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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미래를 점치는 수정구슬

[테마분석] 기업의 미래를 점치는 수정구슬


1. 기업은 히스토리다.

얼마전 한석규가 국내 영화 사상 최고 출연료 기록을 세웠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중간첩’에 출연하는 조건으로 출연료 4억 5000만원에 관객 1인당 500원을 러닝개런티 형식으로 받기로 한 것입니다. 아무리 흥행스타라고는 하지만 3년만에 복귀한 그에게 이만한 돈을 지불하게 되는 요인을 무엇일까요? 그 대답은 바로 그가 쌓아 둔 ‘히스토리’ 때문입니다.

과거 닥터봉, 초록물고기, No.3,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텔미썸딩으로 이어진 그의 작품 퍼레이드는 관객들에게 한국영화라도 한석규가 나오는 영화라면 영화비가 아깝지 않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한석규” 이름 3자에 강력한 브랜드와 신뢰감을 보내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으로 한석규의 영화가 나의 돈을 아깝지 않게 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때문에 한석규의 영화를 선호합니다.

기업 또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히스토리’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대신 그 사람의 행동과 과거행적을 보고 평가를 합니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이 기업의 말을 너무 쉽게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리 ‘다시는 비관련 다각화를 하지 않겠다’라고 공언을 해도 이미 과거에 비관련다각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 곳이라면 일단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결국 그 기업은 미래에 대한 공언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행적 파악이 더 훌륭한 투자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가 중요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히스토리에 대한 투자가 중요함은 과거 닷컴 버블이 있었던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꿈에 투자하십시요’라는 모토 아래, 투자자들은 기업의 히스토리를 중요시하는 심사기준은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창업한지 1~2년도 안 되는 벤처기업들에게 높은 배수를 적용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한마디로 검증도 안된 신인배우들이 한석규보다 더 많은 출연료를 받아간 셈입니다. 결국 많은 투자자들이 ‘꿈’에 열광하였으나, 2001년이 되면서 꿈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바람이 한낱‘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래는 과거와의 연장선상에 놓여진 것이고, 과거를 살펴야 그 기업의 미래를 예단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미래를 점치는 수정구슬’은 황당한 예측을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기업의 과거를 담아놓은 이력서에 있습니다.


2. 기업의 이력서 체크 사항 4가지

기업에서 사람을 뽑는 것도 일종의 투자로써 채용 전 지원자의 과거의 행적인 이력서를 보듯이, 투자자들도 기업을 선택할 때 그 기업의 히스토리가 담긴 이력서를 보아야 합니다. 이력서를 뚫어지게 쳐다보면 마법의 수정구슬처럼 그 기업의 미래가 떠오릅니다. 그 중에서도 기업의 이력 중 꼭 체크해야 할 부분 4부분이 있습니다. 이 네가지를 체크하면 수정구슬에서 그 기업의 미래가 보다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 체크사항 하나: 98년의 실적을 체크해 보라.

98년은 한국의 기업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한 해입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던 회사들이 도산하고, 환율은 2000원대까지, 금리는 20%대로, 종합주가지수는 200선대까지 폭락하였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우량기업들은 국가까지 부도가 날지도 모르는 최악의 경영 상황속에서도 꾸준히 이익을 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진가를 알기 위해서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봐야 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기업 또한 그 진가를 알기 위해서는 최악의 상황에서 이익을 낼 수 있는가를 체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IMF로 모라토리엄 이야기까지 나왔던 98년의 실적은 기업의 체력을 알아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습니다.

- 체크사항 둘: 배당내역과 자사주 매입여부를 살펴보라.

대부분의 상장기업들은 기업의 정관이나, 홈페이지, 기업홍보책자 등에 ‘주주중심경영’을 모토로 내세웁니다. 하지만 주주중심경영을 실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배당은 이미 기업이 충분히 이익을 내고 있을 때, 미래 현금흐름에 자신이 있을 때, 그리고 오너 혹은 경영자가 회사의 이익을 일반 주주들과 공유하겠다는 생각이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자사주 매입은 배당압력을 감소시키고, 주당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좋은 주주중시정책이 될 수 있지만, 이 또한 막대한 현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꾸준히 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면, 그 기업은 주주정책에 관한 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기업으로 봐도 좋습니다.

- 체크사항 셋: 유상증자 내역을 살펴보라.

배당과 자사주 매입이 주주에게 돈을 돌려주는 제도라고 하면, 유상증자는 주주의 돈을 빨아먹는 제도입니다. 혹자는 유상증자를 주가상승을 위한 ‘모멘텀’으로 해석하거나,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로 보지만, 이런 인식은 유상증자의 의미를 잘못 파악한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유상증자란 기업이 신규설비투자가 필요하거나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주주로부터 다시 돈을 끌어 쓰는 것입니다. 당연히 기존 주식의 수익가치는 훼손이 되고, 주당 순자산가치보다 더 낮은 가격에 유상증자를 하게되면 주식의 자산가치 또한 훼손이 됩니다. 가치투자자는 성장을 위해 주주의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 기업을 좋아합니다. 성장을 위해 주주에게 손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물먹는 하마형 기업’에 투자한다면, 장기적으로 하마에게 먹일 물을 찾다가 지칠 것입니다. 따라서 유상증자 내역을 꼭 살펴야 합니다.

- 체크사항 넷: 출자현황을 살펴보라.

출자현황을 살펴보는 것은 그 회사의 유보수익 활용능력을 체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회사가 이익을 내면 일부는 배당을 하고, 일부는 회사내에 유보를 합니다. 유보금은 기존의 부채를 갚을 수도 있고, 기존의 영업력을 확충하는 데도 쓸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기업에 출자를 하거나, 아예 새로운 사업체를 만드는 데 쓸 수도 있습니다.

기업의 출자현황을 살펴보면 그 기업의 투자 히스토리를 알게 됩니다. 어떤 기업은 출자회사의 부실로 자본금까지 까먹고, 지급보증 때문에 우발 채무를 떠안고 있기도 하고, 반면에 어떤 기업은 출자회사가 장사가 잘 되어 지분법 평가이익은 물론 배당금이 쏟아져 들어오는 기업도 있습니다. 우량한 자회사를 많이 가지고 있다면 그 회사는 눈에 보이는 자회사의 자산가치뿐만 아니라, 탁월한 유보수익 활용능력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히스토리 절정 쌍두마차 – 신도리코와 신영증권


- 신도리코 : 벤처투자 난 그런거 몰라

벤처붐이 불던 99년 돈이 있는 기업은 새로운 투자처로 기존사업과 관련없는 벤처투자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신도리코는 1500억원 가량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복사기 등 사무기기를 만드는 곳이라 IT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벤처투자에 대한 온갖 유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도리코는 단 한군데의 벤처회사에도 투자를 집행하지 않았고, 덕분에 주가는 지지부진했습니다. 벤처에 투자해야 주가가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벤처거품이 빠지면서 다른 기업이 투자해둔 자산이 부실화되며 골머리를 앓을 때 신도리코는 소중한 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자금을 가지고 신제품을 개발하고 유통망을 확대하여 시장지배력을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금융투기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과거의 경력으로 볼 때 앞으로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신도리코는 넘어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전과가 있는 기업은 언제나 틈이 생기면 범죄를 다시 저지를 여지가 있습니다.

- 신영증권 : 31년간 지켜온 전통

신영증권은 보수적인 기업입니다. 취업자들도 신영증권에 웬만하면 취직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파격적인 몸값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죠. 대신 힘들 때는 남보다 더 많이 준다는 철학으로 기업과 직원들의 생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런 신영증권의 보수적인 성향은 31년 연속 흑자와 31년 연속 배당지급이라는 히스토리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신영증권이 가지고 있는 현금자산은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이며, 이는 단 한번도 허튼 짓을 하지 않으면 증권사도 이익잉여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신영증권은 보수적인 경영으로 인해 앞으로도 시장에서의 인기는 얻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50년이 지나도 살아남아 있을 기업이라는 것, 실수를 용납치 않을 기업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4. 딸을 알려면 장모를 보라.

결혼을 할 때 배우자에 대해 알고 싶으면, 장모님의 성품을 보라고 했습니다. 주식을 거래하는 것도 지분참여이며, 기업과 공동운명체가 되는 일종의 결혼과 같습니다. 따라서 가치투자자의 꿈이 결혼할만한 주식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보다 더 그 기업의 히스토리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히스토리가 좋은 기업은 분명 지금까지 쌓아온 시장신뢰와 지배력, 브랜드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줍니다. 남의 살아온 자서전을 보듯, 기업의 히스토리를 꼼꼼히 챙기는 것은 투자자의 눈을 향상시켜주는 즐거운 일입니다. 이제 투자를 하기 전에 “꼭 기업의 과거를 물으십시오!!”


* 대학투자저널 8월호 커버스토리를 테마분석으로 편집한 글입니다.

더 좋은 글 작성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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