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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 안의 자산 – 일신방직(03200)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으로 본 일신방직
보물찾기형 기업 : 일신창투, 지오다노, 바디샵 등의 자회사 보유
사양 속 성장형 기업 : 저성장 산업인 방직업에서 4년 연속 매출 성장
자사주매입형 기업 : 발행주식수의 9.2%에 해당하는 자사주 보유
고배당률형 기업 : 5%대의 배당수익률
저PBR형 기업 : 장부가치의 0.24배에 거래
1. 손 안의 자산 vs 숲 속의 자산
돈을 한 푼도 못 버는 학생이더라도 의대생들에게는 유독 높은 한도액의 신용카드가 쉽게 발급된다. 이유는 신용카드사에서 의대생은 지금 당장은 돈을 못 벌지만 미래에 확실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미래의 성장성과 수익가치에 많은 점수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대생이라 해도 현재 10억원의 현금을 가지고 있는 학생보다 신용도가 좋을 수는 없다. 수입이 한 푼도 없더라도 당장 손 안에 눈에 보이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자산가라 부른다. 금융기관은 자산가를 VIP 명단에 올려 특별히 관리한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는 현실과는 반대로 지금까지 쌓아온 자산이 많은 기업보다도 미래에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기업에 더 많은 점수를 준다. 즉 자산주보다는 성장주가 더 높은 가치를 부여 받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돈을 아예 못 버는 것도 아닌데 성장성이 없다는 오해만으로 실제 가진 자산보다 턱 없는 가격을 매기기도 한다.
일신방직은 51년에 설립되어 50년 이상 꾸준히 돈을 벌며 많은 자산을 쌓아왔다. 유보율이 무려 2681%에 이른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시가총액이 장부가치의 1/5에 불과하다. 수익가치가 떨어지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4년 연속 매출액이 성장해왔고 배당도 꾸준히 주고 있다.
2. 일신방직 다시 보기
일신방직이 저평가 되어 있는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내수 침체다. 내수 경기가 위축된 만큼 의류소비가 줄어들 것이고 당연히 면사를 만드는 일신방직도 실적이 나빠지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다. 두 번째는 저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점이다. 실 만드는 기술이야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특히 중국에서 값싼 제품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방직업이 설 땅이 있겠냐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견해들이 어느 정도는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보다도 방직이라는 이미지와 선입견이 더 크게 작용하는 듯 하다.
일신방직의 매출구조를 살펴보면 수출이 76%를 차지한다. 갭, 폴로, 라코스테 등 해외유명브랜드에 일신방직의 실이 사용되고 있다. 수치로 볼 때 전형적인 내수주로 보기에는 곤란한 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내수 침체로 인한 매출 감소는 제한적이다. 미국경제의 침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작년 3319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는 전년 대비 1.8% 성장한 수치다. 올 1분기에는 다소 저조한 실적을 보였지만 내수 침체가 그 원인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세계경제침체라는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방직은 그다지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전형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인건비가 상승하고 있는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이 더 적지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업종인가'보다도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드는가'하는 것이다. 일신방직의 주요 제품은 원사다. 매출비중은 61%에 이른다. 이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이 코마사다. 코마사는 고급면사의 한 종류로 강도가 세고 보풀이 적어 고급브랜드에 사용되는 실이다. 일신방직은 코마사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생산량은 월 2200톤으로 국내 1위를 달리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원사를 만들고 있긴 하지만 모두 저가품 위주다. 일신방직은 고가품으로 제품비중을 옮김으로써 경쟁을 피하고 고마진을 추구하고 있다. 브랜드라는 거창한 차별화는 없지만 고급면사를 만드는 기술과 생산캐퍼는 일신방직이 가진 진입장벽이다.
3. 묵은 된장 속의 보물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사실로 미루어볼 때 현재 일신방직의 저평가는 과도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수익을 창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부가가치 품목을 바탕으로 수출과 내수를 동시에 커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장부가치의 5분의 1 수준으로 평가해 자산가치만큼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손 안에 잡히는 일신방직의 자산가치는 매우 우수하다. 보유하고 있는 현금자산만 해도 200억이 넘는다. 업력이 오래된 기업들의 특징이 숨겨진 자산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인데 일신방직도 예외는 아니다. 주목할만한 것은 보유 투자유가증권 부분이다. 삼성전자, 포스코, 국민은행 등 우량주를 70억 가량 보유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자회사인 일신창투(자본금 150억. 지분율 76.3%)다.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대부분의 창투는 유망사업에서 골치덩이로 전락했지만 일신창투는 다른 창투와는 달리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익진폭이 큰 창투업의 특성과는 달리 3년 연속 60억 이상의 안정적인 순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원인은 일신창투가 지오다노(지분율 49.8%)와 BSK(지분율 70%)라는 우량 자회사를 다시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오다노는 저가의류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1500억원대의 매출과 167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알짜기업이다. BSK는 보디샵을 운영하는 업체로 작년 357억원의 매출과 67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이 두 자회사를 통해 일신창투는 일종의 지주회사로서 안정적인 순익을 내고 있다. 일신창투의 또 다른 장점으로는 90년에 설립되어 오랜 기간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브랜드, 그리고 최근 유행하는 영화투자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유가증권 외에 일신방직의 자산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부동산이다. 여의도에 장부가 360억 가량의 본사 건물을 가지고 있으며 토지장부가만 923억원에 이르는 광주 공장 부지를 가지고 있다. 광주 공장부지는 44500평으로 무등경기장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알짜 땅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일신방직의 ROE가 금리를 넘어서는 순간을 찾는 것이다. 자산규모가 크긴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되느냐에 따라서 그 자산가치는 크게 달라진다. 아직까지 일신방직의 ROE는 5%를 고점으로 꺾인 상태다. 일신방직이 자산가치에 비해 시장의 인정을 못 받는 또 다른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ROE가 5% 수준을 넘는 순간 완전히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4. 우려되는 부분들
수익가치가 자산가치를 훼손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수익성이 악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세계경제침체의 여파로 1분기 매출액, 영업이익, 경상이익이 모두 하락했다는 점이 우려된다. 또한 매출채권이 증가하고 재고가 늘어나는 등 운전자본의 증가했다는 점도 걸린다. 일신방직의 자산가치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이익이 늘어나 ROE가 다시 상향추세를 그려야 하는데 당분간 이 면에서는 모멘텀을 찾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수익가치 면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은 감가상각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마사 생산량 증가를 위해 2001년 5월 완공된 청원공장의 감가상각비가 올해부터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 청원공장은 생산량을 늘이고 효율성 제고 효과를 가져왔지만 2001년, 2002년 각각 108억, 60억의 감가상각비가 소요되어 영업이익의 감소를 가져온 요인이었다. 올해 순이익에는 작년 감가상각비의 절반 가량만 비용으로 잡히게 되므로 회계상의 이익은 그만큼 증가될 전망이다.
최준철 wallstreet@itoo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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