬쵸이스
    2007.05/1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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